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미래,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 지음, 이억주.박태선 옮김 / 동아엠앤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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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을 생각하면서 머리가 어지럽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파인만은 이 세상에 (아마도 제대로라는 말을 붙여야겠지만)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 양자역학에 확률을, 그것도 기존 확률이 아니라 (그렇다고 새로운 확률도 아닌) 낯선 베이지언 확률을 가져다 붙였다. 확률이라면 내가 그 이야기를 알아들을 확률이 0에 가까우니 당연히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할 확률 거의 100%와 결합해 참으로 이상하고도 요상한 독서를 했다. 그렇다고 책이 아주 어려우냐, 그렇지도 않다. 확률로 설명하는 대략 30%쯤만 빼면 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간혹 모레라거나 실재와 실제를 혼동하는 자판 입력의 문제가 있고 아주 약간 영어 어순은 이대로인 거 같은데 한글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지 번역 상태나 저자의 글쓰기 실력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그리고 새로운 물리라니.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개념이나 관점을 접하면 ‘아,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물리학에서는 완벽하게 이해는 하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내 머리를 퉁 치는 자극이 있을 때는 ‘어, 오, 우와, 완전 멋짐!’이라는 기분이 든다.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도 역시 그런 책. 하지만 표지와 앞날개에서 내세운 그 누구도 실체도 모르고 사실 올지 안 올지도 모른다는 4차 산업혁명하고는 그다지 관계는 없어 보인다. 큐비즘은 그냥 큐비즘으로 끝이 나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는 사실 아직 태어난 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으니 고전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어색한 고전 양자역학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설명이 참으로 친절하다. ‘양자’라는 개념 자체는 다른 곳에서 참고하거나 찾아봐야 할 것 같지만. 그래서 네이버를 찾아봤다.


양자란 이런 녀석이다.

“고전역학에서 물리량은 연속적이라고 표시되어 있었으나 전기량 등은 전기소량(素量) e의 정수배로 되어 있다. 이 e와 같이 어떤 종류의 양이 모두 그 정수배로 되어 있을 경우, 이것을 일반적으로 양자라 한다. 방사에너지에 관해서는 1900년 M. Planck가 에너지의 불연속성을 제창하고 양자가설(量子假說)을 제기하면서 이 최소량을 에너지양자라고 불렀다. 작용량의 최소단위로서 작용양자(作用量子)가 고려된 후부터 이것들을 일반적으로 양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자 [quantum, 量子] (원자력용어사전, 2011.,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63851&cid=42434&categoryId=42434)


이때 소량은 “구체적(具體的)인 어떤 종류(種類)의 양의 최소(最小) 단위(單位)”라고 한다. 역시 네이버 사전이다. 그러니까 합쳐보면 양자란, 비연속적인 정수배로 나타나는 단위 물리량이라고 하면 될까? 으악, 문과적 머리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자라는 개념만 살짝 피해가면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에서 설명하는 양자역학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왜 그렇게 되는가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입장/파동 이중설도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이중슬릿 실험도 모두 그러한 것이 있다더라, 그러니 내 상식으로 채택하겠노라, 하는 입장을 충분히 견지할 수 있다.


하지만 확률은 이야기가 다르다. 빈도확률이건 베이지언 확률이건(왜 베이즈 확률이라고 하지 않는 걸까?) 확률은 다시 두 눈을 부릅뜨고 여러 번 읽어봐야 한다. 빨리 그런 시간이 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1차 독서에서는 실패했다. 그러니가 16장부터 19장까지는 좀 더 고민하면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해야 할 숙제가 생겼다는 걸 기뻐하기를!(나한테 하는 말이다.)

그래도 큐비즘이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관은 마음에 든다. 어떤 행위자가 개인의 경험 내용에 대한 신뢰도를 조직화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의 전부라니. 특정 개인의 경험에서 보편을 찾으려고 노력하려는 시도라니. 말들이 참으로 근사하지 않은가? 173쪽에 “큐비즘은 사물들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그들이 하는 방식대로 움직이기에 자연의 법칙이 발명되었음을 의미”한다는 문장에서는 멋진 책을 읽는다는 독자로서의 희열도 느껴졌다. 이제 큐비즘은 처음 알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분명히 계속해서 알아나가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행복하다. 기쁘다. 독서는 이런 맛에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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