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반양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연말, 피터 잭슨의 호빗 시리즈 2인 <스마우그의 폐허>를 보았다. 굳이 톨킨을 존경한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아도, 톨킨옹의 불후의 명작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영화로 나온 이후부터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톨킨의 작품이 영화로 개봉되면 "일단 본다." 톨킨의 팬도, 감독인 피터 잭슨의 팬도, 판타지 문학 팬들도, 아니면 평범한 보통사람들도 모두 큰 기대를 품게되는 현상. <호빗> 시리즈가 영화화되었을때 그래서 사람들은 열광했고, 톨킨의 원작도 다시 팔려나갔다. 단언컨대, 이보다 더 문학과 영화의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며, 톨킨과 잭슨의 시대를 초월한 창조-재창조의 협력을 뛰어넘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귀차니즘으로 영화리뷰는 쓰지 못했다. 대신 8년전부터 책장에 고이 묵혀두고 있었던 책을 꺼내들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같이 샀던 원서인데, 반지시리즈와는 달리 당시 호빗은 영화화되기 이전이라 표지에는 마틴프리먼 대신 샤이어로 떠나는 간달프의 삽화가 채워져 있는 책이다. 반지 시리즈에 비해 동화적인 느낌이 강한 책답게, 동화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모험을 떠나는 이미지를  잘 반영한 표지디자인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책 표지를 볼 때마다 본문의 스토리가 전하는 흥미진진한 앞으로의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곤 했다.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을때의 느낌처럼 말이다. 

 

 

 

 

톨킨의 위대함은 굳이 말하지 말자. 문학 역사 속 수많은 거장들이 그렇듯, 소설의 구조가 어떻고, 스토리 개연성이 어떻고 하는 평가는 톨킨 위치에서는 더이상 통하지 않을 듯 싶다. 물론 거장들이라고 해서 - 톨킨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작품이 무조건 완벽하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들 또한 인간이기에. 인류의 문화예술 유산이나 역사에서 완벽한 것은 없으니까.),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아무에게나 붙여지지 않음을 고려할 때, 인간이 창작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작품을 창작한 것이라고 봐야 핥니까 말이다.

 

톨킨은 그 중에서도 판타지를 순수문학을 넘어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전무후무한 작가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기에, 그의 저서를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톨킨의 또 다른 작품들과의 상대적 비교 정도로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작가와의 비교는 톨킨에게도, 다른 작가에게도, 모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될 테니까. ("나니아 연대기"를 쓴 또 다른 거장 C.S. 루이스와는 긍정적 의미로 비교가 어렵다. 톨킨의 작품은 세속문학에 가깝고, 루이스의 작품은 좀더 신앙서적에 가깝다. 물론 둘 다 문학과 신앙의 양면을 충분히 갖고 있으며, 은유와 상징이 직간접적으로 풍부하게 사용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말이다.) 

 

 

많이 알려져있는 대로, <호빗>은 톨킨의 또 다른 대표작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프리퀄격인 작품이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자들은 <호빗>을 읽으면서 자동적으로 <반지의 제왕>과 비교를 할 수 밖에 없다. 톨킨은 다양한 종족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의도적이고도 효과적으로 배치했지만, 그러면서도 두 작품의 메인 주인공으로는 모두 "호빗" 을 선택했다. 엘프, 드워프, 마법사, 오크, 골룸, 트롤, 고블린, 와르그(Warg) 등 수많은 종족들은 모두 톨킨의 손에서 창조되었지만 고대 서양신화에서 계승되어온 이미지들이 약간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빗" 족속은 온전히 톨킨의 창조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톨킨은 호빗을 이 거대 서사 스토리의 메인 주인공으로 내세웠는지도 모른다. 또는 다른 종족에 비해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점이 오히려 톨킨의 선택을 이끌었을 수도 있다. 스토리의 장대함을 이끄는 주체가 지극히 작고 연약한 호빗이 될 때, 그 간극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와 감동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영화 <호빗1: 뜻밖의 여정>에서 간달프는 왜 호빗을 선택했냐고 묻는 하이엘프 엘론드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루만은 사악한 어둠을 이기려면 위대한 영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네. 어쩌면 평범하고 연약한 보통의 인물이 오히려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지."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였다.)  

 

간달프의 이 대사는 <호빗>과 <반지> 시리즈 전체를 통괄하는 톨킨의 핵심주제이다. 피터 잭슨은 톨킨 광팬답게 이러한 톨킨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했고, 간달프의 대사를 통해 톨킨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런 대사가 없다. 아마도 톨킨은 직접적인 표현보다, 스토리 상에서 묻어나는 호빗의 활약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호빗'은 난장이들보다 작은 종족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난장이들과 달리 기계를 다루는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나름 잘하는 편이다. 부지런하지만 서두르는 것은 싫어하는 여유로운 성격에, 유달리 귀가 커서 소리에 민감하고 눈도 밝아서 관찰력이 좋다. (하지만 엘프와는 비교불가!) 여유롭고 느긋한 성격 탓에 대부분의 호빗들이 살찐 경우가 많으며, 밝고 컬러풀한 색상의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유달리 발이 크고 발바닥이 인간보다 거친 편이며 털도 많아서 신발을 신지 않는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파티를 즐기는 것은 드와프와 비슷하고, 손님이 찾아오면 극진히 접대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교적인 종족이다. 그들이 거주하는 "샤이어"는 중간계의 브랜디와인 강(River Brandywine)과 파 다운스(Far Downs) 사이에 위치한 땅으로, 평화롭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호빗>의 주인공은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이었던 프로도의 삼촌, '빌보 배긴스'다. 프로도가 반지를 없애기 위해 여정을 떠났던 때로부터 약 60여년 전, 그의 외삼촌 빌보는 드와프들과 간달프의 반강요에 떠밀려 뜻밖의 여정을 떠났다. 1년간의 여정에서 빌보는 트롤, 자이언트 스톤, 고블린, 골룸, 와르그, 대형 독거미, 스마우그 등 강력한 적들을 만나며 각종 위험에 처한다. 때로는 목숨을 위협받고, 때로는 배고픔과 추위로 힘들어하고, 때로는 드와프들과 갈등하고, 때로는 자기자신의 나약함에 좌절하면서, 빌보는 모험을 이어간다. 자신의 아늑했던 집과 풍요로운 식탁을 그리워한 것이 수십번이지만, 빌보는 모험을 중단하지 않는다. 하나의 고비를 넘으면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빌보는 그것들을 피하기보다 맞서싸우는데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호빗>은 총 19장의 챕터로 되어 있다. 영화 <호빗:뜻밖의 여정>은 이중 챕터 6장까지를, <호빗:스마우그의 폐허>는 챕터 12장까지를 다뤘다. 영화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빌보가 간달프와 드와프들과 함께 여정을 떠나서 트롤과 고블린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다가 와르그 (Wargs: the evil wolves - 사악한 늑대들)를 만나 위험에 처하고, 그때 마침 다행히도 독수리의 왕이 빌보일행을 발견하여 독수리의 도움으로 와그르떼에서 벗어나는 부분까지가 제 1막에 해당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이 바라보는 외로운산 'the lonely mountain' 아래에서 자고 있는 용 스마우그가 눈을 뜨면서 끝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빌보가  <반지의 제왕>과 가장 큰 연결고리가 되는 '절대반지'를 골룸과의 수수께끼 대결을 통해 얻게 되는 과정이 나온다. 

 

영화만큼이나 소설에서도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단지 <반지의 제왕>과의 연결고리 때문만이 아니라 <호빗>의 전체 구조상에서 골룸과의 대결부분이 갖는 독특서 때문이었다. 드워프들의 잃어버린 왕국 '에레보르'를 되찾기 위해 에레보르가 있었던 외로운 산으로 가는 과정에서 겪는 모험이 스토리의 전반적인 내용인데 반해, 골룸이 등장하는 부분은 보다 독립적인 스토리로 다가온다. 에레보르로 가는 과정속에서 겪은 무용담이지만,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위험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운명이라고나 할까. 다른 적들(foes)은 스토리 구조상 빌보일행이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적들이었다.  

 

하지만 골룸은 어디까지나 빌보의 '운'에 의해 만난 적이었고, 절대반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빌보는 조금씩 반지에 매혹되어가지만, <호빗>에서 반지의 역할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반지의 용도는 어디까지나 투명마법의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해리포터의 투명망토 수준이라고나 해야 할까. 다시 말해, 간달프의 마법처럼, 빌보가 부릴 수 있는 트릭 또는 마법 수준일 뿐이다. 때문에 반지가 빌보 일행의 여정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진 못한다. 원작에서 심지어 빌보는 드워프들에게 골룸과의 내기를 통해 반지를 얻었다며 반지의 투명마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반지>시리즈의 인물드과 달리, <호빗>의 인물들은 반지에 매혹되거나 욕심을 내지 않는다. 아직 절대반지의 힘을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호빗> 이야기에서는 반지 스토리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액자구성'에 가깝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골룸과의 장면은 굉장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골룸과 빌보가 주고받는 수수께끼 내기에서 긴장하지 않는 독자가 있을까. 보일행이 처한 다른 대규모 위험보다도, 심지어 후반부에 나오는 '다섯 군대의 전투' (the Battle of Five Armies)보다도, 골룸과의 내기 장면에서 긴장감이 더 크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원작과 영화 모두,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이었다.

 

절대반지의 영향력이 미미한 대신, <호빗>에서 <반지>시리즈의 절대반지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외로운 산'에 파묻힌 보물들이었다. 고대 드워프 왕국의 보물이었지만 현재는 스마우그(smaug)에게 뺏긴 후다. 소린과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왕국과 보물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점차 그들은 잃어버린 '왕국'보다 잃어버린 '보물'에 더 집착한다. 드워프 종족 자체가 보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호빗>에서의 드워프들은 점차 보물에 이성을 빼앗긴다. 그 중 가장 심한 것은 드워프의 왕 '소린(Thorine)'이었다. 

 

처음부터 광기(내 기준으로는 '똘끼' 혹은 '객기')가 있다고 묘사된 소린이었지만, 여정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꽤 괜찮은 리더였다. 물론 고집불통에 까칠하기가 그지없어서 오히려 고생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령 어둠의 숲 요정의 왕인 '스란두일' 앞에서 하는 행동은 그냥 똥고집에 가까운 객기이 뿐이다), 전체적으로는 화통하고 카리스마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리은 조금씩 미쳐가고 있었다.  

 

소린의 광기는 스마우그가 빼앗았던 보물을 다시 보는 순간 소린의 변화는 가속을 달린다. 스마우그가 죽은 후 바르드(Bard)와 스란두일이 찾아왔을 때에 그가 보여준 행동은 안타까울 정도이다. 소린의 모습은 반지에 집착하는 골룸의 모습을 닮기도 했고, 권력에 집착하던 곤도르의 국왕 '데네소르'를 닮기도 했다. 권력, 혹은 물질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그 집착의 정도를 톨킨은 이들 캐릭터를 통해 단계별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다행히 소린은 골룸이나 데네소르와는 달리 마지막까지 미치진 않는다. 여전히 그의 광기는 남아있지만 (이것은 권력과 물질에 집착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악한 본성을 상징한다), 소린은 동시에 리더로서의 자신의 본분과 자신의 또다른 면인 선한 성품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안타까운 최후에도 불구하고 소린은 빌보와 화해하는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호빗> 원작을 읽을 때 그 스토리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재미를 느끼느 것이 영화와의 비교이다. 이미 워낙 많이 알려졌지만, <뜻밖의 여정>에 나오는 오크왕 '아조그'나 리벤델에서 있었던 마법사들의 회의 장면, <스마우그의 폐허>에 나오는 레골라스나 타우리엘은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조그와 마법사들 회의 장면은 한줄 설명으로 나올 뿐이고, 레골라스는 언급조차 없으며, 타우리엘은 피터잭슨 감독이 창조한 캐릭터이다. 당연히 타우리엘과 드워프 킬리와의 로맨스도 원작엔 아예 없다. (이 부분은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뜬금없는 로맨스라니ㅠ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원작과 다른 점들은 더욱 많다. 가령 베오론과 만나는 장면, 와르그떼에 쫓기는 빌보일행을 독수리왕이 구해주게 되는 계기, 고블린 왕국에서 빌보가 탈출할 때의 장면, 스마우그와 드와프들 (원작에서는 드워프들은 아예 스마우그와 대면하지도 않는다. 빌보만 잠깐 만났다가 스마우그가 빌보일행을 찾으러 마을로 내려가고, 바르드에게 죽는다. 소린은 한게 없다. ㅠㅠ) 등은 영화와 원작이 아예 다르다.

 

하지만 빌보의 존재감은 원작이나 영화나 같다. 특히 원작에서 빌보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뛰어난 영웅도 아닌 캐릭터가 이토록 큰 공감을 이끌어 내는 이유는, 빌보가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서, 빌보처럼 당장 나도 모험을 떠날 용기는 아직도 없지만, 그럼에도 빌보가 성장할 때마다 '나도 할 수 있겠지?'하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꿈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빌보는 끊임없이 성장한다. 지치지도 않고 위험이 계속 다가오지만 어쨌든 이겨낸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 것이라고 쳐도, 소설 속 빌보는 자신이 주인공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려야 한다. 다리가 떨리고 입이 얼어붙지만, 주저하다간 죽을 수 밖에 없다. 용기에 의해서였든 어쩔 수 없어서였든, 빌보는 싸우고 또 싸운다. 그 과정에서 빌보는 잊고 있었던 도전정신과 용기를 발견하며, 위험 가운데서도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앞장서는 희생정신도 보여준다. 나중에는 자신을 죽이려한 소린과도 화해하며, 소린과 바르드 사이의 평화를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아르켄스톤(Arkenstone)을 기꺼이 내어주기도 한다.

 

우리와 똑같았던 빌보는 후반부로 갈수록 우리 모두가 잊고 있던, 또는 우리 모두가 이상적이라고만 여기며 배척하고 있었던 아름다운 윤리들을 온전히 회복한다. '성장'이라는 코드는 <호빗>과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톨킨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교훈 중 하나인데, 특히 톨킨은 인물이 성장하게 되는 근간을 '희생'과 '신뢰'라고 본 것 같다. 샘이 프로도를 위해 희생했고, 반지 원정대들이 서로를 온전히 신뢰했듯이, 빌보는 드워프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으며, 투덜거리길 좋아하는 드워프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빌보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골룸, 오크, 와르그 등 악한 무리들을 이겨내기에 그들은 힘으로도, 숫자로도 절대적으로 불리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로 이겨낸다. 그리고 이들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은 빌보의 자기희생과 동료애였다.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간달프는 빌보에게 말한다.

 

"You are not the hobbit that you were."

넌 예전의 네가 아니구나, 빌보!

 

<반지의 제왕>이 대서사시이고, <실마릴리온>이 신화라면, <호빗>은 동화에 가깝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읽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톨킨이 담고 있는 메세지는 상당히 묵직하다. 모험을 밝고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그렇지, <호빗>이 전하는 메세지의 무게는 <반지의 제왕>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어느 작품이 더 좋은가는 어디까지나 취향의 차이일 뿐.

 

톨킨의 언어를 좀더 느끼고 싶어 원서로 읽었다. 언어학자였던 톨킨답게, 사용하는 언어도 왜 그리 다양한지. 까마귀(Crow)와 갈까마귀(Raven) 등, 디테일한 단어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온다. 때문에 원서로 읽는다면, 나니아나 해리포터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톨킨이다. 하지만 확실히 <반지의 제왕> 시리즈보다는 쉽게 읽힌다. 수많은 다양한 단어(특히 명사ㅠㅠ 과장하자면, 사전에 있는 단어를 다 갖다 썼나 할 정도로 다양하다)의 습격으로 한글버전보다 시간이 두배는 걸렸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뒤로 갈수록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약 2주간에 걸쳐서 읽었지만, 덕분에 2주동안 중간계 세계에 온전히 빠질 수 있어서 행복했다. 조금 쉬었다가 <실마릴리온>에도 도전해 보련다! ^^

 

* 위 리뷰와 더 많은 리뷰를 보시려면 저의 네이버 블로그(http://jhwhjn.blog.me/)를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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