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 살려고 받는 치료가 맞나요
김은혜 지음 / 글ego prime / 2022년 6월
평점 :
며칠 전에 지하상가에서 원피스를 한 벌 샀다. 파자마 대신 입을 요량으로 대충 골랐는데, 가슴팍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You are only your limit'
'당신을 한계 짓는 것은 오직 당신 뿐이다'
15,000원 짜리 싸구려 원피스에 적힌 문구 치고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근데 이게 참 보면 볼수록 맘에 드는 문구였다.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당신을 한계 짓는 것은 오직 당신 뿐이다. 책을 읽는 데 내 싸구려 원피스에 적힌 문장과 너무 잘 어울리는 에피소드가 있어 첫머리로 장식해보았다.
20대의 나이로 유방암을 선고받은 여자는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며 울었다. 내년에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직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이 떠올랐다. 떨어진 단풍잎을 주우며 그녀는 '내년에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라며 말을 흐렸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젊은 여성은 그날 밤이 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울었다.
단풍이 떨어지던 가을이 지나 벚꽃이 흩날리는 봄, 그녀는 다시 벚꽃잎을 주웠다. 이번에는 운 좋게 벚꽆을 보았지만 내년에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그녀는 금방 삭아버릴 꽃잎들을 또 하나씩 하나씩 주워담았다. 그녀의 상자에는 단풍잎과 벚꽃잎이 가득했다.
하지만 벚꽃잎을 주워담던 그 해 10월, 그녀는 또다시 단풍잎을 주웠다. 이번에도 운 좋게 단풍을 보았다고 생각했을까? 그녀의 우울한 마음과 달리 그 상자는 색색의 아름다운 빛깔로 채워졌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봄, 그녀는 더이상 꽃잎을 줍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 살이 올랐고, 피부도 조금 검어졌다. 아직도 그녀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꽃잎을 줍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 봐요!"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한정 짓던 건 그녀 자신 뿐이었다. 남들보다 죽음에 가까워졌을지라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깨달았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미래를 포기할 순간이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내 원피스를 볼 때마다 그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당신을 한계 짓는 것은 오직 당신 뿐이다.' 그것은 죽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잎들을 계속 보고 있는데 정작 선생님이랑 같이 걸었던 그 길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만 주우려고요. - P1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