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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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헤르타 뮐러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느낌은 비슷할 것이다. 어.렵.다. 

  

1984나 동물농장,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나 수용소 군도 등 독재와 억압 등의 사회현실에 저항하고 고발하는 문학은 흔히 그 상황에 대한 담백한 혹은 장황한 묘사나 비유와는 상관없이 그 이야기의 진행과 언어의 선택은 상당히 담백한 상태로 진행되어왔던 것이 보통이다. 그러한 소설들에 익숙한 우리에게 헤르타 뮐러의 이야기 속 선택된 단어와 단어들의 만남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하다.

특히 그녀가 루마니아의 독재체제에 저항하는 글쓰기 때문에 수많은 곤욕과 어려움에 처했었다는 사실을 미리 접한 독자들은 더욱 우리의 선입견을 뛰어넘는 글 속에서 어디로 어떻게 노를 저어가야 할지 몰라 지도와 나침반만을 그저 멍하니 바라봤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녀와 그녀의 작품 속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들춰내본 여러 기사들 속에 꼭 빠지지 않고 있는 단어와 문장들이 있었다. 바로 시적인 표현, 간결한 문체, 처참한 현실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문장과 상징....

그녀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문학은 극히 "인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온갖 술수와 방법을 동원해, 하나의 문장, 하나의 인물, 하나의 상황에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는 그녀의 말은 그녀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많은 매체에서 루마니아 독재체제의 참혹한 현실과 그와는 선뜻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문장들, 그 아득한 차이의 무게만큼이나 공포와 불안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시의 언어로 적혀있는 참담한 현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사실 그녀가 고발하고자 하는 상황은 어찌 보면 어느 나라나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그리 특수하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다. 당장 한국만 하더라도 그러한 시기를 30년 이상 겪었고, 북한은 3대째 차우셰스쿠가 꿈꾸던 현실 속에서 목숨을 건 탈주극이 벌어지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잡히고, 죽고, 탈출하고 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던 시기를 살아왔던 것처럼 루마니아의 사람들 역시도 그러한 시대를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심지어 그때가 더 좋았다는 어른들이 존재하는 세상을 말이다.

이런, 어찌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고발과 저항이 우리의 가슴에 더 묵직한 무언가를 던질 수 있는 것은 흔히 말하듯이 사랑과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 언어로 절망과 죽음, 공포를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그 대비를 담아내는 문체와 문장과 단락과 소제목의 간결함에 대해, 헤르타 뮐러가 자신의 이야기를 응축하고 담아내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주목해보고 싶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 슈바벤 마을에 사는 빈디시 가족이 루마니아를 떠나기 위해 여권을 발급받기 위한 사투를 담담하면서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빈디시는 여권을 얻기 위해 밀가루를 바치고, 돈을 바치다가, 급기야 딸의 존재와 자존까지 팔아치웠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그와 그녀의 가족은 약 150페이지의 기간동안 그 모든 것을 바치고, 버리고 마침내 작은 여권 하나를 얻어낸다.

그 이야기동안 그녀는 많은 것을 끄집어낸다.

빈디시와 그의 죽은 옛 연인. 카타리나와 그의 옛 남자.  아멜리에와 그의 남자친구.
마을의 야간경비원, 목부, 목수와 크로너 할멈, 모피가공사와 유리기술자 루디, 애벌레 할머니. 신부와 경찰, 우편집배원 여자...
올빼미와 사과나무, 황금지빠귀와 파리, 목걸이의 십자가와 하얀 나비.

가장 긴 문장조차 열 단어, 이 작은 책의 한 줄조차 넘지 못하는 문장들을 가지고, 한 챕터가 채 두 세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은 그 단락들을 가지고 그녀는 이 많은 것들을 담아낸다. 그녀는 이 짧은 단어들과 문장들에게 모든 것을 다 쏟아 넣었을 것이다. 그녀가 보고 들었던 것, 만지고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 고민했던 것, 지나온 지금의 회한과 후회,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었던 것, 지금까지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까지.

그런데 다 담아지지가 않는다. 그녀의 재주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 데 그녀가 겪었던 모든 것들, 말하고 싶었던 것을 다 풀어내어야 하는데 그것들이 단지 글이라는 방법 하나로는 모자랄 뿐이다. 손짓, 발짓, 텔레파시까지 모두 동원해도 모자를 것만 같은 것을 단지 글로 보여주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시의 언어를 택했다. 다 담아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넘치게 하리라.

가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분위기와 아우라 앞에서 압도당하는 작품들이 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보고나면, 읽고나면 그 분위기에 압도당해 어찌할 바 모르는 그런 작품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올빼미일 뿐이다, 그저 파리가 앉아있는데, 단지 자전거가 지나가는 데 그 문장의 휩쓸림에 함께 호흡하며 숨죽이며 빨려 들어간다. 마치 공포영화 속 한 장면, 적막한 서늘함 속에서 다음에 어떤 것이 튀어나올까 하는 심정으로.

이 작품이 활자로 독자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그녀를 넘쳐흐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담아내고 싶어 하는 것들이, 그 공포와 불안과 가슴속 치미는 먹먹함과 뱉어내지지 않는 하나의 버찌씨가 그 단어와 문체의 간결함 속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책 밖으로, 우리의 눈 속으로,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녀의 담아내는 작업은 그녀가 느꼈던 감정과 체험을 넘쳐흐르게 하기 위함이다. 그녀가 시의 언어를 쓰는 것은 상황과 상황의 대비 때문만이 아니다. 그녀는 그녀가 겪었던, 느꼈던 숨 막힘을 글로는 그 전부를 표현할 수 없다. 단지 그 숨 막힘을 전달하는 도구로 글을 이용할 뿐이다. 글은 그녀의 숨 막히는 먹먹함을 그대로 알려줄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그녀의 잔을 작게 만들었다. 단어와 문장이라는 잔속에서 그녀의 먹먹함을 그 안에 다 채우지 못 할 바에야, 더 많이 담고 더 많이 넘쳐흐를 수 있도록. 담고 넘쳐흐르게 하고, 잔을 넘어뜨렸다. 그녀는 더 많이 넘쳐흐르게 하기 위해서 점점 그녀의 잔을 작게, 투명하게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가 느꼈던 날것의 생생함, 생생함을 넘은 헐떡거림을 전달해 주고 싶어서. 그녀가 사용하는 시의 언어는 그 사랑과 희망의 대비 뿐 아니라, 그녀가 담아낸 것들을 더욱 잘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다. 
 

그녀의 작품 속 많은 인물과 사물은 그녀가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하나하나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모두 다 소중하다. 그녀는 하나하나의 인물들에게 모두 자신을 다 쏟아내었다. 크로너 할멈의 죽음도, 사과를 집어먹는 사과나무도, 올빼미와 황금지빠귀도, 빌마의 머리 속을 휘젓는 흰 나비까지도. 그녀는 그 하나하나에 자신을 다 담아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그 잔을 넘쳐흐르게 하고 넘어뜨린다. 그녀들이 우리에게 더욱 생생히 다가오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는 담아냄이 중요하다. 담아내고 남은 것의 넘쳐흐름은 우리를 점점 죄어온다. 그리고 그녀가 넘어뜨린 잔 속 그 생생함에 압도 받으며 이야기의 마지막을 덮어낸다. 글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우리를 옭죄어오는 것들이 하나하나 많아지고 그만큼 그녀와 동화되어 숨 막히고 흐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녀의 작품은 어렵다.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이 것이 어떤 의미인가, 이 등장인물은 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를 떠올릴수록 우리는 점점 그녀를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고 낯설어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그녀가 만들어낸 그녀의 모습들 하나하나를 쓰다듬고 보듬는 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 하나의 단어, 인물을 만들기 위해 그녀는 또 하나의 그녀를 만들어낼만큼의 노력을 했을테니 말이다. 다만 그녀를 따라갈 수 없는 그저 그녀를 따라가보고 싶어만 하는 우리들은 그녀를 그냥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그 넘쳐흐르는 것들, 하나하나의 그녀들과 함께
숨 막히고, 힘들어하고, 흐느끼고, 두려워하며
빈디시가 여권을 타내기 위해 했던 자존의 부정만큼이나
뱉어내어지지 않는 버찌씨를 뱉어내보려 노력하며 순순히 압도당하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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