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했다. 반박하고 싶었다. 자꾸 반발심이 들었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결혼생활을 10년 정도 해 본 이라면 작가의 말들에 난
아니라고 버럭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우리 엄마보다 1살 어리신 최연지 작가의 말들은 거침이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보았기에 내뱉을 수 있는 말들이었다. 힘들 때 다독거려주는 스타일이 아니라 거침없이 "야 이*아. 내가 그랬지? ㅣ버앟엉ㅎㅇㅎㄹ'이렇게 욕해
주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뭐라하다가 '그래도 살아, 사는 거 별거냐'라고 쿨하고 무심하게 위로해 주는 큰 이모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평생 말빨 글빨로 돈 벌며 살아온 센 언니의 39금 사랑 에쎄이라는 부제목이 와닿는다.
1. <질투><연인><애인> 작가 최연지
<질투>하면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사람. 고 최진실이다. 너무 예쁘고 똑소리나던 모습이 여전히 내 기억에도 남아있다. 망자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에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최연지 작가는 거침없다.
p.98
혼자서도 두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 충분한 애정과 재력을 갖추고 있겠다, 중견 연지자로서 CF모델로서 일하고 돈벌고 취미생활도 즐기고
새로운 연애에도 몰입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최진실이 오해했듯 아버지가 있다고 해서 아이가 행복한 건 아니다. 아버지가 없다고 아이가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어떤
아버지인가, 아이를 존중하고 한없이 신뢰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좋은 아버지인가'이다.
행복한 아버지만 아이를 행복하게 한다. 꼭생부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존중하지 않고 훈육이라며 자기 기분 따라 야단치고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행하여 아이를 망가뜨리는 그런 아버지. 그런 아버지는 차라리 없는게 훨~낫다.
질책하는 말투로 보이지만, 잘 보면 곳곳에 그녀를 얼마나 아꼈는지, 안타까워하는지 느껴진다. 독자에게 최신실씨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보라고, 떠난 인연에 미련두지 말고 즐기라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이처럼 결혼 생활에 대해, 가족이라는 존재, 일에 대해 꾸밈없이 솔직하게 작가의 생각을 들려준다.
2. 사랑, 결혼, 육아, 효도
p. 36
사랑이 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계절이 지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p. 60
결혼은 아무나 하지만
이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아무나 이혼을 잘할 수는 없다.
p. 105
견딜 때까지 견디다가 정 안 되면 끝낸다는 건
후자에 속한다.
그런 상태론 담담할 수도 현명할 수도 없다.
본인도 고통스럽고 배우자와 자식들도 불행해진다.
정 안 되면 끝낸다는 건 허약한 자신을 속이는 말이다.
끝내기 전에 자기가 끝난다.
울화병 혹은 암으로....
p.109
멀쩡한 사람 하나 노새 만들어 놓고
안 노새인 사람끼리 편안하고 화목한 게 가정인가.
p.122
빚 갚으러 나온 자식이 효자고
빚 받으러 나온 자식이 불효자다.
(생략)
그러니 자식이 효도를 하거든 감사히 받고
불효를 하면 '아, 내가 채무가 있었구나~'하고
미안해하며 그 자식에게 더더욱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해야지,
자식 복 드럽게 없다고 한탄하거나 효도 타령을 해서는 안 된다.
위의 글들 외에도 날카로운 말들이 많이 있다. 작가의 엄마는 작가를 임식했을 때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중이라서 아이가 방해가 되어 중절
수술을 하러 갔었다고 한다. 다시는 임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참고 돌아갔다가, 입덧때문에 못견뎌 다시 수술을 하러 가기도 했단다.
자신이 살해 당할 뻔 했다고 작가는 그 일을 이야기한다. 성장 과정에서도 아버지가 하도 때려서 아버지가 죽기를 바랬던 일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절대 폭력은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 나의 성장과정, 연애, 결혼, 육아. 그리고 딸로서의 나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3. 행복이란?
서두에 거북하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너무나도 단호히 불행한 여자가 글을 쓰다고 해서였다. 또한, 여자에게는 예쁘다고 해야한다던지 하는
표현들도 불편했다. 하지만...연륜있는 분들의 이야기는 슬프게도 틀린 적이 없다.
p.19
이거, 내가 만난 모든 여자 작가들이 급동의하는 말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글은 A4지 한 장 이상의 긴 글이다.
특히 팔기 위해서 쓰는.
행복한 여자는 첫째,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또 글을 쓰겠다는 욕구도, 써야 할 이유도 없다.
글을 한 장 쓰는 건
한 마지기의 밭을 매는 것과 비슷한 강도의 노동이다.
것도 반드시 혼자 해야 하는.....
누구와도 더불어 함께할 수 없는 노동집약적 작업이 집필이다.
행복한 여자는 불러주는 곳이 많고
가야 할 데도 많다.
(생략)
반면, 불행한 여자를 오라고
적극적으로 부르는 데는 별로 없다.
(생략)
그래서 불행한 여자는 돈 안드는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는 거다.
병신 삽질.
P.24
그런데 딱 자살만 안 하고 버티면
이 모든 것이 그대로 기막힌 재산이 되는
유일한 직업이 작가다.
P. 26
충분히 불행한 쥐만 고양이를 문다.
충분히 불행한 추락에만 날개가 펼쳐진다.
충분히 불행한 여자만 글을 쓴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찌보느냐에 따라 행복이 되기도 불행이 되기도 한다. 작가 입장에서 눈 앞에 펼쳐진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재산이 된다.
작가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닌게 성공한 이들에게도 위기는 있었고 그 위기를 기회로 바꿔낸 이들만이 성공의 열매를 가져갈 수 있었다. 그리 생각하는
처음에는 거슬렸던 작가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딱, 그 느낌. 드라마 같은데서 '이그 살아가 뭐하노 니 그케
봤자다, 뻘 짓 해서 힘 빼지 마라' 하다가 '그래서 니 밥은 묵었나' 하며 밥 비벼주는 그런 캐릭터에게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호불호가 있을 책이다. 또한 39금 사랑 에쎄이라는 말처럼 어린 세대에게는 다소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들이
와닿았다면 그 독자 역시 어느 정도 살만큼 살아 봐서 인생의 쓴 맛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책 마지막에 에필로그에 "써놓고 다시 보니 글이 아니다. 말이다."라고 얘기했듯, 인생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으면 좋은 책일 것
같다.
출판사의 책을 제공받아 읽고 남기는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