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뿌리
한나 앤더슨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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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를 빠트리고 배송한 듯한 빛바랜 연두색으로 디자인된 책. 이 책을 봉투에서 꺼내 들었을 때의 나의 첫인상이었다. 한나 앤더슨이라. 책 앞날개에 적인 저자 약력을 봐도 생소하기만 했다. 기독교에 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겸손이라는 주제를 과연 어떻게 표현해내었을까. 지금 돌아보니 이런 나의 의구심의 뿌리는 교만에 가까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 책은 소설 혹은 수필 같아 읽기가 참 편한 책이다. 개념을 설명하고 논증하기보다는 삶과 사건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과 내적 사고가 섬세하게 묘사되고 삶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표현한다. 저자는 겸손한 사람을 설명할 때 겸손이라는 단어를 쓰기보다 그 사람의 겸손한 행동과 삶을 묘사하는 방식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고 하였다. 이런 저자의 생각이 책 전체에 잘 스며들고 있다. 이렇게 삶과 이야기로 초대하는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겸손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식물과 식물재배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겸손을 설명하는 점이 탁월하다. 각 장은 하나의 식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데, 그 식물을 키워가며 겪었던 에피소드나 그 식물의 특징과 역사와 연결되는 점으로 겸손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북미 토종 진드기인 필록세라 때문에 프랑스의 포도나무가 죽어갈 때, 북아메리카의 뿌리 줄기에 프랑스의 포도나무 가지 접붙이기를 통해서 난관을 극복했다는 예화는 너무나 강렬했다. 우리의 교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겸손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에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것만큼 잘 보여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겸손에 대한 저자의 통찰과 설명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향한다. 겸손의 어원이 흙이라는 기초적인 설명에서 시작하여, 염려, 스트레스, 자아감, 몸, 감정, 꿈, 지혜, 미래, 욕망, 죽음에 이르기까지 겸손이 얼마나 우리 삶에 많은 부분과 연관이 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다른 이들의 사진을 보고 자기 자신을 작게 느끼는 우리의 상태를 “당신의 삶에서 그저 당신 자신이 너무 커졌기 때문일 것(92쪽)”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안의 교만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삶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교만을 보게하는 영적 엑스레이와 같다.

이 책은 요즘 출간되는 책이나 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자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를 발전시키고 자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주제가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이 책은 담담하게 그 흐름에 다른 목소리를 낸다. 과도한 자기 표현과 자기에 대한 몰입을 떨쳐내고 나는 하나님이 아님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라고 말을 걸어온다.

앞으로 겸손에 대해서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나의 추천도서는 달라질 것 같다. 겸손에 대한 여러 고전이 있고, 유명한 저자가 쓴 책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쓴, 겸손한 디자인의 이 책을 추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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