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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멀 -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
김현기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평점 :
미안했다. 너무나도 관심없이 당연한 듯 생각했던 것이. 동물원 우리 속에 갇혀있는 사자며 아쿠아리움의 돌고래며. 동물과 교감하고 함께하고 싶다면서 그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무감각했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안전히 이곳에 왔고 야생에서 힘들게 먹이를 구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며 외면했을 뿐. <휴머니멀>을 읽는 동안 너무 미안했고, 안타까웠고 부끄러웠다.
<휴머니멀>은 2020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가 책으로 나온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해진, 류승룡, 박신혜 배우들이 동물들이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상처입고 죽어가는 곳으로 갔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잔혹함에 할 말을 잃는다. 배우들이 느낀 그 감정들은 고스란히 책을 통해 전해졌고,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P.16
우리는 매체나 여행에서 본 코끼리의 삶이나 소나 말 같은 가축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을 깨닫고 나면 적잖은 충격이 따라 온다. (생략)
인간과 코끼리의 실제 관계를 알고 나면 더 이상 동물원도, 서커스도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는 볼 수 없다.
책을 읽다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아이가 세돌쯤 되었을 때 친정 아버지 칠순을 기념할 겸 갔던 제주도에 가족여행 때의 일이었다. 아이가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돌고래쇼를 보러 갔다. 그런데 아이가 분위가 어두우니 보고 싶지 않다고 싫다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이게 얼마나 보기 힘든 건데, 돈까지 냈는데 하며 다그쳤다. <휴머니멀>에서 돌고래가 아쿠아리움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쇼를 위해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인간의 이기심으로 돌고래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한 결과인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다그친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고, 앞으로도 아이에게 동물들과 공존하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어떻게 가르치고 보여줘야 하는 고민도 많이 되었다.

P.183
이렇게 수족관으로 팔려간다고 돌고래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2억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울산으로 데려온 돌고래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닷새만에 폐사하고 말았다. 이들은 일본을 떠난 지 32마리 중 한 마리는 닷새 만에 폐사하고 말았다. (생략)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의 삶은 재앙에 가깝다. 야생에서 돌고래는 하루 100km를 자유롭게 헤엄치며 살아 있는 물고기를 10~12kg을 먹어 치운다. 그런 돌고래에게 10m 안팎의 수조는 운동조차 하기 힘든 '비좁고 외루운 감옥'이다."라고 말했다.

수족관에서 태어난 돌고래의 평균 수명은 4.32년에 그친다고 한다. 야생에서 30~50년인 것에 비하면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돌고래는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고 그렇다보니 다른 돌고래의 죽음은 트라우마가 된다고 한다. <휴머니멀>에서는 일본 타이지 섬의 잔인하고 포악한 돌고래 포획 방식을 보여준다.
p.152
돌고래 사냥은 전 세계적으로 금지되는 추세에 있지만, 이곳만은 예외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전통적인 연례행사라는 이유로 타이지의 고래잡이를 매년 허가해주고 있다. 마을에는 고래잡이에 특화된 어선이 20여 척 있고, 이들은 이 기간 동안 돌고래만을 집중 사냥한다. 10~12월 성수기를 지나고 나면, 연중 포획량이 1,000마리를 훌쩍 넘길 정도다.
엄청난 포획량에 입이 벌어진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잔인한 도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돌고래들을 도망갈 수 없는 곳으로 몰아 놓고 겁에 질려 펄떡대고 날카로운 화산암 표면에 온몸이 긁혀 피가 난다. 예전에는 작살과 쇠꼬챙이로 찔러 바다가 말그대로 피바다가 되기도 했단다. 방식은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이루어진다. 이제는 천막을 쳐 놓고 그 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게 한다.
p.165
잔인하게 고래를 죽이는 장면이 외부에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 만 위에 넓은 천막을 쳤다. 어부들은 이미 상처를 입고 퍼덕대는 돌고래들을 이 천막 밑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긴 쇠꼬챙이를 돌고래 등 윗부분에 깊숙이 찔러 넣어 척수를 끊은 뒤, 나무 막대기로 급히 그 구멍을 막핬다. 피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하여, 바깥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걸 최대한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다 숨구멍을 막고 익사할 때까지 두면 돌고래들이 힘없이 둥둥 떠오른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음을 마지하는 돌고래들. 지난 2년간 이렇게 죽은 돌고래가 545마리라고 한다. 그럼에도 타이지 주민들은 이는 80년 이상 전해져 온 전통이라며 멈추지 않고 이를 알리거나 막으려는 이들을 배척한다. 일본 뿐만 아니라 덴마크령 페로제도에서도 전통 축제라는 명목으로 고래 도살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p.177
동물의 종류와 크기는 달라도 이들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동일하다. 동물을 하나의 '생명'이 아닌 유희의 '도구'로 대한다는 점, 그리고 이런 전통이 단순한 경제적 효과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점까지 말이다.
<휴머니멀>에서는 인간이 동물을 '생명'으로 대하지 않고 인간 유의의 '도구'로 대하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태국 등의 지역에서 관광을 위해 '사용'되는 코끼리. 파잔'이라는 이름의 코끼리 훈련. 이는 인간을 태우기기 위해 길들이는 심각한 학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쓸모없어지고 나서의 방치. 또 상아를 손에 넣기 위해 끔찍한 방법으로 코끼리의 머리를 잘라낸다.

p.57
신혜 씨의 뺨 위로 두려움과 슬픔이 뒤엉킨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모두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상아가 있던 자리, 마땅히 '있어야 했던 자리'를 황망히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체이스 박사를 따라 200m 정도 더 들어가자, 그곳에 또 다른 얼굴 없는 사체가 누워 있었다.
생태계의 균형을 지킨다는 말도 아닌 이유로 사냥을 하는 트로피 헌터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했단 말인가?
p.121
총알은 정확히 녀석의 목 아래쪽과 가슴 사이 급소를 관통했다. 잠비아에 와서 쏜 첫 총알이었다. 올리비아와 롤랜드가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며 개시를 축하했다. 그녀는 죽은 사체에 다가가 뿔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정말 아름다운 녀석이네요.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책을 읽다보면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는 막막하기만 하다. 김현기 pd는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p.284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동물보호 활동가가 될 수는 없고, 될 필요도 없다. 환경운동에 투신하거나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이 유일한 해법도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일상 속에서 생태계를 위한 작은 실천을 행하는 것. 이 각성이 주는 자괴감과 위기감에 비추어, 해야 할 일에 나서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멀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공존을 향한 작지만 담대한 첫걸음이 아닐까.
누군가는 동물들을 좀 잡고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상처받은 동물들을 치료하느라 드는 돈을 힘든 사람들을 위해 써야한다고도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동물을 대한 그 결과를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힘든 시간을 겪게 된 이유인 코로나19도 파괴된 생태계로 인한 결과일 수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병은 더 생겨날 것이라 많은 학자들이 경고한다.그런데도 동물들에게 일어나는, 인간에 의해 일어나는 멸종들이 우리와는 관계없다 외면할 수 있을까?

아플정도로 생생한 사진과 호소력있는 문장과 구성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휴머니멀> 다같이 읽고 함께 토론할 거리도 많은 책이었다.
<출판사의 제공으로 책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