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콘택트 - SF 앤솔러지
김단비 외 지음 / 달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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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와의 조우, 즉 외계 문명과 마주친다 가정했을 때

가장 기대되고 궁금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생김새? 문화? 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외양을 넘어서

사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무래도

'소통 가능성' 아닐까?



지구별 밖의 새로운 존재를 다룬 작품들이야 지천에 널렸다만

이 책에 나오는 미지의 존재들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퍼스트 콘택트>라는 제목에 맞게 외계와의 첫 조우라는 컨셉 아래

8편의 단편들이 모두 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정서를 나는 다음과 같이 느꼈다


'생각보다 그들에겐 우리가 딱히 중요하지 않다'


.


외계 문명과 맞닥뜨린다고 상상을 해보면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대화부터 생각하곤 했다

말이 통할까, 발성 기관이 있을까, 그림으로 이야기 해야 하나 기타 등등


그런데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외계 문명의 입장에서도 인류를 소통할 대상으로 느낄까?


그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일지 공격적일지를 상상하기에 앞서

외계의 존재 또한 인류를 상호작용 할 대상으로 인지할 거라는 전제 자체가

대단한 오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


사실 소통이라는 것도 어느정도 수준이 맞을 때의 이야기이고

이 정도의 문명을 발전시킨 대단한 지성체라는 자신감이 가득가득 차있는

호모 사피엔스 따위는 외계 문명 기준에선 아메바와 비슷한 수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굳이 아메바와의 대화를 시도하거나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현미경 없이는 보이지도 않는데

그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 위를 몇 번 밟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말 그대로 미지의 존재들에게 우리는 아직까지 미물에 지나지 않을 수도

굳이 대화든 뭐든 할 필요 자체를 못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깐 씁쓸했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슬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나도 인간인 만큼 인간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면면을 가지고 있고,

그게 느껴질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자기혐오에 시달리곤 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부분들에 대해

아주 강렬한 집중치료 극한 처방을 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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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장르 또한 인간이 만들어냈기에

당연하게도 그간 인간중심적으로 흘러갔던 모든 서사에서

인간이 완벽하게 배제되는 것이 너무나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 거대한 우주라는 공간에서 새삼스럽게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우주적 관점에서는 인류 또한 그간 인간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존재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작고 보잘 것 없는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


이런 것을 보고 느끼면 허탈하고 허망하다기 보다는

너무나 겸손해지고 겸허해진다


작은 생명들이 얼마나 열심히 생애를 살아가는지를 보면 경탄스러울 때가 있는데

우주적 관점에서는 인간도 매한가지 아닐까

아메바에 비하면 인간에게 선택지가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더 고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네 삶도 단순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저 시작하고 언젠간 끝이 난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이 삶을 누려야겠다

미물의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문명의 이기에 찌들지 않게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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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선정되어 현암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정익은 늘 용순의 냉소적인, 그렇지만 어떠한 성찰도 들어있지 않은 태도를 견디기 어려워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적대하는 그의 말투에는 어딘가 억울함이 서려있었고 어휘는 어딘가에서 배워오기라도 한 것처럼 제한적이고 상투적이었다.

그들은 우선 감탄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인류를 보며 이 정도 기술력으로 이 정도 문명을 이룩했고 그들과 소통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견해했다. ‘대견해하다‘. 그건 퍽 적합한 표현이었다. 그들의 말에서 묻어나는 뉘앙스는 마치 대항해시대에 소위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와 정복자들이 원주민을 대할 때의 태도나, 키우던 반려동물이 말을 알아들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와 유사했다.

지금껏 인류는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이 결정한다는 전제를 믿으며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인류의 신세를 망쳐온 것이 대부분 인류 자신이라는 무수한 단서들에서 추출한, 가장 낙관적인 결론이었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인간은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에 따른 결과를 절대로 예측하거나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건 곧 인간이 본인들의 선택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이제까지 불가항력은 인간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이 아니면서 더 대단해 보이는, 심지어 의지까지 담긴 불가항력이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이 현실을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머지 대부분은 순응하고 체념하는 쪽을 택했다. 신화의 세계가 돌아왔지만 이건 심판이 아니었다. 이건 그저 손상에 대한 복구였다.

"외계로 메시지를 보낸다면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글쎄요."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많았다. 하지만 같은 시대에, 얼굴을 보고 마주 앉아 같은 한국어로 말을 하는데도 어떤 말들은 결코 통하지 않았다.

지금은 서로의 삶에서 멀어져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더라도 기억이 우리를 붙잡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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