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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라진 딸. 딸을 찾기 위해 모두를 의심하고 무슨 짓이든 하는 아빠.
이 문구만 본다면, 너무나 익숙한 소재라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버로드>는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힘이 단단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괜히 스웨덴에서 판매 1위를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몰입감 넘치는 전개가 매력적이었다.

이런 류의 소설은 누가 범인인지 모를 때 흥미로운 법. 그런면에서 <실버로드>는 대단했다. 등장 인물 모두가 의심스러웠다. 심지어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아빠 렐레까지도 순간순간 혹시 이 사람이 범인 거 아니야? 하는 의심이 들었다. 딸아이가 아르바이트에 늦을까봐 일찍 버스정류장에 데려다 준 것을 끝으로 아이를 다시 못 보게 된다. 그 아이를 버스정류장에서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제일 먼저 범인으로 지목당한다. 제일 마음 아픈 사람인데 용의자 취급을 당하자 폭주한다. 아내마저도 그를 탓한다.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끊었던 술과 담배만이 그를 위로해 준다.
p. 13
"설마! 하지만 내가 담배도 없이 무슨 낙으로 살겠니?"
렐레를 바라보는 리나의 연푸른색 눈동자에 꾸짖는 기색이 감돌았다.
"날 찾아야지. 날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빠뿐이야."
리라는 사라졌지만 렐레는 아이가 옆에 있는 듯이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아빠의 절절함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범죄소설임에도 잔인하거나 인상을 찌푸리게 하기 보다는 안타까움, 슬픔, 짠함 이런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점 역시 이 소설의 매력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전혀 다른 서사로 보였던 실종된 아이를 찾는 이야기와 메야라는 아이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것 역시 매력적이었다. 사라진 소녀 리라는 딸바보 아빠 밑에서 잔뜩 사랑을 받고 성장한다. 메야는 엄마가 고등학생 때 실수로 생겨 태어났고, 늘 남자에게 의지하려고 하던 엄마 때문에 엄마의 남자들에게 성추행을 당하며 자란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 속에서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웠던 메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의 보호 속에서 자란 리라가 사라진 것도 이 소설에서 궁금증을 더 일으키는 요소이다.
p. 22
배가 너무 고프다 못해 아프지만 않았어도 메야는 그 삼각형 방에서 영원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서 살든 메야는 허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배에 한 손을 올린 채 방문을 였었다.
메야의 엄마는 토비요른이라는 남자를 인터넷에서 알게 되었고 무작정 딸을 데리고 그 남자 집에 살러간다. 부자인 척 허세를 떨었지만, 실상은 또 달랐다. 심지어 토비요른의 비밀 공간에는 각종 포르노 잡지와 몰래 찍은 여자 사진들이 즐비하다. 가족이 필요하다 생각한 메야는 그곳을 떠나 새롭게 사귀게 된 남자 친구 칼 요한에게로 간다. 칼 요한의 가족은 자신의 가족보다 훨씬 좋아보인다. 비로소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안심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름을 깨닫지만 어찌해야할지 알 수는 없다.

렐레는 학교 교사이다. 리나를 잃고 3년 간 헤매느라 제대로 출근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메야를 만나게 된다. 메야가 집을 나가 다른 곳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메야의 엄마를 만나러 간다. 토비요른 같은 사람이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한 것은 아닌지 걱정도 하면서 말이다. 이는 자신의 딸 리나가 사라진 것처럼 메야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지금 그렇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조금의 의심도 넘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정작 메야의 엄마는 경찰이 개입되는 것도 싫고 자신도 아픈 사람이라고 하며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보며 분노를 느낀다.
p. 306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갔고, 머릿속이 분노로 쿵쿵 울렸다. 할 수만 있다면 저런 부모들은 모두 없애버리고 싶었다. 자식을 위해 싸우지 않는 부모들, 자신의 고통에 푹 빠져서 자식을 돌보지 않는 부모들.
렐레 역시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아이만큼은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게 하겠다고 다짐했던터라 더 용서할 수 없었으리라. 이처럼 장르는 스릴러, 추리 이쪽이지만 계속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부모의 역할, 그리고 그 가족에 위기가 생겼을 때 극복하는 힘은 무엇일지에 대해서. 그리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들을 보면서 가족이란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작가의 의도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가족이란 끝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원하던 결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불행과 악은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도 받을 수 있었다. 앞선 우리 세대들이 다음 세대들이 아픈 환경에 놓이는 상황을 막기 위해선 진실 찾기를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마음을 모으다 보면 다음 세대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장르 소설 특유의 긴장감과 스릴, 몰입감에 가족을 생각해보게 하는 메시지들까지 가득했던 <실버로드:사라진 소녀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