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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평점 :

한국이든, 미국이든 최근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강력한 사조가 있다면 '비인간성'일듯 싶다. 사람들의 혀 끝에서 나오는 말은 '존중'과 '포용'보다는 '욕설'과 '혐오'이지 않을까? 사람들의 손가락 끝에서 쓰여지는 단어들은 '이해'와 '희망'이기 보다는 '비난'과 '차별'이지 않을까? 다양한 제도와 법률로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꽃피우려 했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라곤 '공허한 외침'뿐이다. 공허함만 남은 지금의 무감각한 우리 사회에 '사람다움'이라는 기본적인 철학을 땅 깊숙이 씨앗뿌리기 위해, 이 책의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심장'처럼 두근거리는 따뜻한 사회가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제도'를 넘어 '인류애적 사랑(낭만적 개념이 아니다)과 희망'을 더욱 장려해 줄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그녀는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 원제는 '두려움의 군주제'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뒤흔들고 있는 지 보다 진지한 자세로 숙의할 수 있는 '깊은 생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바로 '타인에 대한 연민'이다. 최근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 정도로 거침없이 그리고 거세게 달려드는 개념이 있다면 첫번째도 두번째도 모두 '차별'이다. '혐오'이다. 그리고 '시기'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이 3가지의 감정은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한 채 온갖 악취로 이세상 저세상을 누비고 있다. 혐오와 시기 등의 감정이 일상화되어버린 지금의 세상 속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의 법칙은 이제 '자기보호'가 되어버렸다. 끊임없는 타인화와 '자기보호'라는 치킨게임 정도로 점철된 지금의 사회. 즉, '자기보호'라는 명목 아래 타인의 헌법적 권리를 일정부분 박탈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생각하는 지금의 사회, 그리고 '타인'에게 연민의 감정이란 걸 갖는다는 건 이제 낭비가 되어버린 지금의 사회. 이 상황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이 책의 저자는 진지하게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는 하나의 소중한 감정이다. 가령, 독재와 인권탄압 등 실재하는 '악'에 대한 두려움은 역사 속에서 늘 우리 사람들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악'은 적절한 사회적 숙고 없이 무분별하게 표출되는 '두려움'이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음에도 단정되는 비합리적인 '두려움'이다. 이러한 감정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갉아먹는 강력한 병균이 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협력하여 실재하는 불안에 대응하는 협력은 커녕, '나'와 '타인'을 구분짓고 배척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조가 바로 그 병균의 실체이다. 대표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 그리고 '시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시선, 장애인에 대한 혐오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증오 등, 이것이 어떻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설명한다.
이 책은, 철학과 윤리학 등 다양한 학문적 범주를 넘나들며 현재 우리사회의 군주처럼 군림하는 '두려움'을 파헤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는다. 건강한 민주주의와 더 나은 사회적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새로운 '길'을 논의한다. 이 길은 바로 '감정'이라는 문제를 더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특히, '정치적 감정'이 어떻게 숙고되고 다루어져야 할지 명쾌하고 예리한 시선을 들이대며 다양한 현상 곳곳을 깊숙이 파고든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 책의 깊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