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궁궐사건 - 궁궐,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쏭내관의 재미있는 기행 시리즈
송용진 지음 / 지식프레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지은이는 한국화를 전공한 사람이다. 그 덕분인지, 책은 보는 사람  눈을 배려한다.  

 또 이 책은 술술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그야말로 책 제목처럼 사건에 집중하여 짧은 순간 일어났던 대단한 일들을 눈앞에 펼치듯이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카메라 앵글처럼 보는 각도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사건을 찍어 읽는 사람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경험을 한다.  

 게다가 이렇게 정성껏 샅샅이 공부하여 궁궐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 보여주니, 주인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던 궁궐에 핏줄이 살아 돌고 말을 걸어 오는 듯 하다.  

 한 가지 바라는 바는, 이 책을 끌고 나갈 때 덧붙였으면 좋았을 방향이다. 지은이가 전공자도 아니면서 이와같은 책을 내려면 그 공부가 어떠했을지, 얼마나 공을 들이고 애를 썼을지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런, 전공이 역사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이,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무엇을 참고하면 되는지 하는 내용을 넣었더라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실록에서 나온 말을 끌어쓴 글들이 나오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많이 참고했을 것이고, 그 밖에 어떤 자료(사료)를 썼는지 밝혔으면 한다.  

 들어가는 말에서 지은이는, 세자로서 문종이 20년 넘게 제왕수업을 받고 단종이 태어나기도 한  선당 앞에서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버리는 엄마와 아이 이야기를 했다. 그랬기에 그 옆쪽에 자선당 사진이 나오는 게 강녕전이 나오는 것보다 낫겠다.  

 정희왕후가 자을산군으로 다음 왕위를 잇겠다는 전교를 내릴 때, 자을산군은 열세 살이었다.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몇 년 한 끝에 그는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정치 안정을 이루었으니 그가 성종이다. 이 때, 단종은 이보다 한 살 어린 열두 살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단종도 충분한 보필이 있었다면 수많은 피를 흘리고 수많은 특권층을 만들어 두고두고 정치와 백성에 부담이 되었던 세조 반정 대신 세종대 치적을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한 두 가지 더 짚어보자면, 이 책은 아주 술술 읽기에 좋은데, 그것은 어렵지 않은 대화글과 쉬운 우리말을 살려 쓴 덕도 있다. 그러기에 들어가는 말에 쓴 '필자'라는 말은 더 아쉽다. 요즘은 필자라는 말을 훨씬 덜 쓴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그저 'I' 라고 하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왕같은 사람이 자기를 부를 때 삼인칭으로 할 뿐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삼인칭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처음에 많이 놀란다고 한다. '선생님은', '엄마가' 이런 말들에 '필자'도 들어간다. 이오덕선생님도 이것을 조심하도록 하였다.  

 '며칠'이라 할 것을 '몇 일'로 쓴 것도 보이고 19쪽 인정전에서 연잉군은 영조인데 정조라 쓴 대목도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로 보인다.  

 꼭 하고 싶은 말은 319쪽 덕혜옹주를 두고 한 말이다.  

  비운의 황녀로 남아 있는 덕혜옹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결코 받지 않았을 너무나 많은 상처를 그녀는 평생 안고 살아야 했다. 

 공부를 하다가 그 대상을 진정으로 아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역사에서 위와 같은 태도는 때로 더욱 중요한 측면을 놓치게 한다. 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것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우리 백성들이다. 그들은 역사에서 주인이지만 어느 때도 제대로 대접받거나 알맞은 지위나 힘을 가져보지 못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쥐고 휘두르는 권력에 늘 희생당했다. 바로 앞 시대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하늘 아래 사람은 모두 같다는 깨달음을 이끌어 동학혁명을 일궈냈다. 하지만 그들은 목이 잘리거나 죽임을 당하고 우리는 스스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기회를 또 다시 잃어버렸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바르게 이끄는 선택을 하지 못했을 때, 위정자의 딸도 어려움을 겪지만 힘없는 백성들이 겪은 수많은 고초는 더욱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뼈아픈 법이다.  

 위부터 해내려는 개혁정치를 꿈꿨던 정조임금도 시대를 혼자 다 치유하지 못하고 끝없이 싸워야만 했다. 그또한 가진 권력을 조금이라도 내놓지 않으려는 세력에 밀려 개혁을 완성하지 못하고 수원화성을 다 지어놓은 상태에서 죽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밀실정치, 권모술수 정치를 하지 않으려고 검은 권력을 내어놓고 홀홀단신 애썼지만 마지막에 역시 깨어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어야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느꼈다 하니 그 아픔과 외로움에 참으로 미안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정조임금 시대보다 훨씬 낫게도, 국민 모두한테 선거권이 있고 우리가 만드는 여론이 힘센 까닭이다. 우리는 그 선거권으로 노대통령한테 투표했으나 일하기 아주 애매한 국회의원 구성을 이루어 놓았고 마지막에는 미디어에 몰리는 그를 내어주고 멀찍이서 보기만 하다가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눈물로 그를 잡았다. ) 민비가 죽임을 당한 일 또한 더 많은 기가 막힌 일이, 그 시대 우리한테는 많았다는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런 사건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을사조약이 일어난 일을 '민망한'일이라고 쓴 일도 바꾸어야겠다. 요즘 세대가 하는 말로 크게 따지지 않고 쓰다보니 그랬을 텐데, 그 일이 어찌 '민망한'으로 꾸며서 다할 일이었겠는가. 

 이런 모든 것이 이 책에 있어도 그것은 이 책이 가진 좋은 점을 다 가리지는 못한다. 오히려 좋은 책이기에 이런 몇 가지가 눈에 띄었으며, 궁궐은 각 건물 앞에서 1분을 더 있기 어렵게 하지 말고 마땅히 이런 책이나,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같은 책에 나오는 설명을 건물에 함께 두어 보는 이가 역사를 알고 그 자리를 떠나게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1분이 안 되어 떠나는 엄마와 아이보다, 그렇게 떠나게 하는 궁궐, 박물관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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