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1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전복과 반전의 순간 1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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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렵고 딱딱한 얘기를 할 것만 같은 직업 가운데 하나가 평론가가 아닐까 싶다. 종종 '벙커1' 팟캐스트를 통해 들었던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53)은 그러나 재미있고 흥미롭게 음악 얘기를 할줄 아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인디영화제작에도 참여하고 많은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면서 다양한 삶을 (자칭)악착같이 살아와선지도 모르겠다. 과음으로 술병을 얻어 요양하면서 공부했다는 와인, 명리학에 대해서도 팟캐스트 강의를 하는 등, 문화예술과 역사에도 두루 밝은 해박한 지식에 재주많은 저자는 자(字)가 ‘산만’이고 호(號)는 ‘의박’(의지박약)이라고 하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책 표지도 저자를 닮아 엉뚱한 색상에 산만한 글자들로 덮여있는 이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저자가 많은 강의를 해오면서 처음으로 쓴 책이다. 출판사 대신 저자가 직접 지었다는 책의 제목이 새삼스럽고 새롭다. 더 이상 삶에 전복과 반전이 불가능한 '헬조선'이라 자조적으로 불리는 신산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생생한 강의를 모아 쓴책이라 문체가 대단히 직설적이고 감각적이다. 음악 평론책이 무색하게 잘 읽힌다. 한국과 서양음악의 결정적 순간들을 특유의 입담과 문체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음악을 공부해야 한다'거나 '음악에 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는 강박에서 자유롭게 느껴지는 책이다.

강헌이 뽑은 음악사의 결정적 순간들은, 재즈와 로큰롤이 등장했던 시기와 한국에 통기타 음악과 밴드 음악이 등장했던 시기, 그리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활동했던 시기,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이 불려졌던 시기에 주목하며 이 순간을 대표적인 전복과 반전의 순간으로 꼽았다.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주석에는 또 하나의 정보가 풍부하게 담겨있다. 요즘은 주석이 많이 달리는 책이 별로 없다. 주석을 풍성하게 달아서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알고 싶은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 저자가 한국 최고의 앨범재킷으로 꼽은 한대수 2집 앨범 


# 시대라는 악보위에 그려진 음표, 음악

수많은 예술중에서 음악만큼 신비화의 추앙을 받은 예술도 없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또한 시행착오의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역사적 생산물 중의 하나일뿐이다 - 본문 가운데 

도발적인 책 제목처럼 음악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들에 대한 전복과 반전의 사유를 시도한 점이 새롭고 신선하다. 예컨대 재즈가 노예의 삶을 살아온 흑인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재즈 음악을 만들어낸 이들 다수가 백인이며, 미국 재즈를 대표하는 루이 암스트롱이 성공한 이면에 백인들의 지배 전략에 순응했던 이력이 자리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10대들이 키운 '로큰롤', 한국에서의 트로트 혁명과 포크음악의 발흥,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위대함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 또한 전복과 반전의 사유를 거쳐 재해석된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저절로 음악을 통해 시대를 읽고 느낄 수 있게 되며, 시대에 비추어 음악을 다르게 듣게 된다. 

저자는 사회와 음악을 참신한 시선으로 꿴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동 모차르트와 악성 베트벤'도 마찬가지다. 모차르트는 궁정에서 권력가들에게 아부하면서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모짜르트가 살던 시대엔 귀족이나 궁정의 후원 없이 음악가로서 독립적인 삶을 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베토벤이 살던 시대는 달랐다. 공화주의자가 유럽 전체를 휩쓸었다. 베토벤은 공개 연주회와 악보 출판을 통해 당시 유럽의 중심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며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첫번째 예술인이었다. 예술가의 업적은 태어난 재능이나 개인의 노력 여부만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씨줄 날줄처럼 엮여있다. 

역사에서의 영웅주의 못지않게 우리는 예술분야의 천재주의 사관에 익숙하다. 익히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가들은 보통 사람과 다르고, 특별한 재능과 소명을 하늘로부터 부여받고 태어났다는 식으로 배웠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정규직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으나 이루지 못했다. 베일 속에 감춰진 예술가의 신비화를 벗기고 민낯을 들여다볼 때 음악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단순히 객석에서 동경의 시선을 가지고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음악 역시 많은 약점을 가진 인간이 몸부림치며 피와 땀으로 만든 노동의 생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같은 인식 속에서 음악은 더 진실 되게 들리지 싶다.


▲ 반성의 의미로 다소곳이 앨범을 만들었지만, 끝까지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은 신중현


신중현은 박정희에게 가장 많은 탄압을 받은 뮤지션이다. 이유는 너무도 약소했다. 박정희가 일제시대 총독부가 행했던 선동 가요를 본받아 정권 선전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래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하려고 신중현에게 의뢰했는데 신중현이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중현은 그 뒤 '대마초 사범 연예인 1호'가 되어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탄압을 받는데 한 마디로 '괘씸죄'였다. 원래 우리나라는 그 때까지 대마초 흡연이 금지되지 않았다. 

박정희의 '복수혈전'으로 비로소 범죄가 된 것이다. 박정희 시절에 이루어졌던 노래 검열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나 김세환의 '길가에 앉아서'가 금지곡이었고 그 이유가 '근로 의욕 저하~'라니. 과연 창조 경제의 전통은 거기서 시작되었나 보다. 검열의 이유들이 참 창조적이다. 하지만 '아침이슬'은 금지된 이유조차 없이 금지되었다. 한 마디로 묻지마 금지곡이었다 - 본문 가운데 

'전복과 반전'은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강헌은 그 기점을 1969년 9월19일로 본다. 남산 드라마센터(옛 서울예전)에서 한 장발 청년이 자신이 만든 톱과 징 등 이상한 악기들을 펼쳐놓고 혼자서 노래를 부른 날이다. 이 청년이 한대수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출현한 첫 싱어송라이터였다. 한대수 공연 닷새 전인 9월14일 대한민국 국회는 3선개헌을 의결하고 박정희 독재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를 남발하며 문화 학살을 시작하는데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 한대수와 신중현이었다.

'청년문화의 기수'한대수의 등장과 박정희의 3선 개헌을 나란히 둠으로써 이후 11년 동안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불행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것. 단순히 군부 독재와 민주주의의 항쟁이 아닌 기성세대 또는 기득권에 대항하는 젊은이들의 투쟁의 역사로 정의한다. 

▲ 박정희 정권시절 유일하게 이유없이 금지된 명곡 '아침이슬'



# 우리에게 모차르트, 베토벤같은 작곡가가 없는 이유 

무엇보다 그의 책을 읽으며 평소에 품었던 한가지 의문을 풀게되어 좋았다. 반만년 역사의 우리나라에도 음악가가 많았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작품이 많지 않다. 19세기 이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한 작곡가는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 서양의 경우 우리보다 인구가 그리 많지도 않은 국가에서도 수많은 작곡가를 찾을 수 있다. 왜일까? 저자에 의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은 아무리 음악을 잘해봐도 신분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음악가들은 사농공상에도 못 들어가는 양천조차 되지 않는 천민이었다. 극히 일부의 시기를 제외하면 아무리 국가에 공훈을 세워도 양민이 될 수 없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 궁내외의 음악을 담당하는 음악가들은 악공(樂工) 내지는 악생(樂生)이라고 불렸다. 이들은 천민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천민이고 그 자식들도 천민이 되었다. - 본문 가운데 

비슷한 처지로 떠오르는 예술가가 도자기를 빚는 도공이다. 일본에선 국보로 대접할 만큼 훌륭한 기술을 가졌으나 사회적 대우가 열악하다보니 도공과 함께 우리의 훌륭한 도자기 문화는 서서히 몰락해갔다.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가 중간계급이었던 서양에서 음악가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즉 현세에 인기를 얻어야 했다. 죽고 난 뒤의 성공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서양음악은 철저하게 경쟁을 통해서 승리를 거두는 욕망을 탑재하게 된다. 만약에 서양의 음악가가 어떻게 해도 계속 하층계급이었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을 때까지 귀족이었다면, 음악을 가지고 세속적인 지위를 얻기 위해서 다툴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해도 자신은 안 되고, 어떻게 해도 자신은 늘 되는데 굳이 다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중간계급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속물적인 성취동기를 끊임없이 부여한다. 저자는 이것이 서양음악이 갖고 있는 경쟁력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 강헌은 수년 째 아이돌 음악이 판치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을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책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음악에는 다양한 얼굴이 들어있다. 상품으로서 많이 팔리고 싶은 욕망과 뭔가 창조적인 가치를 가지고 싶어 하는 예술적 속성이 들어있다. 혹은 사회적 발원이기 때문에 뭔가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욕구도 들어있다. 상품적 요소, 예술적 요소, 사회적 요소가 모여서 대중음악이 만들어진다. 대중음악적으로 가장 훌륭하고 풍요로운 시대는 위 세 가지 요소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출 때였다. 

1960년대 미국이나 1980년대 한국이 그랬다. 상품적으로 굉장히 훌륭하면서 동시에 예술적인 창조성을 가진 음악가들이 있었고, 굉장히 사회적인 의식을 가진 음악도 많이 나왔다. 무척이나 다양하게 공존했다. 지금은 K-POP이 한류를 타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고 있지만, 오로지 상품으로서의 음악만 독주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소수 엔터테인먼트가 모든 걸 다 가지는, 승자 독식의 시대라는 점에서 굉장히 불행한 시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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