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 기후의 역사와 인류의 생존
벤저민 리버만.엘리자베스 고든 지음, 은종환 옮김 / 진성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어야 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책이 있다. 그냥 쭉 읽어나갈 수는 없는 책. <시그널>도 그렇다. 역사학자와 지구과학자의 콜라보. 기후학에 중점을 두고 읽어나갈 것인가 역사학에 중점을 두고 읽어나갈 것인가를 적어도 첫 번째 독서에서는 정하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인류의 시작과 현재를 넓은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책이라 독자가 중심을 세우고 읽지 않는다면 왠지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도 아니라 깊은 심연 한 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다는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책을 읽을 방식을 고민하기 전에 정말로 궁금해지는 건 이 책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결과물인가 하는 거. 먼저 사람들의 사회사 같은 일상을 혹은 서사를 다루는 역사로 큰 뼈대를 잡고 굵직굵직한 각 시기의 기후를 살핀 것일까, 아니면 굵직굵직한 기후 변화를 먼저 뽑아내고 각 시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역사를 살펴보았을까?

이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결과물을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1차 독서는 역사를 중심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큰 줄기는 정해져 있다.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은 전적으로 기후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니라고 해도 기후가 나름의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 그러고서 세부적인 이야기들이 생긴다. 가뭄 때문에 빙하기 때문에 큰 물 때문에 문명은 자신의 길을 바꾸었다.

하지만 어떤 문명의 흥망성쇠가 어떤 세밀한 기후 변화와 관계가 있었는지를 세세하게 기억하는 일은 재빨리 진행되는 1차 독서에서 머리에 넣기란 역부족이었다. 기후 변화와 함께 하는 흥미로운 기상학, 지질학, 기후학 용어들을 정리해야 하는 과제도 2차 독서로 미루어야 했다.

그저 인류의 역사를 기존에 알던 굵직한 역사는 다시 한 번 정리를 하고 낯선 지역의 역사는 새롭게 소개를 받으면서 아쉽지만 굵직한 사건과 서사 중심으로 1차 독서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지구 온난화 이야기는 너무나도 뻔한 것 같아서 그렇지 뭐, 하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고대 로마인도 마야인도 맹목적인 산업혁명 시대 사람도 아니다. 찬란한 문명도 결국에는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되돌아보고 우리는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소멸해 갈 수 있도록 조금은 내 생활을, 자연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시그널>은. 물론 공부할 거리가 많은 역사책이자 기후학책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지만.

역자의 영어식 표기 선호 때문에 시저나 성 어거스틴, 오스만 터키 같은 용어 앞에서 살짝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머리가 나빠서 낯선 영어 약자 표기를 한국어 표기로 바꾸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독자의 일방적인 바람도 있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종이질만큼이나 만족한 독서를 했다. 여러 번 공부하면서 봐야 하는 텍스트가 또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좋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