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 알베르트는 좀 이상해! 열린어린이 인물그림책 1
돈 브라운 글.그림, 윤소영 옮김 / 열린어린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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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습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도 서로 통하는 친구라는 것은 알았지만 불안한 청춘이어서 미처 꺼낼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었고 또 눈에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도 있었지요. 이제는 알게 된 시간이 오래 되어서 그런지 이 얘기 저 얘기 편하게 주고 받지요.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친구 그러더군요. 그 시절, 자신이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했다고. 전 까페가 떠나가도록 으하하하하하하하 웃었습니다. 왠만해서 꿈쩍도 안 하는 그 친구가 제 웃음에 멋쩍어 했죠. 제가 얘기했어요. 내가 널 비웃는 게 아니다. 내 방 책꽂이에 천재들의 고통에 관한 책이 있다. 나도 내가 천재라서 너무 힘들었다. 너처럼. ^^  

아, 의뭉스러운 표정의 알베르트가 가득한 이 책을 보면서 시니컬한 눈빛으로 그 시절을 보내던 그 친구, 쓸모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하루 삽질에 몰두할 수 밖에 없었던 내 불안했던 날들을 떠올렸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알아차린다고 해도 이해받을 수도 없을 거라며 퉁명스럽게, 혹은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로 얼버무리며 세상에 대꾸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려는 의지가 확고했죠. 무.엇.보.다. 진실하고 깊은 소통을 원하고 있었고요. 알베르트와 그 친구와 나. 우리들의 의뭉스러운 표정과 부조화는 우리가 천재냐 마냐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공놀이나 시위가 아니다, 우리는 정말 다를까, 원하는 것이 다른 우리가 세상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세상과의 소통은 예상치 못한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알베르트는 수학 속에서 소통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음악으로 소통하기를 바랬고, 저는 그림이랑 마주보며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했지요.  

소통할 무엇이 생긴 후에도, 알베르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였고 병약했고 학교에서는 좋은 평가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생은 흘러가고, 알베르트는 과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을 하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빠도 되었지요. 청소년기와 청춘의 방황은 눈에 또렷이 보입니다. 그러나 늦은 청년기나 장년기의 방황과 성장은 삶의 과정에 숨겨져, 또는 삶의 무게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겠지요. 작가는 직장을 갖고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알베르트에게 '좀 이상한' 모습을 더이상 강조해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알베르트가 자기 안에 가두어 두었던 세계, 혹은 알베르트를 '좀 이상한' 녀석으로 만들었던 그 세계를 과학의 신비가 가득한 그림으로 환희롭게 펼쳐 보입니다. 이것은 빛의 속도, 상대성 이론 등의 과학 이론으로 정립되게 되지요. 알베르트는 그 이론들을 밖으로 보여 주기 시작했고 세계와 폭넓게 소통하게 되었지요. 수수한 옷차림, 의뭉스럽지는 않지만 이제는 남 신경 안 써도 되는 사람이 보여 주는 편안한 눈매, 작가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이상한 어린 아이가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림책은 절대 아니죠. ^^;; 자기 세계라고 할까요, 그 세계가 남들하고 달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거 같아요. 정말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나쁘지만요(어린 아인슈타인의 성질머리는 조금 못되긴 하죠? ^^), 그게 아니라 취향이 조금 다르고 성장하는 시기와 방법이 조금 다른 거라면, 그것 때문에 너무 초조해 하거나 소외시키지 말라고요.지금도 어느 구석에서 자신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하고 있을 어린 아인슈타인들, 그런 아이를 옆에서 보아야 하는 어른들에게 이 책을 적극*적극 추천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이상해"라는 말 너무 쉽게 하는 사람을 보았어요. 그 사람 옆에 있으면 왠지 불안했어요. '이 사람, 어디가서 나 이상하다고 말하는 거 아냐.' 이상하게 '이상하다'는 평가 받는 건 진짜 겁나더라고요. 물론 진짜 이상한 사람들도 있어요. 『미쳐야 미친다』에 나오던가요? 남의 상처딱지 먹으면서 환희를 느끼는 옛중국인 같은 경우의 이상함은 세상이 함께 소통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렇지만 알베르트의 이상함은 성장의 과정이나 고집센 사람들이 자신을 세상으로 표출하기 이전에 겪는 성장통이지 정말 소외되어야 할 것은 아니었답니다. 지금도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투정부리는 꼬마 천재님들, 버티고 견뎌 보세요. 좀 늦을 뿐이에요. 당신들이 성장할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에요. 당신들의 생각이 소통될 수 있을 날이 있을 거예요. 쥐구멍에 볕들날처럼. ^^  

그 친구와 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그 친구나 저나 자신에 대한 확신과 애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천재라는 단어보다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 자신에 대한 확고한 애정과 자존심을 표현하게 되었을 뿐이죠.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우리 둘 다 '사람'으로 돌아왔다는 것, 사람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고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이지요. 그 방황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요, 전 자신의 재능을 소중히 하고 오늘도 힘겹게 걸음마하는 친구들에게 니 인생 그대로 고고씽하라고 외칩니다. 그게 남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니 인생 그대로 고고씽, 고독해도 고고씽, 브라보 유얼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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