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 나로 존재하는 용기 - 진실한 삶을 위한 실존주의적 처방
고든 마리노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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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던 요즘. 매순간이 어렵고 뜬 눈으로 만나는 새벽이 당연했다. 어느새 밝아오는 아침은 끔찍하리만큼 싫었고. 알아차리기도 전에 내 몸은 급류에 휩쓸려 진흙탕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이유를 시시콜콜 말할 수는 없지만 (남이 듣기엔 재미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나쁜 일상을 보냈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 때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나로 존재하는 용기'라는 이 책의 제목이 어찌나 부담스러운지. 이 책이 내가 가야할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다면, 나는 이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불편함이 들었다. '불안'과 '우울'을 논하는 글들을 체하지 않고 소화시킬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겨우 넘겼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아주 온화하게 실존주의를 논한다. 넌 행복할 수 있어, 라고 은글슬쩍 강요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우울과 불안을 내가 겪어야할 당연한 것으로 단정짓지도 않는다. 힘들 땐 항우울제가 도움이 된다는 솔직한 실존주의자는 그저 다양한 '극복'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 모든 방법들은 결국 나의 내면을 직시하는 법으로 귀결된다. 삶의 매 순간은 나 자신의 선택이고, 나 자신의 의도이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던지 어쨌든 우리는 이 삶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의 부제인 '진실한 삶을 위한 실존주의적 처방'과 같이, 작가는 키르케고 포함 여러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 삶 속의 수많은 틈들을 메울 수 있도록 독자에게 처방을 내린다. 이는 꽤 실용적이다. 불안, 우울과 절망, 죽음, 진정성, 신앙, 도덕성, 사랑. 우리의 삶의 대부분을 이루는 이 단어들은 아주 가깝고도 멀며 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 괴로운 과정들이 인간 본성의 완벽함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부족한 것을 파악하고 진정한 나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집중하기. 나의 부족함을 부정하지 말고, 너무 미워하지 말기.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기. 이렇게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이니까. 나는 아주 착실하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실존주의, 더 나아가 (따뜻한)허무주의를 좋아하는 편이다. 억지스런 이상과 행복에 이를 수 있는 달콤한 말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정성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란 괴롭기 그지없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임은 틀림없다. 우울과 절망을 혼동하지 않고, 나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쓰디쓴 후회를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절대 쉽지 않겠지만, 일단 마음을 먹는 것 만으로 하지만 오늘을 참아내는데에 약간의 도움이 된다. 마음에 드는 논리, 개념, 구절만 쏙쏙 골라 나만의 철학을 만들었다. 과거의 우울이 어느새 그림이 되어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 과 같이, 앞으로 찾아올 수많은 어려움 또한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고.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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