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듀 - 경성 제일 끽다점
박서련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망국의 청년들과 철모르고 커피 한 잔 드시렵니까

경성 최초(아니고 두 번째) 끽다점 '카카듀'로 여러분을 모십니다


자아가 강하여 머릿속으로는 이미 꽃가마를 타고 있지만

결과물이랄 게 대체로 쪽박 신세라 늘상 뜻대로 안 풀리는 영화감독 이경손의

배고프고 지질한 속마음들이 어찌나 솔찬히 적혀 있던지


삶의 궤적이 달라 넓은 세계를 훌쩍 돌아다니는 사촌 앨리스를 향한

애증 질투 경외가 그의 예술혼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실상 이 시선은 앨리스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의 삶을 지나친 굵직한 인물들을 향하여 경손은 대부분 애증과 질투와 경외를 담아 바라보는데

이것이 전혀 저열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어디까지나 독자들에게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경성에 나만 한 감독이 없지 어깨를 쭉 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그저 자칭 예술가에 불과한 광대라고 자학하기도 하면서

자아가 비대해졌다 쪼그라들었다 기우뚱 기우뚱 경성을 누비는 경손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친숙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라 꼭 창작에 뜻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함께 한 시간은 짧았지만 일생을 가로지르는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 이상

경손에게 있어 앨리스는 항상 애증이 담긴 뮤즈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앨리스가 어떤 심경으로 그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고

어떻게 카카듀를 개업하게 됐는지 경손은 추호도 모를 때의 이야기


카카듀의 내막을 알게 된 후의 경손에게서

어떤 삐딱한 자아라든가 무엇을 좇는지도 모르고 달려가던 애매한 열망의 불씨가

푸스스 꺼져버린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당신은 앨리스의 마지막을 모르잖아

경손의 삶에서 앨리스는 영영 엔딩 없는 영화와도 같았길


동명의 동화 주인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홀연히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신묘한 현앨리스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는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경손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타인의 시각으로 투사하고 덧칠되지 않은 본연의 앨리스가 좀 더 궁금했으니까


하지만 나만 해도 벌써 솔직 담백(...하진 않다)한 경손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처럼

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충분히 인상 깊었고 잘 와닿았다


카카듀는 192-30년대 배경 역사 소설인데 앞자리를 떼고 21년, 23년과 같은 식으로 연도를 표기한다


이게 참 특이하면서 소설 속 시점들이 바로 엊그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후기에서 이를 의도한 표기법이었다고 하니 작품 의도를 잘 따라가며 읽은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특히 후반부 배경으로 조계지와 임시정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몇 년 전 상해를 다녀온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앞자리가 떼어진 연도 표기와 어우러져 여행 다녀온 기억까지 교차되자

경손과 앨리스가 투명도 60퍼 정도로 흐릿해진 채 그곳에서 직접 움직이는 것을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실존 인물을 중심으로 여러 여건이 좋지 않음에도 시절 속에서 빛나던 과거 우리네 이야기가

눈앞에 그려지듯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역사소설이라 참으로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서평 이벤트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