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탄탄히 해줄수있는 독서법
'온다 리쿠 종합선물세트, 모듬 온다 리쿠, 온다 리쿠 샘플러'라는 문구로 수식할 수 있는 단편집이다. 미스터리, 호러, SF 등 온다 리쿠 문학의 다채로운 세계를 만낄할 수 있는 열 편의 소설이 수록되었다. 온다 리쿠 소설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입문서가, 온다 리쿠 마니아들에게는 보석과도 같은 컬렉션이 되어줄 책.
앞서 국내에 출간된 '삼월' 연작에서 볼 수 있듯, 온다 리쿠는 '예고편'이 되는 소설을 쓰고 그것을 바탕으로 장편을 쓰면서 점점 이야기를 확대시켜 나가기를 좋아하는 작가다. <밤의 피크닉>의 전날 밤 이야기를 담은 단편 '피크닉 준비'를 비롯, 이 단편집의 주를 이루는 작품들 역시 온다 리쿠의 여러 장편소설과 연결되어 있다.
또 하나의 사요코 이야기인 '도서실의 바다'와 더불어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의 히로인 리세의 어린시절 이야기, 어느 웨이트리스의 살의와 고독을 그린 섬뜩한 이야기, 미발표 장편 SF의 예고편 등 총 10편의 수록작은 각각 1995년부터 2001년 사이에 씌어졌다.


소녀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보이고는 몸을 홱 돌려 창가로 가버렸다. 갑자기 가슴이 쓰렸다. 왜지? 왜 이런 사소한 일로 가슴이 쓰리지? 나쓰는 소녀의 뒷모습을 본다. 나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 이런 일로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다. 어차피 자기가 아는 사람이 모두 자기를 좋아해 줄 수는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소녀의 감색 뒷모습은 창가에 차갑게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늦가을의 햇살처럼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 '도서실의 바다' 중에서
꼼꼼하게 화장한 얼굴에서는 청결함이 느껴지고 이목구비 자체도 나쁘지 않지만, 표정이 빈곤한 탓에 굳이 말하자면 쓸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곧바로 잊어버릴 타입의 얼굴이다.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그녀 뒤를 지나갈 때, 그녀의 코트에 커다란 핏자국이 튀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울 속의 그녀가 나의 시선을 깨닫고 흠칫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코트 자락을 내려다보았다. 핏자국에 손가락을 댄다. 화장실 문이 닫힌 순간, 나는 속으로 헉 소리를 질렀다. 거울 속의 그녀는 웃고 있었다. 자기 손가락에 묻은 피를 보고 웃고 있었던 것이다. - '작은 갈색 병' 중에서
이상하다. 나는 왜 이렇게 괴로울까. 왜 좋아해 마지않는 와타루가 원망스러울까. 왜 이 사랑스러운 소녀가 밉살스러울까. 나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 스튜를 뜨며 필사적으로 그 답을 찾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런 것은 공평하지 않다. 시선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요염하게 미소 짓는 그 여자의 시선이. 여자는 나의 표정을 음미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 그녀는 눈치 챈 것이다. 내가 지금 무척 '더러운 여자애'가 되어 있다는 것을. - '수련' 중에서 |
온다 리쿠 (恩田陸) - 1964년 미야기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1991년 제3회 일본 판타지노벨 대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 <여섯 번째 사요코>(신초샤)로 문단에 데뷔했다. <밤의 피크닉>으로 제2회 서점대상 1위를 했고, 제26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다. 2005년 발표한 <유지니아>는 제133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른 동시에, 제59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장편부문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로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다.
국내 출간작으로는 <밤의 피크닉>, <삼월은 붉은 구렁을>, <굽이치는 강가에서>, <네버랜드>, <빛의 제국 - 도코노 이야기>,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여섯 번째 사요코>, <흑과 다의 환상>, <황혼녘 백합의 뼈>,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유지니아>, <라이온하트>, <민들레 공책>, <엔드 게임>, <불안한 동화>, <구형의 계절>, <도서실의 바다>가 있다.
권영주 -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다빈치 코드의 비밀>, <아버지의 발자국>,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네버랜드>, <빛의 제국 - 도코노 이야기 첫 번째>, <흑과 다의 환상>(상.하), <엔드 게임 - 도코노 이야기 세 번째>, <위조자>,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유지니아>, <얼어붙은 송곳니>, <도서실의 바다> 등이 있다.

 |
<도서실의 바다>는 기존 독자를 위한 책 같지만, 이제부터 온다 리쿠의 작품을 읽을 독자에게도 권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가답게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 SF 등 온갖 장르를 망라하고 작가의 에센스를 쏙쏙 골라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노스탤지어' 같은 경우, 온다 리쿠 본인도 자신의 '원점'이라 하듯 그녀가 이후의 작품에서 다루는 테마, 차용하는 모티프 등이 옹골지게 들어차 있다. 온다 리쿠 종합선물세트, 모듬 온다 리쿠, 온다 리쿠 샘플러 같은 <도서실의 바다>로 그 다양한 맛을 한번 확인해 보면 어떨까. 마음에 드는 맛을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장담하고 싶다. - 권영주 |
|
|
봄이여 오라
작은 갈색 병
이사오 오설리번을 찾아서
수련
어느 영화의 기억
피크닉 준비
국경의 남쪽
오디세이아
도서실의 바다
노스탤지어
작가 후기
작품 일람표
옮긴이의 말 - 열 가지 맛 온다 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