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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털 - 노순택 사진 에세이
노순택 글.사진 / 씨네21북스 / 2013년 5월
평점 :
노순택 작가의 사진전에 간 적이 있다. 가장 힘든 순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일은 아니었는데 그 때 당시에는 많이 힘들어했었다. 나 자신이 보잘 것 없게 느껴졌고 아무것도 이뤄놓은게 없다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인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는데 기댈 대도 없었고 난 이렇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던 순간에 최인기 선생님께 연락이 왔고 같이 노순택 작가의 사진전에 가보자고 했다. 두시간이 넘는 길, 고민도 많이 하던 차에 나는 흔쾌히 가자고 했고먼저 도착했던 최인기 선생님은 두시간동안 기다려주었다. 참 고마웠다.
코끼리 열차를 타고 나는 국립 현대 미술관에 도착했고 노순택이라는 인물이 찍은 사진들을 관람했다. 노순택 작가의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대추리에서 찍은 노부부 사진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 글에 상황설명을 써놓았는데 그 설명들은 들어오지 않았고 한 마디 구절만 내 눈에 들어왔다.
'사라지는 것, 영원하지 않는 것. 사진은 순간적이며 영원하지 않다. 과거의 것을 붙잡는다. 찍는 동시에 과거가 된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슬픈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결국엔 이 노 부부도 사라질 것이었다. 사라지고 지워지고 없어질 것이었다. 살아온 흔적들이 없어질 거란 생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마구 났다. 나도 결국엔 지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사진을 보면서 울었다. 그러면서 노순택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당신이 찍은 사진들, 찍히고 찍는 사진의 순환. 그 순환의 정점에 있는 사람. 가슴은 뜨거워서 뜨거운 만큼 행동하는 사람. 노. 순. 택.
이 사람은 뭐지? 라는 생각으로 <사진의 털>이란 책을 집어들었다. <사진의 털>은 뜨겁다. 뱀만큼이나 잔혹하고 음란하고 욕망으로 가득차있다. 그런데...... 그 끝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분노들도 있지만 분명한 건 사람에 대한, 그리고 비 맞은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가슴은 뜨거운 사람을 만났지만 난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건 활활타오르는 장작불이 아니라 가슴 밑 바닥부터 계속 끊이고 있는 가마솥의 따사로운 불이었다.
예순일곱 살 이민강 할배는 솔부엉이가 날아드는 대추리 노인정 앞 풀숩에서 부부사진을 찍었다. "8남매 둘째로 태어나 국민핵교만 갠신히 졸업해 객지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돌아와" 가정을 꾸렸는데, 말로 못할 고생은 객지에서나 대추리에서나 매한가지였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그는 "어느 한 군데 안 아픈 곳이 없는" 아내를 30년 동안 돌봤다. 2006년 1월,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저항운동에 패색이 드리울 무렵 이민강 할배는 사진을 찍어달라 했다. 정든 고향에서 아내와 뭔가를 남기고 싶어했다. 이옥순 할매는 그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난도질당했던 대추리는 2007년 국방부의 삽날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사진이 남았다.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찍었기에 남았다. 찍은 이유는 산 자가 안다. 이럴 때 사진은, 삶을 함께 했던 이의 추억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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