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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길수록 선명해지는 - 소리를 되새김질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청각장애 청년의 유쾌한 자립기
채승호 지음 / 폭스코너 / 2022년 12월
평점 :
리뷰를 쓰게 될 정도로 감사한 책이었다. 청각 장애를 지닌 청년의 이야기지만 먹먹함에 압도될 것 같은 새드 스토리가 아니라서 좋았다. 위트와 유머가 곳곳에 고명처럼 얹혀 있는 것도 반가웠고.
마치 채승호 작가가 타고 다닌다는 민트색 스쿠터처럼 산뜻한 바람 냄새가 나는 글이었다.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크지는 않지만 작은 희망, 뜨겁지는 않지만 잔잔한 따뜻함을 느꼈다.
나는 이제 잘 안 들려서 타인과 소통하기 힘든 것보다 서로 집중해서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대화의 깊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되었다. P.33
위 문장을 읽는 순간, 첫 번째로 눈물이 핑 돌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감히, 원인도 알 수 없는 청각장애를 안고 사는 그와 나란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란 인간도 일종의 장애를 안고 사는 턱없이 부족한 인간이라는 걸 알기에. 그런데도 난 저렇게 생각할 수가 없어서?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부족해서, 그래서 더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됐다니 그렇지 못했던 내 시간들이 후회스러워. 아니면 부끄러웠을 수도. 여하튼 이 청년, 사람 좀 울릴 줄 아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산 책에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기는 ㅎㅎㅎ 글렀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울다가 웃다가, 잘하는 짓이다 하고 혼잣말을 했다.
맞다, 울기도 했지만 이 민트색 청년은-그가 적은 것처럼 나를 껄껄 웃게 만들었다. 특히 이 장면은 막 상상이 됐다.
아픈 형 때문에 철이 일찍 들어버린 동생이 고해성사를 한 장면 말이다. 형이 얄미워 보청기를 빼고 자는 형의 귀에 대고 동생이 욕을 한 것을 고백한 대목이었다. 이때 채승호 청년의 대답이 걸작이다.
얘기를 듣고 빵 터진 나는 "그때 일부러 욕하라고 보청기를 빼놓은 거야!" 하고 재밌게 넘겼다. 이 녀석, 흐뭇한 얘기를 하는 틈을 타 이렇게 고해성사를 하다니 제법인걸. P.68
채승호 작가보다 그 동생이 더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채승호 작가가 유머의 힘을 깨닫고 자신의 장애를 행복한 웃음의 도구로 사용하는 영리함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 유머가 그로 하여금 여러가지 도전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정말 오랫만에 좋은 책을 얻었다. 교훈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 정도가 될까? 갖지 못한 것을 너무 아프게 받아들이지 마라. 대신 웃을 줄 아는 용기를 발휘해라. 그 산뜻함이 너를 키우는 영혼의 수프가 될 테니까.
나는 이제 잘 안 들려서 타인과 소통하기 힘든 것보다 서로 집중해서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대화의 깊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되었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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