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사실을 소재를
소설로 그려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김진명 작가. <직지-아모르 마네트> 역시 그의 능력이 빛난다. 읽는 동안 '소설이야? 진짜
있었던 일이야?'를 계속 물어야할 정도로 작품 속에 빠져들었고,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명확히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초반부 드라큘라를
연상시키는 살인 사건 현장을 마주했을 때는 순간 이 소설의 장르가 무엇이더라?하며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해쳐 나가다
만나게 되는 우리의 역사. 책을 손에 잡자마자 2권까지 내달리게 되었다.
1권과 2권이 괜히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1권은 현 시대를 그리고 있다면, 2권의 배경은 과거다. 시간에 따라 명확하게 내용이 분리되다 보니 다 읽고 나서
각각의 내용이 좀 더 명확하게 구별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1권은 미스터리 추리물에 가깝다면 2권은 역사소설
느낌이었다.
1. 역사의
쓸모
얼마전 김대식
교수님의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이 이 책과 연결되었다. 바로 인쇄 기술에 대한
이야기였다.
p.277
그러나 역사는 유럽에 세 가지 행운을
가져다줬다. 그리스 로마 지식의 이식,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인쇄 기술의 발명을 통해 다시 한번 재기에 성공했고 네덜란드는 이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즉,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유럽을 부흥기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었다. 분명, 세계사 시간에
배웠을 내용인데 책으로 만나니 새로웠고, <직지>로 만나니 그것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의 "한국은 금속활자 발명과 디지털 기술로 인류에게 큰 선물을 줬다."는 말에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의 장편소설을 완성해 낸 작가의
필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에서 이야기하는 이 '쓸모'를 잘 표현한 것이 이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잠들어 있던 역사적 사건들에 상상력을 입혀 죽은 역사가 아닌 다시 살아있는 '지금' 우리에게도 분명한 메시지가
전해지는 형태로 역사를 보여주는 작품이 <직지>였다.
이처럼 내게 <직지>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의 길이 향하던 최종 목적지
같은 모습이었다.
2. 잘 짜여진
미스터리물
P.009
놀라운 일이었다. 귓볼에서 약 3센티미터 아래 목 부분에 네 개의 구멍이 나 있었고, 그
구멍들의 가장자리에는 시커멓게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응고된 핏덩어리 위로 사람의 입술 흔적이 남아 있어 놀라움은 더해졌다. 목에
남아 있는 이 입술 증거대로라면 누군가 시신의 목에 입을 들이대고 물었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운전이 싫어 차를 몰고 나가는 일도 없다는 퇴임한 라틴어과 교수 전형우. 원한,
치정, 복수 어느 것 하나 연결하기 힘든 이가 살해 당했는데, 사체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다. 피가 빨리고, 창이 꽂쳐있고, 귀가
떨어져 나가 있는 잔혹하게 이를데 없는 처참한 모습. 하지만, 어떤 단서도 흘리지 않고, 살인 현장을 수습했다는 점에서 분명 프로가 저지른
일일진데, 그러기엔 너무나도 과하다. 모순점 투성이 살인 사건인지라 경찰에서도 좀처럼 해결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회부 기자 김기연은 해결만 하면 특종임을 직감하고 사건을 파고든다.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유학도 다녀온 이력이 있다. 이러한 그녀의 이력은 이 사건을 풀어가는 곳곳에서 징검다리처럼 등장한다. 미모의 여기자로
묘사되고 있으며, 당차면서도 문학적 감수성도 풍부하여 주어진 단서들을 다른 방향에서 보고 연결 짓는 능력이 있다.
'직지'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모르더라도 미스터리 추리물 자체로서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로 나와도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3. '직지'
별다른 문제 없이 살던 퇴임한 라틴어 교수가 잔혹한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의
시작은 '직지'였다. 직지심경이라 불리었던 직지.
p.47
"줄여서 직지라 부르지만 원래는 직지심체요절이네요."
"정식 명칭은 더 길어요.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니까. 직지란 곧바로 가르킨다는 뜻이고 심체란 마음의 근본이란 뜻이니, 제목을
그대로 풀면 '백운화상이 기록이 기록한 마음의 근본을 깨닫는 글귀'가 되겠지요."
"일종의 불경인가요?"
"불경처럼 오해되어 왔지만 사실 불경은 아니에요."
"그러나 직지심경이라 하잖아요. 금강경, 천수경같이 말이에요."
"불경이란 정확하게는 부처의 말씀을 아난존자가 옮겨 적은 걸 말하는 것ㅂ니다. 그런데 직지는 제목에서 보듯이 백운화상이라는 고려시대 고승이
역대 선승들의 선문답을 적은 것으로 불경이 아닌데 여기에 직지심경이라는, 마치 불경과도 같은 이름이 잘못
붙였어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잠들어있던 이 직지를 1967년, 이 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가 직지를 찾아내어 발표했다. 하지만, 원본의 이름이 너무 길어 알리는데 장애가 되어 결국 프랑스인들이 붙여준 틀린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여 직지심경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선가 스쳐들었던 내용이 이렇게 소설 속에 등장하자 더 명확하게 각인된다.
그렇다면, 왜 직지가 살인 사건과 연관이 있는가? '직지는 책 내용의
중요성보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가 다아는 사실로 인해서 교수가 살해당했다는 것은 너무
구태의연하다. 전형우 교수가 직지가 구텐베르크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카레나'에 접근했다는 것이 그의 목숨을 위협한 것이라 추측한
김기연 기자. 유럽의 부흥을 이끈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그의 독창적 기술이 아닌 고려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이라면, 세계사적 의의가 달라지는
것이다.
고려의 뛰어난 문화와 기술이 조선을 세운 세력의 악의적인 조작으로 사라진 점도
한탄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역사 공부를 깊이하지 않다보니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을 접하면 단순히 그렇구나 하고 말았지 이렇게 다각도로 살피고
비판해 볼 생각을 안했다는 점이 반성이 되었다. 그래서 토론,토론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가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현재라면, 지금이라면 어떻게 했어야 맞는지를 생각해야함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직지2>에서 이러한 깨달음이 더 깊어져만 갔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