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 J. 번스타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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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번스타인,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18.

전체 170페이지 정도고 판형도 작아 읽기에 부담이 없는 책. 
앞의 악의 평범성이나 권리를 가질 권리에 대한 장들은 관련 논의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크게 새롭지 않을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아렌트의 시온주의 비판 장. 팔레스타인 역사를 잘 모르지만…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읽긴 했는데 거의 다 까먹었다. 수업 때문에 급하게 읽은 것이라. 흑흑) 아랍-유대인 평의회를 수립하는 것을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아렌트가 제시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아래에 인용한 아렌트의 통찰—유대인들이 비록 건국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물리적 자기방어에만 몰입해 다른 모든 관심과 활동은 잠식당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논평—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이것은 아렌트의 행위/활동 이론과도 관련이 있다. “의견의 형성은 고립되어 있는 고독한 개인이 수행하는 사적 활동이 아니다. 관점을 달리하는 의견들과 진정으로 직면할 때 … 에만 의견은 검증될 수 있고 확대될 수 있다.”(110) 정치는 특정한 공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매우 현재적인 맥락에서 쓰여졌다. 아렌트의 사상이 이해하기 쉽게 다이제스트 식으로 요약되는 동시에 그것은 도널드 트럼프 현상이나 난민 현상 같은 최근의 문제들과 같이 다뤄진다. 일반 독자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 듯…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렌트가 “정치와 공연예술의 유사성에 대해” 강조한 부분. (132쪽) “공연예술가—무용가, 연극배우, 음악가 등—는 자신의 기교를 보여줄 관객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마치 행위자가 그 앞에 나설 수 있는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연예술가나 행위자는 모두 자신의 ‘작품’을 위해 공적으로 조직된 공간을 필요로 하며, 행위의 수행 그 자체를 위해 타인에게 의존한다.”(132쪽, 아렌트의 글, 『과거와 미래사이 Between Past and Future』 국역본 210쪽) 제프리 알렉산더 생각도 난다. 

또한 아렌트는 칸트의 취미판단 개념을 인용하여 정치적 사유에 본질적인 판단이 무엇인지 생각을 전개한다. “판단의 과정은 내가 최종적으로 합의에 도달해야 할 사람들과의 예상되는 의사소통 속에 늘 우선적으로 놓여 있다. 이러한 잠재적 합의에서 판단은 그의 특수한 타당성을 도출한다. … 다른 한편으로, 이 확장된 사유방식은, 판단처럼 자신의 개별적 한계를 초월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엄격한 고립과 고독 속에서 기능할 수 없다. 그것은 “그 관점을 대신해서” 사유해야 하고 그 관점을 고려해야 하며 또한 그 없이는 결코 작동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타인의 현존을 필요로 한다.”(146쪽. 아렌트의 글. 국역본 『과거와 미래사이』 294-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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