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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평점 :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서평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의 문제는 실로 근본적인 문제다. 다른 모든 경험들은 경험하고 삶이 이어지지만 죽음의 경험은 그 후에 삶이 끊어지기 때문에 다른 경험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 후에 삶이 완전히 종결 되는 지 혹은 종교에서 말하듯 이생이 이어지는 지 인간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은 오직 두려워하거나 의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완전한 의문 상태의 죽음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행위, 즉 ‘자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철학서 ‘시지프 신화’에서 자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사람들은 인생을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살한다.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지금 살고 있는 현생에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의 상태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소설은 삶의 가치 상실을 무엇으로 선택하고 있는가? 시간을 돌려 자살을 막는 주인공과 자살을 시도하는 여주인공은 모두 각별한 관계들을 상실하고 불완전하다고 판단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의 상태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양부모에게 있으며 그 가운데서 거리가 있는 상태, 여주인공은 아버지의 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새아버지와 같이 온 언니와 어머니의 학대 가운데 있는 상태이다. 이것을 미루어 볼 때 과연 이것으로 두 사람의 자살의 이유가 완전한 가를 돌아보면 1차적 관계인 가족 이외의 관계까지 돌아보아야 한다. 2차적 관계인 주변인들과도 그들과의 관계는 망가져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옆에 자신 말고는 관계가 없는 상태였다.
동양에서는 사람 인(人)을 통해 사람이 사람을 서로 맞대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이 전해지고 있다. 그만큼 사람에게 있어서 완전한 고립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람이 서로 맞댄다는 것은 서로에게 힘을 쏟는다는 것, 서로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힘을 낸다는 것으로 해석해본다. 소설에서도 우연한 힘을 통해 시작된 관계 안에서 여주인공의 자살을 막기 위해 주의공의 노력이 보이고 있다. 한 사람이 가치 없는 삶을 주장할 때마다 나타나 삶의 가치 있음을 혹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소개해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과 다르게 데려가는 곳은 평범한 곳들이 많다. 공원, 아쿠아리움, 영화관 등 우리 근처에서 눈을 한번 돌아보면 찾아 볼 수 있는 장소들로 안내한다. 주인공 또한 상실의 상태에 있던 사람이므로 중간에 자신의 행동들의 부족함을 보이곤 했지만 그 이후의 여주인공의 변화는 아주 조금씩 변화해감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가 목적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 계기는 여주인공이 주인공의 집을 찾아오면서 부터다. 근래 일본에 관한 책들을 읽다가 일본 사람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선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친구 집, 연인의 집에 놀러가는 것은 조금만 관계가 쌓여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자신의 삶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므로 어려운 행동이라고 읽은 적이 있다. 여주인공은 지속적으로 주인공의 공간으로 들어와 점점 가까워지며 서로의 삶의 영역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그 공간 안에서도 각자의 공간이었지만 점점 공유공간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며 서로가 삶에서 필수적인 존재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결말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전체적인 마무리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드라마틱하고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야 불행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생각이 한번 씩은 지나갈 것이다. 주인공에게도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났지만 그것이 살아있는 시간동안 자신의 삶을 완성시켜준 것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 돈은 많이 벌었고 나름의 안정적인 몇 가지를 얻어도 근본적 상실에서는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 가운데 우연히 본인과 비슷한 상태의 사람을 만나 비슷한 방법, 돈과 같은 현실에 바로 보이는 것으로 해결을 보려다 실패를 보았다. 그리고 그 후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돌려 그 사람과 평범한 날들을 만들어 일상을 만들어 나갔다. 공백이 생기면 서로가 서로로 채우며 서로가 위로가 되고 어느 순간 삶의 목적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어갔다. ‘사람이 살 가치가 없어질 때 자살을 한다.’는 카뮈의 말을 살펴보았을 때 사람에게 살아갈 단 한가지의 이유만 있으면 삶을 지속할 수 있음을 작가는 시사하는듯했다. 누구에게든 상실이 찾아올 때 일상을 살아갈 단하나의 목적을 찾는다면 불행으로 가는 길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사람일 수 도 있고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중에 사람이라면 내가 도와줄 날이 오면 내가 도움 받을 날도 오기에 서로가 목적됨을 더 밝히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