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하는 뇌 상식사전
이케가야 유지 지음, 박소현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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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편향' 퀴즈쇼 - 착각하는 뇌 상식사전

우디 앨런의 <섹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내 머리 속에서도 작은 인간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을 것만 같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분홍색 관제센터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일 것이다. 무한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고,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테니, 정말 극한 직업이 따로없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가끔 저지르는 바보 같은 실수도 이해해줄 만하다. 단결력과 협동심으로 똘똘 뭉친 팀이라도 손발이 맞지 않을 때가 있으니. 인식과 사실에 차이가 발생해도, 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착각에 빠져 나머지 일을 수행한다. 어떤 상황에 대하여 직감적으로 해석하고 판단을 내려도 내가 지금껏 겪었던 케이스만을 분석해 내놓은 결과이기 때문에, 틀린 답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뇌 속 작은 일꾼들은 자신들의 팀워크에 고취되어 오류들을 눈치 채지 못한다. 즉, 일상 속에서 숱하게 접하는 판단 오류는, 뇌의 귀여운 실수로 일어나게 된다.


'인지 편향'. 인간의 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려고 최적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버그'이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동안 일종의 '습관'이나 '버릇', '취향'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이 습성들은 하나의 관계망을 구축해 나만의 '뇌 사용법'을 만들어낸다. 이 비합리적이고 요상한 시스템은, 일상 속에서 꽤나 큰 역할을 한다. 결정과 판단의 순간 이 시스템이 발동하면 우리는 '촉이 왔다'고 말하고, 내 머리 속에서 가장 그럴듯한 경우의 수를 선택해 결정을 내린다. 실제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될 때도 많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져내린다.

이 책은 그런 인지 편향, 일상 속의 착각을 수십개의 샘플로 아카이빙했다. 대표적인 인지 편향 80 항목을 퀴즈 형태로 풀어볼 수 있다. 몇몇 퀴즈들은 말그대로 '편견'적 시각이 느껴져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읽다보니 작가의 연구 의도가 점차 선명해졌다. 문제를 하나씩 풀어갈수록, 지금껏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뇌와 조금 서먹해지게 된다. 이 녀석, 생각보다 실수가 잦다. 즉흥적인 선택 뿐만 아니라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에도 어리석은 판단 오류가 자리한다. 심지어 자존심도 강해, 틀린 결정에도 그럴 듯한 이유들을 만들어낸다. 착각, 착시, 오류, 실수, 자기합리화. '논리'와 '이성'과는 거리가 먼 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실소가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나의 일상이 이토록 편견 투성이었다니. 이제 좀 더 느긋하고 꼼꼼한 생각의 단계를 거쳐 행동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러다보면 작가의 말대로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진다.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의 반은 머리 속 작은 뇌의 계략이니까. 나를 그리고 타인을 좀 더 이해하고 싶어진다. 이젠 더이상 뇌에게 속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해봤자 무용지물일테니- 그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무지각하다는 사실만 가슴 깊이에 새겨본다. 그 것만으로 충분하다.

덧붙이기 -

80개의 퀴즈 이외에도 50가지의 착시 오류 용어가 정리되어 있는데, 이 착시현상들이 모두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재미있었다. '루빈의 꽃병' 착시, '악마의 포크', '헤르만 격자' 착시... 오랜만에 눈의 초점을 풀어가며 착시 현상 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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