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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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




사실 지금까지 읽은 미술 에세이가 두 권뿐이라 소설이나 비문학 도서처럼 '이건 어때서 마음에 들고, 여기서는 ~가 연상되기도 했고' 하며 이런저런 수식이나 평을 붙이기 쉽지 않다. 웃자란 배추가 쭈글쭈글한 배추보다 맛이 없듯 길고 주렁주렁한 글이 곧 잘 쓴 글은 아니겠지만, 책을 읽으며 느낀 바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에 느끼는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

두서 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늘어놓고 싶을 만큼 이 책은 맘에 들었다. 차분하고 덤덤해 보이지만 많은 색을 품고 있는 듯한 진보라색 표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이의 자화상, 예술에 들러붙은 명예나 무게감 따위를 날려버리겠다는 듯 할랑거리는 내지, 사람과 이야기에 차등을 두지 않는 원형 목차부터 그랬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모든 것이 우주적 관계 안에서 서로 '옆으로' 의존할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꾹 눌러 말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남아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말을 곱씹으며 책을 썼다고 했다. 미술, 예술 하면 여전히 어렵고 추상적이어서 무언가 열심히 배우고 느껴야 할 것 같고 그것을 삶에서 접하는 순간은 일종의 이벤트라고 여기는 나는 그 말을 보고 안심했다. 하나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삶이 곧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 속에서 이뤄지는 순간들 장면들을 내가 보여주겠다고, 아니 '함께 보자'고 권하는 저자의 태도에 절로 맘이 열렸다.

그리고 나는 진솔함과 섬세함, 다정함으로 존재에게 말을 걸고 존재와 존재가 수평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을 사려 깊게 마련하는 매력적인 작가들과 기깔나게 형상화된 그들의 아이디어, 지향 혹은 신념 들을 만났다.



블로그에 짤따란 글을 쓰는 것으로밖에 내 감상을 표현할 수 없음이 답답함을 넘어 안타깝다. 포스트구조주의자인 들뢰즈-가타리의 관점을 빌려 졸업 논문을 쓰고, 주체·언어·공리 등 모든 중심화된 것을 부정, 해체하거나 그것에 의해 이름 잃은 존재들을 호명하는 이 책을 읽어서인지 새삼 언어의 한계를 깊이 실감한다.

그러나 그렇듯 '미끄러지는 언어'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저자의 글은 할랑한 종이에 꾹꾹 눌러담긴 글씨 같고 연약하지만 언제든 어디로든 가볍게 날아가 싹을 틔울 민들레 홀씨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만 미술 에세이를 쓰는 건 아닐 테지만 내가 지금껏 읽은 미술 에세이의 저자 최혜진 작가와 박보나 작가 모두 마음에 가만가만 자장을 일으키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나도 읽는 이로 하여금 자장을 느끼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힘이 아니라 파장, 혹은 자장과 더 가까운 형태면 좋겠다. 그러려면 앞으로 더 많은 다른 존재들을 만나 대화해야겠지? 중심화된 것에 순응·복종하고 주변화된 것을 바깥으로 내모는 부당함에 어떤 방식으로든 저항할 것, 언어와 이미지가 담지하는 것을 맹신하지 말 것, 모든 존재가 우주로부터 왔고 우주 안에 있으며 우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고 귀히 존재를 대할 것. 박보나 작가도, 그를 통해 만난 다른 어느 작가들도 내게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작업을 통해 스스로 깨달아 가슴에 새겨보는 오늘의 작은 교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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