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해적 - 유럽에서 아시아 바이킹에서 소말리아 해적까지
피터 레어 지음, 홍우정 옮김 / 레드리버 / 2023년 2월

인류가 땅에서 망망대해로 나아가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바다는 기회의 장소이자 동시에 막연한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었다. 해양교역이 가져다주는 막대한 운송은 단순한 무역 그 이상, 즉 국가의 운영에도 필수불가결 요소임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첨단 운송이 보편화된 현대에도 육상은 물론 항공운송 조차 운송량과 시간, 그리고 금액적 측면에서 여전히 해운을 따라갈수 없는 측면에서 볼때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앞으로도 바다는 인류에게 중요한 삶의 부분일것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운송망에는 항상 날파리가 낀다. 산에는 산적이 있다면 바다에는 해적이 있는법, 최초로 땟목등 원시적 운송수단을 이용한 이래로 지금까지 쭉, 상인과 해적은 영원한 동반자인것이다. 아니, 사실은 둘이 한 몸인것은 아닐까??

본 책에서는 서양의 해적-지중해와 북해를 중심으로 한- 과 동양의 해적-왜구와 인도네시아 말레이 해협등-을 포괄적으로 다루며 해적의 근원과 그들의 변화에 대해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점차적으로 변화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요지는 같다.

1.해적은 단순한 신념 혹은 욕망이 아닌 경제, 생계형 문제가 가장 컸으며

2.중앙 정부가 혼란에 빠져서 해군이라는 돈 먹는 하마를 운용하지 못할때 가장 발호했으며

3.극히 현대를 제외하고는 해적과 무역상을 구분하는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3번은 매우 흥미로운 관점이였다고 생각된다. 저자가 서양인인 탓에 동양 해적은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동아시아사에서 왜구가 차지하던 영향력과 그로 인한 위기를 생각하면 그간 품고있던 의문이 다소 해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말선초에 한반도는 왜구로 인해 수도 개경이 포위당하는등 초유의 위기를 맞이한바 있다, 이로인한 홍산대첩-진포해전-황산대첩은 강력한 군벌인 최영이 성장하는 기반이 된 동시에 후대의 조선태종 이성계의 대뷔전이기도 하였으니 말 그대로 국가의 운명을 바꾼 효시가 되었다고 볼수 있다.

대체 이런 무장병력들이 어디서 달려나온건지? 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을지도 모른다.

1. 해적의 발호->국가적 해금정책->무역상들의 밥줄이 끊김->생계형 해적의 발호

2.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한 노예/노비/소작농등의 이판사판 로또인생 선택으로 인한 자발적 해적화

사실 생각해보면 항해 자체가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던 과거에 숙련된 항해자들이 갑자기 뿅하고 튀어나올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인근 국가의 혼란으로 붕괴된 해상업 종사자들이 자연스럽게 해적화 되었다고 본다면 그들의 항해술과 기동력도 납득할수 있는 것 같다.

이런 해적들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방식또한 동 서양을 막론하고 동일하였다.

해적이 발호하는 혼란기에는 이미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상당부분 소실된 후이므로 말 그대로 돈먹는 하마인 해군을 양성하기에는 힘들다, 사실 이 단계에서 이미 (구)해군들 출신들은 상당수가 생계를 위해 해적에 합류했을 가능성이 다분한것. 여러모로 91년 구 소련군과 마피아의 커넥션을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장비도 부족하고 숙련도도 떨어지는 분열된 지방정부의 해군으로 이런 강력한 해적을 진압하는건 거의 불가능 하므로 해안지대를 비우는 해금정책등의 소극적 대응등이 일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속수 무책으로 탈탈 털리던 시기를 지나 강력한 중앙정부가 등장하면 우선 새롭게 양성한 해군을 바탕으로 이들에 대한 토벌을 단행한다, 하지만 쉽지많은 않다. 무력 토벌을 통해 해적을 근절시킨 사례는 매우 희소하며, 그 효과는 일시적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장기적으로 볼때 해적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그들의 발호 원인을 제거하는것이였다는 결론을 얻을수 있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한 조선 세종의 경우, 이종무 주도하에 대마도 원정을 펼치는등 무력 진압을 하는 동시에 대마도주인 소씨 가문에게 무역권을 주며(조선과의 무역을 통해 쌀이 유입됨으로 고질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대마도민들에게 해적질에 나서지 않아도 될 선택지를 만들어 주었다) 대마도 인근 해역을 단속하도록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해적이라는 극한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도 먹고 살 방법을 마련해 준 순간 편안하고 안락한 방법으로 관심이 돌아가는건 어찌 보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하겠다.

과거 이솝이야기에서 우리는 여행자의 코트를 벗기기 위한 태양과 바람의 병림픽을 보았다. 멀쩡한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재난인가 싶겠지만,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면 승리한 병신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태양과 바람은 가열찬 대결을 펼쳤고, 결국 코트를 벗겨낸것은 바람이 아닌 태양의 따스함이였음을 우린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