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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ㅣ 대한민국 도슨트 13
이지상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월
평점 :
고향, ‘나의 늙은 애인 같은’
포천/ 이지상
그 사람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노랫소리가 들리고 떠도는 영혼이 보이고 장차 닿게 될 어느 장소를 만나게 된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덕산기에 있는 ‘숲속 책방’에(아, 강기희 작가도 본향으로 떠났구나) 걸려 있는 최광임 시인 시, ‘덕산기에서’를 제목을 바꿔 노래로 만든 이이기도 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볕 좋은 마루 위 고양이처럼/ 순하게 늙어가자/ 나의 늙은 애인아 아직 오지 않은/ 나의 늙은 애인아/ 느릿느릿 흐르는 강물처럼/ 천천히 늙어가자 애인아.’
이 노래에서 언급된 ‘애인’을 ‘고향’으로 변주(變奏)해 읽었다. 싱어송 라이터 가수, 여행가, 사진가 등 이름표를 많이 달고 있는 이지상 작가가 이번에는 스스로 대한민국 도슨트가 되어 쓴 고향이 이야기, 포천(抱川).
이 책은 그 동네가 낯선 이에게 내미는 따뜻하고 친밀한 여행기다. 맛집, 포토존, 눈요깃거리 중심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이 경험한 일을 자세하게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시베리아 등 밖으로 떠돌던 그가 이제 ‘물이 흐르는 마을’을 안고 나타났다. ‘적당한 갈망, 지나친 낙관’을 일상으로 여기는 사람다운 내용이다.
책이 나온 후 그는 어머니 산소를 찾아 헌정(獻呈)했다. ‘포천 촌놈 내 아들, 이만허믄 잘했다’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알려왔다. 읽는 내내 유독 고향에 관한 노래를 많이 부른 가수 김상진 씨 ‘고향이 좋아’가 뜬금없이 떠올랐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타향도 정을 두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님 생각 고향 생각 달래려고 하는 말이야/ 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개성 인삼은 잘 알아도 포천 인삼이 유명하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개성에서 삼 농사를 더 이상 지을 수 없게 되자 삼 종자를 가지고 와 이곳에서 성공을 거둔다. 품질은 최상, 경기도 인삼 생산량 15%를 차지하고 있다.
포천 막걸리, 이동 갈비 등은 포천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모두 군대(군인)와 관련이 있다. 막걸리를 유독 좋아했던 연산군이 시를 지을 정도였다. ‘참새는 가지를 다투다가/ 떨어지고/ 나는 벌레도 정원에 가득히 노닐고 있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느냐/ 한잔으로 천 가지 근심을/ 잊어버리네’ <1504년 1월, ‘연산군 일기’>
포천은 한국전쟁 최초 격전지였고 지금도 경계선이 여전하다. 그래서일까? 글 군데군데 전쟁 상흔이 남아있지만 ‘칼의 반대말은 방패가 아니다. 모든 전쟁은 꽃으로만 가능하다. 꽃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어떤 싸움도 불가하다.’고 잘라 말한다. 한탄강 꽃 정원, 방어 벙커, 3‧8선 휴게소 등을 소개하면서도 이 점을 강조한다. 뱅크시 작품, ‘꽃을 던지는 사람’과 이미지가 자연스레 겹친다.
그가 제일 아끼는 장소라는 산정호수. 물안개를 만난 날이면 더 가슴을 후비 파는 아픔이 솟는다. 개그 소재로 전락하고 폭군으로만 기억하는 궁예 눈물을 ‘멍에’로 재해석해낸다. 고모리 호수공원 축제의 장에 있는 ‘김종삼 시비(詩碑)’도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다. 김 시인은 황해도 은율이 고향이지만 이런저런 사연에 얽히고설킨 끝에 이곳에 정착했다. 풀피리 불던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한탄강 변에 있는 ‘오세철 풀피리 전수관’을 들러보는 것도 좋겠고 ‘무예도보통지’를 지은 저술가인 무사 백동수를 만나고 싶다면 무란 마을에 들면 되겠다.
필자가 가보고 싶은 한 곳이 있다. 문학 서점, ‘무아의 계절’. 근처 프로방스 마을도 있다니 산책길에 만나는 작은 기쁨이겠다. 책방 주인은 바이올렛(연두)을 사랑하는 이다. 이곳에 가면 자신 존재조차 잊어버리는 무아(無我) 지경을 경험할지도 모르겠다.
길 위 사람이 남긴 말, ‘타인의 가슴을 내 가슴에 이식시키거나 타인의 발걸음을 내 발로 옮겨 보는 일, 그것이 일탈이라면 모든 일탈은 성찰에 가깝다.’<이지상, ‘스파시바, 시베리아’ 머리말 중에서>
왜 그리운 것들은 발자국 뒤편을 서성거리는지 궁금한 이는 이제 떠날 시간이 마련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