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지구를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 동물과 지구를 위한 미술관
우석영 지음 / 마농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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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무래도 편안히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전람회를 산책하듯 갤러리를 순회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 감상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불편’으로 받아들이고 ‘심호흡’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첫 장을 열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인물들이 등장, 한마디씩 한다.
먼저 빈센트 반 고흐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란다.
‘꿈꿀 권리’를 말한 가스통 바슐라르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색채와 양감으로 넘쳐흐르는 공간은 등장하는 것들, 인간과 동물을 움직이게 한다.’
마지막은 토머스 베리, ‘황혼의 사색(思索)’을 인용한다. ‘…동물들과 수많은 만남을 생각해보라. 이런 순간들은 우리에게 우주가 약탈 대상이 아니라 서로 교제할 주체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게 한다.’
철학하는 사람 우석영 작가 신작, ‘불타는 지구를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은 이 세 사람 말에 귀만 기울이면 전체를 이해하는 문장이 된다. 그는 2018년 ‘동물 미술관’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을 함께 이해하고 알아가자는 새로운 제안이었다. 이번에는 그 책에서 다 말하지 못한 말, 마치 분풀이하듯 발언하고 이어간다.
위기, 희망, 분노라는 말 대신 ‘권유’를 깔고 있다. 이해를 촉구한다는 말도 사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조여오는 긴장감은 저자가 복선을 깔아둔 장치다. 참으로 절묘하고 탄복하게 한다.
총 3부로 구성된 내용은 1부는 동물, 2부는 자연 혹은 지구, 3부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상황을 생태 관점에서 훑었다. 해석하는 힘이 빼어난 작가다.
등장하는 작품은 만든이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그 속에 숨겨둔 아이콘(icon)을 해석하는 데 힘쓴다. 이를테면 이렇다. 야생동물을 주로 그리던 영국계 화가, 아서 테이트 작품 ‘일촉즉발- 곰사냥 초겨울’(1856)을 보여준다. 이어서 야생 자연에 호기심이 많았던 탐구자, 호치노 마치오 운명을 말한다. 두 사람은 ‘곰’과 관련 있다. 아서는 살았고 마치오는 죽었다.
만남과 마주침에서 엇갈린 운명. 탐구욕은 어디까지이며 사냥은 ‘허락인가’ 묻는다. 두 사람 모두 곰과 ‘만남’을 가졌지만 ‘관계’는 무산되었다. 어느 한쪽이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점층(漸層)된다. ‘시튼 동물기’라 하면 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사람, 어니스트 시턴이 등장한다, 동물학자이자 동물 문학 대가인 그는 인디언 연구소 소장이기도 했다. 수(sioux) 부족에게 얻은 이름은 ‘검은 늑대’다. 시튼은 그림도 그렸고 글도 썼다. 특히 곰에 관한 단편을 여럿 남겼다. 그중 하나가 직접 삽화를 그려 넣은 ‘회색곰 왑의 삶’이다.
가족을 사냥꾼에 의해 잃고 절망에서 용기를 내어 도전하고 분노하는 일생이 그려진다. 신체가 강건해질수록 지혜도 성장한 곰은 관계를 맺기보다 ‘맞서’ 싸운다. 생존을 위해서.
과연 어느 쪽을 응원할 마음이 생기는가? 시튼은 곰 시각(視覺)에서 인간을 봤다. 자연과 인간, 기어이 등장하는 ‘동물 보호권’ 실마리를 찾아내는 단서다.
이제 ‘불타는 지구’ 이야기를 할 때다.
핀란드 화가 에로 야르네펠트(1863~1937)가 그린 ‘덤불 태우기’. 주제는 숲을 태워 농지를 만드는 일,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화전(火田)을 일구는 작업이다. ‘태워야만 사는 기구한 삶’이다. 그림 속 소녀는 우리를 쳐다본다. 몰골은 형편없으나 쏘아보는 눈을 통해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전해져 온다. 그림은 커리어 앤드 이브스 작, ‘시카고 대화재’(1871)로 이어진다. 실화(失火)든 방화(放火)든 ‘태워서 없애는 일’은 끔찍하다.
2019년 여름을 기억하면 된다. 언론에서조차 ‘인페르노’(inferno)라 불렀던 지옥 같았던 그때. 몇 주 동안 계속된 아마존 열대림 화재 사건.
‘산불’은 스스로 발화(發火)하기도 한다. 숲 스스로 청소하는 일이다. 여기에 ‘개입’은 반드시 불행을 초래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 탄소 저장고인 숲이 사라진다는 경고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 노력과 무분별한 개발과는 다르다. 숲이 사라진다는 말은 인류를 지켜주는 성벽이 무너졌다는 말과 같다.
‘미술관옆 동물원’이라는 영화는 아련하고 아프다. 잃어버린 그 시절로 데려가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서 동물과 지구, 인간은 그리 낭만을 느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불타는 밤’은 청춘이 누리는 호사(好事)이지만 ‘불타는 지구’는 재앙(災殃)이다.
우석영 작가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생태문명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생태주의 사상, 탈근대 전환과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그간 ‘숲의 즐거움’, ‘철학이 있는 도시’, ‘낱말의 우주’, ‘걸으면 해결된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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