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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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환 작가는 '문장수집가'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오랜 독서로 주옥같은 문장들을 선별해 놓은 보물상자 같은 책입니다. 무언가 고민이 생길 때 책에서 해답을 찾는다는 필자는 각각의 상황별로 다양한 문장들을 분류하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덧붙입니다. 그 문장들 중에는 제가 읽었던 책과 읽으려던 책이 있었고 앞으로 읽고 싶어진 책들도 있었습니다. 책 뒤에 꼼꼼하게 문장들의 출처도 잘 적혀 있어서 우리가 책을 고를 때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문장들을 읽으면서 필자와 제가 매우 비슷하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문장 속에서 위안을 받는다는 점과 외로울 때 더 외로워지려고 노력한다거나 적정한 거리에 대한 생각이라던가 우리는 매우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이 갖는 힘은 바로 이러한 공감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가장 와닿았던 문장들을 몇 개 적어볼까 합니다.

이 고독과 명상의 시간이야말로 하루 중에 내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방해받는 일 없이 온전히 나 자신이 되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또 내가 자연이 바랐던 대로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p.99


산책 매니아였던 루소는 파리 교외를 혼자 걷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일생이 불행의 연속이었던 루소는 자신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준 것이 산책을 통한 고독과 명상의 시간이었다"(p.99)고 말합니다. 읽으면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좀 걷고 싶습니다. 지친 일상을 좀 달래고 사유를 통해 단단해지고 싶어집니다. 늦은 오전에 홀로 하는 산책을 루틴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p.30


여행을 가면 늘 하게 되는 생각은 일상을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생각합니다. 삶이 여행이고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있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p.246


요즘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오랫동안 고민해봤지만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가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어떤 순간 서로를 이해하는 찰나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답답하다고 느끼면서도 꾸며내지 않는 그 사람이 좋았습니다. 그냥 무심코 내뱉는 이해한다라는 말보다 모릅니다 그렇지만 들어보고 싶습니다라는 그의 태도가 좋았습니다. 제 말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은 더이상 이해받으려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허망하게 살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오로지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떨어져 있어서 빈 채로 있는 그 여백으로 인해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 그리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상처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나무들이 올곧게 잘 자라는데 필요한 이 간격을 '그리움의 간격'이라고 부른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절대 간섭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거리, 그래서 서로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거리.

우종영,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p.36 


예전에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을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습니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삶을 살던 저는 어느 날 문득 용기가 생겨 밖으로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가장 두려웠던 건 누군가 나에 대해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문제를 물어보고 나를 짐작하고 나에 대해 단정짓는 말들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정말 이기적이게도 "내 곁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세요. 내 곁에 있는 건 상관 없지만, 나에게 말은 걸지 말아주세요. "라고 얘기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못됐다라고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이런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 곳을 침범당하면 몹시 괴롭습니다. 우종영 작가의 문장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적당한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문장이었습니다. 


문학이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라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17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 중 하나가 바로 "문학"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늘 생각하게 하는 문학을 한결같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문학으로 인해 나 자신의 감정이 크게 영향을 받고, 심할 때면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종종 아픈 곳을 바늘로 찔러 고름을 빼내는 작업과 유사합니다. 몹시 아프지만 치유하는 과정인 셈이죠. 평론가로 유명한 신형철 작가의 이 문장은 평생 기억해두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목차를 펼쳐 지금 이순간 가장 필요한 대목을 읽으세요. 그리고 그 문장들을 읽고 잠시 위안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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