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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의 종말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경제인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경제인은 종말 했을까? 아니다. 길가는 사람중에 10에 9은 경제인일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인의 종말이라는것은 무슨뜻일까?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피터드러커가 자신의 첫번째 저서에서 엉뚱한 실수를 하게 된것일까? 그렇다면 이책은 지금까지 이렇게 우리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였을것이 분명하고 7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출판되지 못하였을것이다. 과연 30살의 드러커가 말하는 경제인의 종말이란 무엇인지 들어가보자.
옮긴이의 해설에서 보면은 " 이책의 분석대상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대공황시기,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양차대전 사이에 전체주의가 등장한 이유와 폭정 그리고 그것의 미래 전망에 대한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책을 읽을때 우리가 현재의 시점에서 보는것하고 그당시의 시점으로만 책을 바라보는것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것을 뜻할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에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책을 읽으면은 드러커의 생각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수 있으니 읽으실때 참고하시길~
책은 전체적으로 파시즘, 나치즘, 전체주의를 중심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실 세계사와 철학분야에서 내가 그렇게 박식하지 못하여 나도 저것들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책을 읽다보니 무슨뜻인지 흐름은 알수있었다.그러니 저런 개념들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겁먹지 마시고 본인처럼 저 세가지 개념을 전체주의로 이해해도 무방할듯 싶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다르겠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본론으로 돌아와서 전체주의는 이념이 없다. 적극적인이념은 없고 부정적인 이념만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왜 지금(여기서 말하는 지금은 드러커가 책을 펴낸 1938년이다)에 와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주목을 받는것일까? 그당시 파시즘에 대하여 아주 잘표현한 문장이 있다. " 우리는 빵값이 내리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한 빵값이 오르기를 바라는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빵값이 그대로 있는것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것은 나치가 책정하는 빵값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제정신으로 할수 있는 소리냐고 생각하였지만 그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은 대공황과 세계1차대전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너무나 큰 절망속에 빠져있었다. 너무도 큰 절망속에 빠져있는 경우에는 모순되는 사실을 믿고싶어한다. 큰 기적을 바라면서..
자본주의의 붕괴로 인해 경제인은 종말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돈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고, 거짓말임이 뻔한 사회주의 이론을 믿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악마로 인해서 큰 심리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대공황을 막을수 있으면 자유와 평등도 포기할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것이다. 그러한 대중들의 심리를 파악하여 구질서의 질서는 파괴하되 동시에 겉모습을 유지하는 파시즘이라는 마법사가 출현하게 된다. 파시즘과 나치즘은 이성과 과거를 부정하고 거부했기 때문에 성공했던것이다.
주목해서 봐야하는점이 파시즘이 추구하는 비경제인 사회이다. 자본주의가 경제인의 사회라면은 전체주의는 비경제인의 사회라고 할수 있다. 자본주의의 실패로 전체주의를 내세운 파시즘들은 비경제적인 보상들로 모든 국민들을 만족시킬수 있다고 주장했다. 군국주의로 인하여 비경제적 보상이 가능하였지만 그들에게는 더이상 경제적인 자유나, 그밖의 자유들이 군국주의라는 명목하에 지배 당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과연 그것이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를 포기할만큼 가치가 있는것이라고 생각했었던것일까? 자유보다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평등이 절실했던 사람들이 더 많았을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7장 "전체주의 - 기적인가 혹은 신기루인가? "하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전체주의는 긍정적인이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언제나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떤것들에게 반대하는 이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반유대주의와 전쟁을 성스럽게 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적으로 만드는일을 끊임없이 해야만 했다. 전체주의는 계급과 경제적인 자유가 없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발생하였을때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결정권자가 적다는데 많은 문제점을 가져온다. 예를 들면 전에는 기차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경우 가까운역에 역장이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이제는 중앙관리자에게 의견을 물어서 처리해야 하므로 많은 시간이 소비가 되었다. 전체주의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일이 신속하게 진행되지만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생긴것이다.
전체주의의 등장은 새로운 사회이념의 발생이라기 보다는 특별한 대안이 없어서 기존의 가치와 사상에 반대하기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가 등장한것이라고 할수 있다. 유럽사회가 혼란한 시기에서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파시즘과 나치즘으로 그들이 이룩하고자 했던 야망을 달성하는데 쉽게 한걸음 더 나아갈수 있었다. 대공황이 없었다면 과연 히틀러의 나치가 힘을 얻고 군사력을 증강시켜서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킬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수 있다. 드러커의 미래전망을 보면은 놀랍게도 결과론적으로 봤을때 일치하는것들이 많다. 물론 틀린것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과 의견으로 미래의 결과를 도출해낸다는것은 정말 대단한일이라고밖에 할수 없다.
드러커의 30살의 나이로 이렇게 많은 사실들을 알았다는것과 그것들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것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책이 그의 첫번째 저서엿다는 사실이었다. 첫번째 저서치고는 너무 논리적이고 산만하지 않은 그만의 확고한 신념이 책속에 매력으로 묻어나왔다. 개인적으로 남는 아쉬움은 책을 100%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사회에 대한 기본지식과 어느정도의 기본철학의 숙지, 그리고 대공황과 1차세계대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나는 그래도 다행히 독일과 러시아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이나마 있어서 독일과 소련의 이야기가 나왔을때는 막힘없이 읽을수 있었다. 추가로 이탈리아에 대해서만 조금더 알았다면 이책에서 얻은 깨달음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러커의 책중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완독한 첫번째 책이었다. 그만큼 두껍지만 흥미롭게 읽었다는점이다. 그리고 옮긴이가 서두에서 말한것처럼 정독하기를 강력하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