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넓은 집 열린어린이 그림책 16
소르카 닉 리오하스 글, 최순희 옮김, 논니 호그로기안 그림 / 열린어린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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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흥겨움에 취해 보세요

작년 이맘 때 쯤에는 아일랜드에 있었어요. 여섯 달 정도 그곳에서 살다 온 저한테 아는 분이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을 선물해 주셨죠. 스코틀랜드에는 가본 적 없지만 워낙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같은 분위기라고 말들 하고, 저도 이 책을 보며 배경 그림이나 정서가 아이리쉬 민요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제가 경험한 선에서죠. ^^

책을 보고나니 서평을 쓰며 이 책에 대해 소개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사실 저도 이 책 속의 집과 비슷한 상황의 집에 살았었거든요. 그래서 쓰다 보면 세장이고 네장이고 제 얘기만 쓰고 있는 거예요. ^^;;; 그래서 기다렸죠. 내 얘기 조금, 책 얘기 조금하게 될 날을. ㅎㅎ 더블린에서는 유학생들이 방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요. 워낙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상황이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더블린으로 영어 및 직업 연수를 오거든요.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다보니 집주인들은 유학생들을 까다롭게 고르고요. 스무 번, 서른 번 집을 방문하고 다녀도 자신들이 살 방 하나를 구할 수 없다는 친구들도 종종 보았어요. 저는 용케 금세 구했지요. 운이 참 좋았던 거 같아요. 그렇지만 네 명 정도가 살면 딱 맞을 집에 집주인 아저씨는 누가 부탁하기만 하면 새로운 친구들을 받아 주고, 저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은 툭하면 친구들 떼로 몰고 오고…… 처음에는 복작복작하던 것이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점점 지저분해지고 설상가상으로 새로 온 플랫메이트들은 너무 예의가 없어서 더블린 생활 막바지에는 기분 상하기도 했지요. 책 속과 똑같은 상황이 아니지만, 저는 이 책 보면서 참 그집 같다는 생각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어느 접점에서 갈라지는 결론을 보며 그냥 가볍게 소리 내어 웃게 돼요. 

우리나라 사람들과 아일랜드 사람들의 정서가 비슷하다는 말을 하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의 의미를 알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가 어떤지 잘 알아야 하고, 또 비교 대상으로 삼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정서도 좀 알아야 할 거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향이 제 눈에는 아직 안 보여서요. 우리나라 사람들과 아이리쉬들의 성향을 연결해서는 말 못하겠지만 이 책 속에 나오는 라키 맥클라클란 가족과 손님들은 정말 아이리쉬들 같답니다. 친절하다고 강조하기 보다는 흥겨움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정말 이 책을 볼 때, 친절한 아이리쉬들이 아니라 흥겨운 아이리쉬들을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평소에는 수줍고 무뚝뚝할 때도 많지만 풋볼 매치가 열린다거나 축제가 있다거나, 아니면 펍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이리쉬들은 하나같이 흥이 넘치죠. 술 무지 좋아하고, 술 마시면 유난히 더 수다스럽고 친절해지는 사람들. 저녁만 되면 펍에 가서 여흥을 즐기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고 술 취해서 엉뚱한 말들을 주절거리던 사람들. 그게 가끔은 불만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감정을 숨기지 않고 보여 주는 모습은 그저 순박하고 좋아 보여요.

집이 무너져 버린 다음에 언덕 아무 데나 내팽겨쳐진 사람들,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나오는 건 ‘어떡해~’나 무거운 한숨이 아니라 푸하하 웃음이었어요. 낡은 집 하나에 지나가는 온 사람들 불러모으는 라키 아저씨의 후한 인심이나 그 쪼그만 집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 (제가 추측하건대 분명 맥주도 한 차례 돌았을 거예요!^^). 저는 그들의 대책 없는 즐거움이 쏙 빠졌답니다. 그래서 요란법석한 잔치의 대가로 집이 무너져버렸을 때도 이들이 느낀 건 집이 무너진 망연자실이라기보다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거나 재미있게 놀고 있었는데 아깝다는 하는 게 아니었을까 할 정도였어요. 아마도 그런 흥겨움이 우리랑 닮았다고 하는 걸까요? 아, 그리고 아이들한테 읽어줄 때는 맥주 얘기는 쏙 빼셔도 되어요. ^^;;; 저는 그 흥겨움을 전달하고 싶어서 함께 이야기한 것뿐이니까요.

하나 더, 익살맞은 이 이야기를 그린 그림들은 정말 아름답지요. 분홍색 히스 가득한 들판에서 초록색 풀과 낮은 돌담들이 어렴풋이 보여요.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일게요. 왜, 라키 아저씨가 손님들을 열심히 불러 모은 날, 밖에는 비바람이 불어쳤다고 하잖아요. 이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이 흥겨운 이야기를 읽으며 비바람 치는 날씨도 함께 상상해 보세요. 종이에 그려진 그림은 평면에 점선면 뿐이지만 그림을 그릴 때 그곳에는 날씨, 바람, 냄새, 소리도 함께 있잖아요. 사진 찍을 때처럼. 그렇게 그 날씨와 그 소리도 함께 상상해 보세요. 밖은 어두컴컴하고 추운데 오두막 안에는 열기 가득한 잔치가 열리는 그 풍경. 또 아무 아일랜드 민요나 골라 들으면서 그 노래에 그 내용을 한 번 떠올려도 좋겠어요. 그 흥겨움이 몇 배가 될 거예요. 아, 단, 대니보이 같이 조용한 선율 말고요, 음, 몰리 말론이라는 노래 정도면 적당할 거 같아요. ^^ 즐감하세요. 책은 읽는 이 마음대로라는 것을 알지만 전 이번에는 왜 이렇게 제 조언을 참고해 달라고 하고 싶은지요. ^^ 이거, 흥겨운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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