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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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잘 안 읽는 사람이라도 제목만큼은 한번이라도 들어봤을 소설 <앵무새 죽이기>. 

미국에선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으며, 1960년 출간된 이후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있는 명작(名作)소설이다. 이런 작품을 이제서야 읽은 것이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기에, 여느때 보다 더욱 정독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 책의 제목을 매우 중시하는 편인데, 이는 제목이란 사람의 이름처럼 그 책의 전체 내용을 포괄할 뿐 아니라 작품의 메세지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대체 왜 이런 제목을 붙였지?"하는 문학책들을 종종 경험했던 터라 (그럴때면 나도 모르게 작가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 자신의 생각 없이 '그냥' 쓴 것처럼 느껴져서;;;), 이번에도 역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책의 제목과 작가의 메시지의 연관성이었다.

 

 

내용은 일단 재미있었다. 1930년대, 그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의 남부마을이 배경인만큼, 처음엔 살짝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시대와 공간, 심지어 주인공들 이름(도 외국식)까지 모든 것이 낯선 데 따른 탓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초반 잠깐 뿐이었다. (어쩌면 그때 내 컨디션이 나빠서였을지도 모르고). 금새 독자를 몰입시킬 만큼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게 흘러간다. 

 

스카웃이라는 별명을 가진 진 루이즈는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소설은 성인이 된 스카웃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스카웃이 초등학교 입학 직전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3년간을 다루고 있다.

 

스카웃과 그녀의 오빠 젬, 그리고 미래의 약혼자를 약속한 친구 딜, 이렇게 3명이 함께 놀던 이야기들은 읽는 내내 짠하고 아련했다.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놀진 않았어도, 어린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던 모든 것들은 나 또한 어렸을때 느꼈던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옆집에 사는 얼굴도 보지 못한 아저씨에 대해 온갖 무서운 상상을 하고, 그 집 벽면에 손대고 돌아오기가 그들만의 담력테스트가 되고, 그 아저씨에 대한 호기심과 오해때문에 장난치다 아버지에게 꾸중듣고 하는 소소한 에피소드는, 나의 어린시절에도 나만의 것으로 변주되었을 뿐 결국은 같은 모습이지 않았나 싶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스카웃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들의 유년시절을 추억했을 것이다. 별 것 아닌 것도 대단해 보이고, 말도 안되는 황당한 상상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는 그것에 자신이 끌려가기도 하던 어린 시절. 그래도 그때가 지금 생각하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누구나가 유년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던가.

 

<앵무새 죽이기>는 이런 독자들의 유년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는 앵무새 이야기만의 장점은 아니다. 성장소설이라 불리는 소설이라면 대부분 이러한 매력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앵무새 죽이기>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책을 읽어갈 수록 이야기의 재미에 빠지면서도, 마음 한 켠은 묵직한 부담감이 짓눌렀다. 초반부를 읽을때만 해도 아이들이 앵무새를 죽이려고 시도하면서 겪는 경험담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는 앵무새와 직접 관련된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의 유년시절의 에피소드들이 나열되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내용은 '톰 로빈슨'  재판 사건이다.

 

톰 로빈슨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썼음에도 구제받지 못한다. 마을 다수의 사람들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톰 로빈슨을 비난하지만, 애티커스는 자신의 신념과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톰 로빈슨을 변호한다. 덕분에 '깜둥이 애인'이라는 비난과 멸시를 받고 젬과 스카웃까지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애티커스는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인간은 평등하다"는 신념을 위해 톰 로빈슨을 기꺼이 돕는다. 그것은 톰 로빈슨이 결국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당장은 실패로 보인다. 애티커스도 그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독자는 지는 것이 뻔하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끼어든 애티커스를 어리석다고 비난하는 극중 사람들을 비난하기 마련이고, 때문에 애티커스의 소신에 더욱 감명을 받는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야기 속 인물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사람들의 비난과 멸시를 이겨내고 신념을 따를 용기가 과연 내게 있을까.

 

애티커스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

 

 

 

이념때문에, 세대차, 빈부차, 학력차, 지역차, 성격차, 성별차 등등...

수많은 차이 때문에 서로 헐뜯고 비방하기 바쁜 이 사회의 모습은 과연 누가 만든 걸까.

 

한 사람 한 사람. 나를 포함한 우리 자신들이 만든 현재 사회회 앞에, 애티커스의 말 한 마디는 묵직한 무게감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애티커스는 스카웃과 젬에게 더 의미있는 말을 해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녀들에게 엽총을 사주면서 그가 한 말은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새들과 달리 앵무새는 곡식을 먹거나 창고에 둥지를 트는 등의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운 목소리를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뿐이다. (여기서 '다른 새'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을 빌미로 트집은 잡지 말자. 하퍼 리는 어디까지나 상징의 의미로 다른 새를 언급한 것이니까.)

 

아이들이 오해했던 옆집 아저씨 부 래들리나 애티커스가 변호했던 흑인 톰 로빈슨은 앵무새 같은 존재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고통을 받고 외면당한다. 심지어 톰 로빈슨은 목숨까지 잃는다. 아마도 훨씬 더 많은 앵무새들이 '새'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죄도 없이 고통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부 래들리와 톰 로빈슨 외의 스카웃 남매가 미처 보지 못한, 메이콤 마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수많은 앵무새들 중 엽총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앵무새는 얼마나 될까. 나아가 미국 전역의 앵무새들은, 한국의 앵무새들은, 전 세계의 앵무새들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내가 죽인 앵무새는 얼마나 될까. 

 

우리는 우리의 편견과 아집때문에 아파했던 앵무새들을 기억이나 하고 있었던가. 서로 헐뜯고 싸우기 바쁜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우리의 왜곡된 시선때문에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앵무새 죽이기>는 성장소설의 매력 뿐 아니라, 통렬한 자기비판과 자기반성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요즘 학교 폭력과 왕따 얘기로 연일 시끄럽다. 정치권은 뇌물수수 때문에 여야 모두 난장판이고, 경제는 바닥이다. 어딜가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사회에서는 살기 힘들다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먼저 상대를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가뭄에 콩나듯 하다. 

남 탓, 세상 탓, 시대 탓, 탓, 탓, 탓... 인류 역사상 못된 사람이 없었던 적이 없었고, 살기 어려운 시대가 아닌 적이 없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고 저마다 소리쳤고, 이웃과 가정, 사람때문에 상처받았다. 결국은 어떤 '탓'을 하기엔, 삶은, 세상은, 우리에게 원래부터 불친절한 것이었음을.  

그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한번 더 헤아려보고, 나의 선입견을 지우려 애써보는 노력이 선행되었으면 한다. 더럽고 치사하고 억울한 것 투성이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래도 세상은 아직은 살만하다. 단지 새라는 이유만으로 앵무새를 죽인다면 우리에게 누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줄까.

 

 

 

 

개개인을 편견없이 '사람' 그 자체로 보는 것은 신만이 가능할 것이다. 같은 인간인 우리가 그런 경지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애티커스가 했던 위의 두 말을 기억하고 싶다.

내 주변의 앵무새. 리 사회의 앵무새.

 

그들이 새라는 이유만으로 더이상 고통당하지 않으려면, 나부터가 바뀌어야 하겠지. 이런 어려운 숙제를 던져놓다니ㅠㅠ 아마 그런 점 때문에 <앵무새 죽이기>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게 아닐까 싶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당돌한 스카웃 남매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위 리뷰와 더 많은 리뷰를 보시려면 저의 네이버 블로그(http://jhwhjn.blog.me/)를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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