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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평점 :
초당 9.81미터의 중력가속도.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도입부부터 어쩐지 불안한 느낌을 준다. 이리저리 부유하고 주변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화자 혼자 가라앉은 느낌. 그냥 객실에 나간 승무원의 감상일 뿐인데도 왠지 화자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나서 다음 장에서 화자인 유나는 죽는다. 아니, 죽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장례식장이 배경이었으니. 그러면서 시선은 유나에서 아버지인 정근으로 이어진다.
유나의 죽음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는, 유나는 왜 자살을 선택해야만 했는가? 무엇이 그녀를 자살로 이끌었는가? 부기장과 부도덕한 관계였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유나에서 정근으로 이어진 시선은 부기장인 영훈과 유나의 남자친구인 주한의 시선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의문이 해결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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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과 영훈과 주한의 시선에서 유나는 항상 성장하는 사람이었다. 가족과 함께 간 여행에서 헬기를 조종한 조종사가 렌터카까지 운전하는 것을 보고 의문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었고 영훈이 운전하는 차를 탈 때는 뒷자리에서 조수석으로 바꿔 타는 사람이었다. 그 어린 나이부터 벌써 위계질서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그것을 만든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대항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유나의 시간에서 끊임없이 전개되는 유나의 성장이, 죽음으로 인해 중단됨과 동시에, 주변 인물들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꽤 아이러니하다.
고액 연봉자인 영훈이 도대체 왜 노조를 하는 거냐는 의문을 가지던 철용이 유나가 죽은 뒤에는 학교에도 노조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조종사 노조가 왜 있냐는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반성을 한다(p.200, p.223).
유나와 갈등을 맺고 도대체 유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인 정근은 유나가 죽고 난 뒤 그의 죽음을 조사하며, 무엇보다 정근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행했던 일들에 대해, 자신이 굳게 믿어 왔던 모든 것들에 대해,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고 잘못된 믿음이었다는 것을 직접 마주하고 깨부수고 다시 정립해야 했다. '유나가 죽고 나니 모든 게 복잡해졌다(p.189).'는 정근의 생각은 이것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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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는 '미스'가 뜻하는 것이 '놓쳐 버리다'인지, '미혼 여자의 성 앞에 붙이는 호칭 또는 지칭'인지 구분하지 못했고, 어쩐지 후자에 더 가깝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니었지만요. 그녀는 공항에서부터 객실에 있는 동안 내내, 그리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동료들에게 놀림과 비난을 받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그런 놀림 자체가 그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었습니다.
나의 규칙이라고만 생각하면 외로웠는데.
우리의 규칙이라고 바꿔 생각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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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작가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끌어다가 가시화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읽기가 힘들기도 했다. 나의 사람들이, 혹은 나 자신이 유나가 될 수도, 영훈이 될 수도, 심지어는 KF-16에 타고 있었던 탑승자가 될 수도 있음이 계속해서 환기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을 때까지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정근을 보고서도 과연 물러서지 않는다고, 끝내 진실을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하는, 마음 한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는 의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글의 초고가 쓰여진 2016년에도, 이 글이 나온 2018년에도 여전히 방산비리는 척결되지 못했고, 승무원을 이른바 '기쁨조' 역할에 동원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 글은 소설이고 누군가는 '그래 이건 단지 소설일뿐'이라고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독자들의 선택이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그럴 수가 없다. 이 문제를 가시화 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했을 작가와 그동안 고통받았을 수많은 유나와 영훈을 생각하면 도저히 '단지 소설'이라고 넘겨버릴 수가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읽고 나서도 불편했으니 이 소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승무원을 보면서도, 방산비리에 관련된 내용을 보면서도 불편해질 것이다. 이러한 불편한 마음은 '그래 저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지', '도대체 이 사회는 언제쯤 바뀔까'라며 욕하던 내 자신도 사실은 그러한 사회에, 사회의 부동에 기여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두려운 의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 유나같은 삶을 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과오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또 다른 유나에게 손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나도 유나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