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1
홍석중 지음 / 대훈닷컴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김탁환의 황진이를 읽고 난 뒤 영 찜찜하던 차라 내처 읽은 책. 역시 재미있었다. 김탁환의 황진이가 도입부에서는 몰입하기 조금 어려웠던 것과 비교해, 이 책은 첫 장면부터 휘어잡혔다.

반쯤 읽었을 무렵, 낮에 하품을 연신 해대면서 어제 황진이 읽느라 잠을 못잤다 그랬더니 그 책을 먼저 읽은 친구가 묻는다. "재미있지?" 내 대답은 이랬다. "재미있기는 무지 재미있는데 좀 빤하다는 생각이 슬슬 드네."

어떤 점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묻는 친구에게 그 때는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그 대답을 좀 정리해보자면, 뭐니뭐니 해도 역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는 느낌. 사대부 계급과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적, 풍자적 묘사는, 그런 너무 뻔한 관점에서 던지는 내용이라 별로 신선한 느낌이 없다. 진지한 성찰과 부대낌 끝에 나온 사유가 아니라 외부에서 획일적으로 부여받은 사고틀이라는 생각이 들어 설득력도 떨어진다. 그런 비판에서 유일하게 예외가 되는 대상이 재야학자 서화담인데, 그야 뭐 '조선 최초의 유물론자'라고 평가하는 한 당연한 일일 테고.

이 소설의 틀을 이루는 연애 이야기도 너무 빤한 신파의 틀이라는 느낌이다. 열두 살짜리 사내종이 일곱 살짜리 주인 애기씨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신분의 벽 때문에 좌절감을 맛보고 집을 떠난다, 그로부터 십년간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지만 끝내 잊지 못해 그 집안의 차지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 천성적으로 너무나 잘나고 듬직한 그 사내, 그리고 양반집 규수에서 하루아침에 천기 신분으로 몰락한 재색겸비하고 총명한 여자, 현생에서 인연을 맺지는 못했지만.... 이런 설정, 솔직히 신파스럽지 않나? 현실감이 너무 떨어지지 않느냔 말이다.

그리고 내 친구는 별로 동의 안하지만, 이 소설이 여성을 묘사하는 관점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북한의 봉건적 여성관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느낌이다.

결국 이번에도 길게 트집잡는 내용만 늘어놓고 말았는데, 그래도 별은 네 개다. 재미있었으니까. 내가 소설을 평가하는 첫째 기준은 역시 재미다. 그리고 어쨌든 황진이가 기생이 되는 과정, 그리고 황진이에게 요부의 이미지가 고착되는 이유와 그 과정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간 황진이의 갈등과 고뇌 등이, 김탁환이 제시한 황진이의 일생보다는 훨씬 설득력 있지 않은가.

오랫만에 북쪽의 소설을 손에 들 수 있었다는 신선한 감각도 있었고, 작가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초장부터 트집잡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래도 <피바다>나 <꽃 파는 처녀>와는 다른 경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쪽 문학사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겨우 이 몇 개 안되는 소설만 보고 이런 판단을 해도 좋은 건지 싶은 망설임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확실히 획기적인 진일보라 할 수 있지 않을지.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읽는 '신소설체' 느낌의 문체가 반갑고 정겨웠다. 요즘의 청소년들도 '신소설체'에 대해 이런 정감을 느낄까 생각해 보면, 흠, 어쨌든 역시 난 구세대인 거다. 친구와 동감했던 것. 북쪽의 소설가가 쓴 글이고 보니 역시,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잔뼈가 굵은 우리들로서는 유지할 수 없었던, 순진하고 투명한 시선이 있다. 그런 시선이 '신소설체'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뒷바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그악스럽게 이윤추구적이고 경쟁적인 사고, 행동방식이 뼛속 깊이까지 스며들기 이전의 인간의 자취.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살아남기 위해 타인과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자본주의의 인간학은 세뇌하지만, 이런 글을 보면, 한번쯤은 회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같은 시간대를 살면서도 다른 체제의 다른 사회에서는 사람이 좀더 맑을 수 있지 않은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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