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직업의 역사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8
이승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살아있던 직업의 역사다.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근대 조선을 풍미했던 직업들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한 사회의 지배적인 욕망의 배치와 경제적 메커니즘을 대변하는 것이 직업이라 정의한 후, 조선의 근대성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상징적인 직업들을 선정하여 보여준다.

 영화, 도시, 젠더(섹슈얼리티), 통신, 교통, 의학(위생담론), 독서(읽기문화), 모성에 대입되는 각각 변사, 물장수, 기생, 전화교환수, 인력거꾼, 여차장, 약장수, 전기수, 유모들이 이러한 직업들이다. 익숙할 수도 있는 기생이나 유모 같은 직업도 있지만 변사나 물장수같은 낮선 직업들이 각각의 근대성을 대표하며 하나의 장을 구성하고 있다는 게 현재와는 사뭇 다른 근대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옛날 신문을 찾아보지 않으면 삶을 살며 쉬이 들어보기 힘든 이름을 지닌 익숙하지 않은 직업들과 주로 영화나 드라마, 소설 같은 미디어로서 접하여 단편적이고 의도적으로 구성된 이미지만 알고 있었던 직업들을 설명하고 그 직업들로 근대의 사회상을 그려낸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작업이겠지만 작가는 그 시절의 신문, 잡지 기사들을 인용해가며 능숙한 필치로 그 직업의 애환과 그 배경을 구현해나가며 역사를 그려낸다. 딱딱한 문체로 통계 중심의 자료들을 인용하여 역사를 설명하는 여타 역사서들에 비해서 재미와 내용 모두를 잡았으니 대중성 면에서 합격점이라고 본다.    


 시대의 모습을 에둘러싸고 있는 노동자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의 애환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서도 작중 등장하는 직업들의 애환은 그 당시에도 문제시 되었던 것 같다. 작품에서 시대상을 상징하는 드러내는 직업들마다 모두 기사에도 등장해 호소를 할 정도로 그 심각성을 보인다. 

 시대를 상징한다는 것은 곧 격변하는 시대상의 표면과 밀착되어 있음이라 이 직업들은 사회라는 거대한 물결의 하층부에서 잘 움직이지 않고 사뭇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힘이 있는 직종들에 비해 더욱 격렬하고 불안정적으로 떠있던 것이었을까. 어이없게도 이러한 애환은 현대에도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성의 자동차를 모조리 사서 모은 뒤, 때려부수고 싶다고"  외치던 인력거꾼의 처절한 울부짖음이나 조합을 양 쪽으로 갈라 서로 생존 경쟁을 하던 물장수들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 노동자들에게도 낮설지 않게 벌어지는 광경이다.
 전화교환수나 기생, 유모, 여차장, 근대를 이야기하는 시대의 직업 9 가지 중 4가지나 여성의 직업이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성적인 모독과 착취에 시달려왔다. 그리고 여전히 힘 없는 여성들은 지금도 그들의 직장에서 성적인 착취라던지 근무 상의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그 직업들의 애환이라는 것에 현대성의 맹아라는 것이 있었다라기보다 근대의 직업이든 지금이든 직업의 간난이라는게 영속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지 않으려나. 어찌 해석을 하던 분명한 것은 근대의 필요성과 함께 태어나 근대의 격변과 함께 흥망성쇠를 겪은 '직업'들의 역사는 비가로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작품은 보여준다. 
 아직도 그것은 찬가보다는 비가에 가깝게 흐르고 있다.

근대를 밝히던 경성이란 무대와 인간 군상들은 모두 사라지고.

하지만 근대를 관통했던 작중의 직업들 모조리 사라져 없어져 않았을 것이다. 직업에 매인 채 삶을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를 담은 채, 그들이 불렸던 이름은 사라져 옛날의 신문에서만 보여지지만 그 직업들 서로 간의 속성은 분할, 치환되거나 혹은 합해짐을 거듭해 또다른 모습과 이름을 지닌 채, 현대의 욕망을 투영하며 그 직업에 매인 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갑남을녀들과 함께 영욕을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의의는 사회사적인 측면에서 과거의 직업들의 열거함으로서 근대의 사회상을 슬쩍 훔쳐보며 단순히 근대성을 고찰함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직업은 근대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 개인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도구이자 자아의 소명으로서 존재해왔다. 고로 이 책의 의의는 직업이라는 매개를 사용해 근대와 현대와의 대화를 시도함으로서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이자 공통적으로 작동되는 개인들의 '삶의 역사성'을 보여줌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히 다시 적어 보기를,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살아있는 직업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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