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2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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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은 미스터리 사건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2권은 역사적 상상력이 압권이었다.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매력이 있었다. 1권은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긴박한 마음으로 몰입했다면, 2권은 이야기 속 주인공 이야기에 울고 마음 아파하며 몰입하게 되었다.


1. 한 줄도 무겁게 읽자.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 역사책을 읽을 때 그저 그런 줄 알았다. 단순한 사실, 정보로만 접했지 그 한 줄에 담긴 무게까지 살펴보지 못했었다. 한글을 만들고 반포하고 일상적으로 쓰게 될 때까지 누군가는 그 일에 목숨이 오갔겠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 들었다.

구텐베르크 역시 그저 서양 최초로 인쇄술을 발명한 사람이다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그 역시 삶이 있었던 존재라는 것을 생각조차 안했구나 싶었다. 앞으로 역사를 볼 때 단순한 정보가 아닌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봐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한글 창제 과정에서 세종 대왕이 겪었을 고충, 그의 뜻을 따르면서도 불안했을 이들의 상황을 <직지2>에서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었다.

p.044

"본관은 조선왕이 바녁을 도모하고 있다는 확고부동한 증거를 갖고 있소!"

어전에 든 주구의 첫마디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생략)

정인지는 종이에 적힌 글자를 보는 순간 경악했다. 아니 정인지만이 아니었다. 왕을 도와 새 글자를 만들고 있던 신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새 글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신하들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생략)

사대부의 지위를 크게 높여 왕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한 유학은 위대한 성인 공자가 정립한 절대적 진리였다. 그런데 왕이 쉬운 글자를 만들어 백성이 글을 알게 된다면, 이는 명나라에 대한 반역이기 이전에 공자를 장사지내겠다는 위험한도발이었다.

(생략)

"이건 반역이다! 조선왕이 천하의 황제가 되려는 건가?"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출판 역시 그 시대에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다른 장벽들도 존재했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p.194

"그래 금속활자로 성경을 찍을 수 있을 만큼 찍게."

쿠자누스의 말투는 침착하기 그지없지만, 구텐베르크의 두 눈은 찢어질 듯 확장되었고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뭐야? 이건 나를 죽이려는 계획인가, 아니면 교황에 대한 복수인가? 만약 나를 죽이려는 계획이라면 완벽한 성공이 보장되지만 교황에 대한 복수라면 치명적 실패야. 나도 죽겠지만 나에게 일을 시킨 자네도 무사하지 않을테니 말이야."

쿠자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었다. (생략)

교황을 비롯한 사제들의 권능은 신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데서 나오는데, 성경이 보통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사제들의 말은 진리가 아닌 검증의 대상으로 전락할 터였다.

2. 세계 최초 타이틀보다 중요한 것

'최초'라는 기록은 깰 수 없기에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타이틀이라고 한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 하지만, 작가는 그 세계 최초 타이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p.128


은수는 필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우수한 금속활자가 있음에도 국가가 그것을 틀어쥔 채 유교 경전만 한 해에 수십권, 많아야 200권 정도 찍어내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에 비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직지보다 뒤에 나왔으나 세상을 바꾼다. 종교개혁을 이끌어내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일부 권력층의 전유물이었던 성경부터 지식이 담긴 글들까지 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김기연 기자의 입을 빌려 작가는 말한다.

p.261

직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의미를 확산시키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구텐베르크의 업적을 깊이 이해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p. 262

구텐베르크를 인정하고 나면 우리 직지의 진짜 가치가 보일 것입니다.

이에 덧붙여 '세계 최고'의 프레임도 넘어서라고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라고 또 강조한다.

p.268

"김 기자님이 참 좋은 말을 했어요. 우리도 직지가 세계 최고라는 것만 주장하다 보니 막상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는 관심도 없었어요. 직지심체요절에는 정말 귀담아들을 말이 많은데...,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을 바로 보면 그곳에 길이 있다는 것이죠. 직지는 마음 수양법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요즘 세상에 귀감이 되는 말도 많이 담겨 있지요."

직지는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직지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바라보게 되었다. '최초', '최고'라는 타이틀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겠다는 생각도 드는 부분이었다.


3. 나보다 약한 사람과의 동행 - 한글, 금속활자에 담긴 정신


1권에서는 솔직하게 2000년대에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금속활자 때문이라는 설정이 쉽게 수긍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옳든 그르든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신념일 수도 있음을 설득당하게 되었다. '신념'. 어쩌면 이 세상을 바꾸는 원천은 '신념'이 아니었을까?


내 백성의 어려움을 보살피겠다는 세종대왕의 신념. 그 신념을 어떻게든 지키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카레나의 신념. 그 신념이 씨앗이 되어 기적처럼 저 먼 나라로 넘어가 또 곧은 신념을 지닌 이들의 그것에 더해져 금속활자가 꽃피게 된다.


2권에서는 '한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구나 쉽게 글을 익혀 어려움을 겪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 그 '한글'을 전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금속활자. 발각되면 명나라를 향한 도발이 될 수 있다. 기존 세력들은 자기보다 밑의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은밀히 벼슬도 없는  신미 대사와 주자간의 한 주자사의 힘을 모아 이를 이루어내려고 한 세종대왕의 신념. 그런 신념이 발현되어 지금 이 순간 내 나라의 말과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니.. 막연히 알던 것과 이렇게 소설 속에서 생생한 인물들과 만나 느껴지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주자사의 딸 은서가 한글의 기본 서체를 완성했을 때 세종대왕과 만나 나눈 대화에 그 정신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p. 27

 

"예쁜 글자도 있고 웅장한 글자도 있을진데 어떻게 그런 편안한 서체를 만들었느냐?"

"한자가 어려워 글을 읽을 수 없는 백성들을 위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드신다 들었습니다. 그리하면 수많은 반대가 있을 터인데 글자가 예쁘기만 하면 멸시를 받을 것이고, 글자가 웅장하면 배척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편안함을 기본으로 하되 전하의 정신을 담아 당당하게 만들었습니다."

"허, 너의 총명함이 가히 하늘에 닿는구나. 그러하면 너는 새 글자를 다 익혔느냐?"

"현재까지 만들어진 것은 다 알고 있사옵니다."

"어렵더냐?"

"세상에 그보다 쉬운 일도 없을 지경이었나이다."

"못 담을 소리가 있더냐?"

"새소리는 물론이고 물소리, 벌레 소리, 바람 소리까지 못담는 소리가 없으니 이는 신묘하기 그지없는 일이옵니다."

"새 글자가 모든 한자를 대신할 수 있겠더냐?"

"물론이옵니다. 오히려 한자로는 새 글자를 다 나타낼 수 없사옵니다. 멍멍, 꿀꿀 하는 소리르 한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사옵니까."


좀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가지만.. 요즘 아이와 한글 공부 중이다. <직지>를 읽다보니 지금 우리 글자를 익히고 있는 아이에게 이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어서 세종대왕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김진명작가의 <직지>라는 책을 읽으면 우리 글자에 담긴 신념이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내용을 단순히 역사책 한 줄로 기억하기 보다 이런 문학작품으로 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이다.


p. 179


"당신이 금속활자를 온 세상에 퍼뜨려주세요. 저의 아버지가 가셨던 길이고, 제가 가장 따랐던 분이 가시던 길이에요."

"가장 따랐던 분이 누구요?"

"내 나라 코리의 왕이시죠. 그분은 제가 따르는 술을 거절하셨어요. 첫 잔을 낭군에게 줘야 한다며 저를 지켜주셨어요. 그리고 가난하고 못 배운 백성들을 위해 글자를 만드셨어요. 글을 가져야 강해진다고 말씀하셨죠."

"글자를 만들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오? 글자란 오랜 세월을 두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건데."

(생략)

"글자를 움켜쥐고, 지식을 움켜쥐고, 권력을 움켜쥔 탐욕스런 지배자들로부터 벗어나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힘을 기르고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요."

"아!"

p.180

"왕이 그랬단 말이오?"

"네."

"코리의 왕이?"

"네."

"정상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 맞소?"

p.181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신 건 어리석은 우리에게 희생을 가르치려 하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생략)

멀리 코리의 왕이 자신들의 백성을 위하여 글자를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을 오늘 하느님 아버지께서 제게 일깨워주신 뜻을 깊이 깨닫고자 합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저를 섬기게 하지 말고 저로 하여금 백성을 섬기게 하라는 소명임을 직관하였는 바, 저는 당신께서 카레나를 통하여 제게 계시하신 대로 금속활자를 퍼뜨리는 데 소임을 다하고자 하나이다.

카레나와 교황 성하 쿠자누스의 대화이다. 신념과 신념이 만나는 순간이다. 이는 더 큰 신념이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쓰였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여려움을 살피고 함께 손잡을 때 세상은 좋아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었다.

국수주의로 치닿고 있는 요즘 세계 정세와 대비되는 내용들이 가득했던 <직지>였다. 또 4차산업시대로 접어들면서 잃어버리기 쉬운 길을 역사를 들여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스터리 추리물로써도, 역사물로써도 완성도가 높은 <직지>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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