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은 처음엔 낯설고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뱀과 양배추가 무슨 관계지?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야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이 소설집의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전혀 닮지 않은 감정과 사람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상황들이 이 작품들 속에 함께 있고, 작가는 그 낯섦과 불편함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표제작에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우리 안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 그 일시적인 감흥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냐고.” (p.81)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인간관계나 감정이란 게 결국 완벽한 이해나 일치가 아니라, 그 잠깐의 '농도 변화'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떤 감정은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를 바꾼다.
가장 깊게 남았던 건 「빙점을 만지다」였다.
“살얼음 낀 맥주처럼 알맞은 상태로 쭉 가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 돼.” (p.209)
이 문장은 지금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너무 차가워지지도, 너무 녹아버리지도 않도록 애쓰며 균형을 잡는 하루하루. 그런 온도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미묘한지, 문장 하나가 다 말해주고 있었다.
이 책은 나를 계속 돌아보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느끼는 부끄러움, 동경, 불쾌함, 경계심 같은 감정들이 작품을 통해 더 또렷해지고, 때론 낯선 타인 속에서 나 자신을 본 것 같아 머쓱해지기도 했다.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들여다보게 한다.
정답을 주진 않지만, 감정을 수용하고 관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해주는 책. 불편함 속에서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