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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남한강. 한강의 지류라고 단순히 정의 내리기엔 그 아름다운 풍광과 정취가 너무 아까운 강이다. 고려, 조선에 걸쳐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 수로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남한강이 품은 아늑한 산자락에는 여러 명승고적이 자리 잡았다. 또한 강가를 무대로 살아온 여러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강이 지나는 영월, 제천, 단양, 충주, 그리고 여주, 양평까지. 어디에 가나 남한강이 키운 고장의 정겨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남한강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유홍준 교수는 또 다시 길을 나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남한강편>(이하 <답사기 8>로 약칭)은 그 여정의 산물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이번 권부터 지역별로 안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나의 주제, 하나의 테마로 쓰겠다는 결심이 반영되었다. 그래서일까. 남한강을 무대로 한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렇기에 독자들도 이번 <답사기 8> 앞에서는 조금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필요가 있는 듯 보인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맨 처음 나올 때부터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말하며 여러 독자들을 흥미로운 우리 문화유산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편안해진 문체, 연륜이 묻어나는 유머를 대한 우리의 관념은 “아는 만큼 보인다.”에서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로 자연스러운 전환을 이룬다. 이제 독자들은 남한강의 정취를 책으로 편안하게 즐긴다는 생각으로, 남한강이 담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여정은 영월에서부터 시작된다. 동강과 서강의 고장이며, 주천강의 고즈넉한 정서와 단종의 애사(哀史)를 간직하고 있는 이 고장에서 유홍준 교수는 때 묻지 않은 향촌의 정서와 비정한 권력다툼 속에서 희생당한 소년의 이야기를 꺼낸다. 특히, 주천강가의 마애불을 다루는 대목에서 이런, 저런 비평보다 향토적인 색채를 담은 신경림 시인의 시를 인용한 것은 단연 압권이었다. 또한 청령포 → 관풍헌 → 장릉으로 이동하며 단종의 즉위서부터 수양대군(세조)의 찬탈, 사육신의 단종 복위 시도, 끝내는 죽음을 맞기까지 단종이 직면해야 했던 개인적 격변들을 순차적으로, 그리고 담담히 되짚으면서 17세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단종의 일생을 생각했다. 청령포에서 정치와 민중에 대해 생각한 신영복 선생의 상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제천과 단양, 충주에 이르러 남한강의 풍광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비록 충주댐의 건설로 청풍과 단양 일대가 대부분 수몰되었지만 옮겨진 유적과 남아 있는 일대의 이야기로도 남한강의 물결은 넘실거린다. 이곳을 본향으로 일어난 청풍 김씨 문중의 이야기에서부터 구담봉과 옥순봉으로 대표되는 절경, 그리고 대규모의 시멘트 공장이 들어선 석회석 노천 광산 등 빼어난 경치와 우리네 일상을 모두 접할 수 있는 곳이기에 <답사기 8>에서도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되었다. 아마 독자들이 <답사기 8>를 읽으며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미치는 부분도 바로 여기가 아닐는지.
남한강을 따라가는 여정은 충주와 원주, 여주의 폐사지(廢寺址)와 신륵사에서 마무리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폐사지는 울적한 마음을 다스리고 감상에 젖어들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특히 이번 <답사기 8>에 소개되는 폐사지만 돌아봐도 폐사지에 대해서 일정 수준의 이해를 갖추게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폐사지에 대한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폐사지를 돌아본 유홍준 교수는 신륵사에 이르러 우리가 ‘관광지’라는 인식을 가져 그 예술적 미학을 깨닫지 못했던 이 절의 매력을 일깨워준다. 못난 선대(先代)의 잘못을 후대(後代)가 바로 잡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글을 매조 지으면서.
강은 곧 인생이다. 세월의 흐름을 두고 ‘유수(流水)와 같다.’라는 표현으로 비유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굽이쳐 흐르는 강에는 때로는 우리의 슬픔이 담겨 있고, 한편으로는 기쁨과 행복함 또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강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우리네의 삶을 돌아본다는 생각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유홍준 교수도 이런 생각을 하며 남한강을 따라 걸었던 여정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이제 이 책과 함께 남한강에 담겨 있는 우리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좋은 것은 주말이나 시간이 날 적에 차에 <답사기>를 꽂아두고 남한강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예전에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못했던 아름다움과 감동이 일렁일 것이다. 남한강을 돌아볼 시간이 나지 않더라도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길.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이렇게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동양화에서 산수화의 유래는 5세기 남북조시대 화가 종병(宗炳)이 늙어서 산에 더 이상 오르기 힘들어지자 산수화를 그려놓고 누워서 보며 즐긴 데서 나왔다고 한다. 이를 누워서 노닌다고 하여 와유(臥遊)라고 한다. 나의 답사기가 꼭 현장에 가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독서하는 또 다른 와유가 되기를 바란다(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