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 - 게임에 대해 궁금하지만 게이머들은 답해줄 수 없는 것들
최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평점 :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게임을 해왔고, 그로 인해 즐거운 추억이 많이 생겨서 게임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과, 게임이나 게임업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게임/게임 산업을 사회적으로 고찰했다는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 저자는 우선 게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게임이라 퉁쳐 부르는 그것들은 어떻게 분류되는가를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해가며 친절하게 설명한다. 앞서 말했듯 나는 게임이라는 걸 좋아하고 더 알고 싶어했기에 이 장을 패스하지 않고 재밌게 읽었지만 게임 자체에 대해서 별로 궁금하지 않으신 분들은 패스해도 문제 없을 것 같다.
저자는 게임을 좋은 것, 나쁜 것, 문화, 산업 등으로 냅다 축약하지 않고 본인 나름의 경험과 생각, 게임이 가진 여러 특성들을 고려하여 게임을 이야기하는데 그 점이 무척 인상적이고 좋았다. 게임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려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보여주고 싶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1인으로서 공감도 많이 됐다.
" 모든 취미는 궁극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의 문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시간은 언제나 모자란 것 같지만, 그것을 어떻게든 흘려보내고 때워야 할 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게임을 '시간낭비'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의미 없는 비난이다. 게임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사람들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남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게임 그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워서 게임을 한다." -pp. 107~108.
이후에는 게임을 만들고, 유통하고, 그밖에 게임과 관련 있는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문제를 강화하거나 은폐하는 요인들에 대한 다각적 고찰이 이루어진다. "게임"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단어를 넣고 봐도 문제가 없을 법한 중요한 통찰들이 많았다.
남의 이야기같지 않아서인지 가장 화가 났던 건 게임업계 내 성차별과 여성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사상검증이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사람을 사람답게 존중하고 대우하는 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단지 자신들의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전처럼 아무 조심스러움 없이 편하게 게임을 만들거나 즐길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만난 적 없지만 분명 세상에 존재하며 나에게 잠정적으로 피해를 끼칠 것이라 사료되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 때문에("이런 존재들-된장녀/김치녀/김여사/혜지(여성 게임 플레이어를 비하하는 표현)-의 실존을 주장하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반복적인 경험이 아니라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통해 진짜로 '존재한다'를 넘어 '많다'라고 주장했으며,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없는 증거들을 만들어내는 일도 많았다.(p. 230)") 여성들의 삶에 실제로 해악을 끼치는 것에 화가 났다.
무엇보다 그들의 뒤틀린 정의를 바로잡아주기는커녕 이익 운운하며 문제를 방치하기 급급한 기업의 태도에 큰 문제가 있음을 다시금 인식했다. "소비자의 요구가 인권·정의와 같은 기본적 가치에서 이반된 것이라면 이를 무시하거나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모습(pp. 216~217.)"임을 기업이 하루 빨리 깨닫고, 중립을 내세우며 트롤링을 일삼는 가해자들을 묵인하고 도리어 그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게 가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임을 더 이상 모른 체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앞으로도 재미와 자유를 선사하는 게임을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