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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 강남 성형외과 참여관찰기
임소연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평점 :

서울대 대학원생으로서 박사학위 논문에 필요한 현장연구를 하기 위해 저자는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2년간 '임 코디'로 일하며 성형외과 사람들과 소통하고, 성형을 고민하고 상담과 수술을 받고 수술 후 달라진 얼굴과 맘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길 듣는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하늘로 치솟았는데 저자는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직접 성형수술을 받기까지(!) 한다. 그렇게 성형 연구자이자 성형 경험자가 된 저자는 연구자로서 견지한 안목과 지식과 지향점, 경험자로서 갖게 된 생각과 경험과 깨달음으로 성형, 아니 성형을 받았거나 받을 생각이 있는 여성들과 자신을 연결하고 바수어져 있던 여성들의 삶과 서사를 얽는 연대의 지점까지 제시한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그닥 심오하기 않다. 오히려 지극히 단순하고 간명하다. 스스로를 '성형미인'이라 일컫는 여성이 성형에 대해 어떤 의견(혹은 '신념!')을 갖고 있을지, 성형하기 이전과 성형한 이후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정말 성형으로 예뻐지고 나면 생에 드라마틱하진 않을지라도 무언가 변화가 생길지 궁금했다. 내 이목구비의 매력과 친구들 이목구비의 매력을 비교 분석했던 청소년 시절부터 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더불어 성형에 대한 갈망을 품었었고 나를 많이 아끼고 존중하게 된 지금까지도 그것들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못했기에 성형 연구자이자 성형 경험자인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 오랜 콤플렉스가 지워지든지, 성형을 망설이는 요건이 사라지든지 할 것 같았다. 한마디로 나에겐 나의 외모와 여성의 외모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시선과 평판 그리고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거나 그것을 '전복'하는 성형에 대한 무언가 명확하고 확실한 설명이 필요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독서 전 내가 갖고 있던 기대가 얼마나 추상적이고 벙벙했는지, 정립되긴커녕 끝없이 대립하고 척을 지는 생각과 감정들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는지 알게 됐다. 나아가 그런 피말리는 경험을 나만 한 것이 아닐 것이며, 그나마 난 페미니즘적 사고를 통해 부당하고 혼란한 많은 것으로부터 일탈해 나의 중심과 언어를 세웠는데 그러지 못한(혹은 않은) 여성들은 나보다 더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나는 저자가 재구획한 연대의 울타리를 계기로 나와 같고 다른 여성들과의 새로운 연대를 상상하고 꿈꾸게 되었다.
기대 이상의 수확은 그밖에도 많다. '성형'을 주제로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 깊고 다양한지 몰랐다. 정상과 초정상, 몸과 살, 나와 다른 타자를 대하는 태도, 포스트휴먼과 사이보그…. 너무 재밌어서 싸들고 다니며 직장에서 숙소에서 짬날 때마다 읽었다.
"자기가 원하는 얼굴 혹은 사회적으로 예쁘다고 인정되는 얼굴에 일치해야 하는 것은 3차원에 실재하는 몸, 정신과 연결되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몸이 아니라, 2차원에서 보여지는 몸, 자기 자신이 거울이나 사진과 같이 거리를 두고 평면 위에서 볼 수밖에 없는 몸이다. 그렇다면 불일치감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쁘다는 인식에 부합하는 얼굴 사진이지, 얼굴 그 자체가 아니다."
"카타르시스. 성형외과는 몸에 대한 엄숙주의나 자연주의가 수시로 깨지는 곳이었다. 몸보다는 마음이 중요하고, 있는 그대로의 몸을 사랑해야 한다는 세상의 위선을 비웃듯이 이곳에서는 몸에 대한 평가와 개입이 난무했다. (...) 그래도 마치 모두가 몸이 없는 듯이 살아가는 세계보다는 나았다."
"내가 클럽을 좋아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를 다른 어떤 존재도 아닌 여자로 있게 하는 곳. 한 실장이나 신 간호사처럼 화려하게 예쁠 필요도 없었다. 그곳에서 통용되는 노출이 많거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에 화장을 한 것만으로도 나는 여자가 되었다. (...) 클럽은 외모 외의 다른 변수가 모두 제거되는 통제된 실험실 같은 곳이다."
"우리는 더 많은 '괴물'을 더 자주 만나야 한다. 마치 청담 성형외과에 오는 사람들처럼. 미인과 괴물 사이에 있는 다양한 얼굴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미인을 덜 동경하게 될 뿐만 아니라, 괴물 앞에서도 덜 당황하게 된다. 그렇게 함께 섬뜩한 골짜기를 넘어 포스트휴먼과 편안하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문장이 아주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픈 핵심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제목과 표지가 텍스트를 반도 대변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이 책은 성형대국 한국의 부족한 성형 관련 담론을 섬세하고 심도 있게, 그러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낸 책이었다. 나처럼 성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물론 인간의 외모와 몸에 대해 (일상적 의미든 학문적 의미든) 관심이 많은 사람, 나와 다른 사람·다른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 포스트휴먼과 사이보그가 함께 살아갈 사회가 궁금한 사람 혹은 외모와 성형에 대한 분명한 신념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당신은 이 책의 어떤 포인트에서 이마를 탁 칠지 너무나 궁금하다. *
※ 본 포스팅은 도서를 증정 받아 쓰였으나
가감 없는 개인적 경험 및 감상만을 담았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