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언어 - 나는 왜 찍는가
이상엽 글.사진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취미로 사진을 찍으며 사진 잡지나 모니터로 남들이 찍은 사진들을 감상하다 보니, 같은 카메라로 찍어도 사진에는 찍는 이 혹은 사진가에 따라 여러 종류의 사진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흡사 소설처럼 이야기가 읽혀지는 사진, 한 편의 수필 같은 짧고 굵은 메시지의 사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사진 등··· 이외에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사진, 우리시대의 거울 같은 사진이 있는데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에만 묶이지 않고 진정성이 담긴 기록에 충실할 때 다큐멘터리 사진은 감동과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사진의 예술성은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형성된다.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과 유리되어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특히 인간과 그 삶의 기록에서 벗어나서는 의미를 얻기 어려운 게 사진일 게다.

 

이 책 <최후의 언어-나는 왜 찍는가>는 포토저널리스트이자 우리 시대의 대표적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이상엽이 찍은 100여 컷의 필름사진과 함께 저자의 단상이 담긴 포토 에세이다. 사진으로 현실을 가감 없이 기록하고 이에 의미를 부여하며 최후의 언어인 사진으로 시대의 증언이 되고자 하는 다큐 사진가가 찍고 쓴 책이다 보니, 숙명적으로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사진집이기도 하다.

 

제주 구럼비 해변엔 해군기지 공사장을 따라 서귀포를 향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 있다.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을 세운 이스라엘을 욕하다가 우리 땅에서 이런 풍경을 본다 - 본문 가운데

 

진도 팽목항과 제주 강정마을,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말고도 연평도, 백령도와 새만금에서 해외인 중국 동북성과 동부 연안도시, 실크로드까지…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파괴되어 가는 산과 강, 팍팍한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특히 비가 오는 제주도의 남쪽 강정마을을 찾아 제주가 동북아 분쟁의 전초기지가 될지 평화의 섬으로 남을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라는 저자의 일갈은 독자의 허를 찌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연의 경치들을 무참히 짓밟는 모습들은 곧 '우리'가 자행하고 있는 우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동시대 보통 사람들이 그들더러 개발과 성장의 선봉이 되어달라고 열렬한 얼굴들로 의탁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득이 높다는 울산 그것도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반대를 하는 노동자 2명이 올라가 농성을 하는 높이 45m의 송전탑 사진은 전기가 온 듯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2명(천의봉, 최병승씨)은 이 철탑에서 자그마치 296일간 농성을 벌였다고 하니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정규직 직원들과 똑같이 일을 하고도 말도 안 되는 차별과 대우를 받아야 하는 그 억울함이 얼마나 큰 건지 알 것 같았다. 수많은 방송매체와 언론의 보도보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마주하는 진실은 강력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카메라가 삶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더불어 이 책은 과거의 유물이라고 여겼던 흑백사진의 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물사진에서 실크로드 각 나라의 풍경사진까지… 칼라색감을 배제한 흑백사진은 뭔가 본질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힘을 지녔다. 풍경사진도 그렇고 특히나 사람이 꽉 차게 들어간 사진은 그 사람의 겉모습보다는 표정 속에 숨은 내면에 대해 잠시 생각에 빠지게 한다. 풍경은 풍경대로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느끼게 되고. 디지털 카메라에 흑백사진기능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사진집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형인 전범기업 니콘

 

카메라는 사고하지 못한다. 사고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한다. 하지만 어떤 카메라가 어떤 히스토리를 갖고 내 품에 들어와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가 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다 - 본문 가운데

 

니콘(Nikon) FA, 미놀타(Minolta) CLE, 캐논(canon) 뉴 F-1, 펜탁스 LX, 라이카플렉스(Leicaflex) SL2, 자이스 이콘, 라이카 M4-P, 올림푸스(OLYMPUS) OM4TI, 캐논 EOS-1n, 니콘 F4s, 핫셀블라드 X-Pan, 콘탁스 RTS,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2.8F, 마미야(MAMIYA) 7Ⅱ, 베리와이드(VERIWIDE) 100, 펜탁스 67Ⅱ, 핫셀블라드 500CM과 555ELD 등 이 책에는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까지 저자가 사진가로서 찍어온 무려 18대 카메라의 소소한 역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일본의 유명한 카메라 니콘에 대한 이야기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나 또한 처음 사용해 2년 동안 애지중지 찍고 다녔던 디지털 카메라가 작은 니콘 카메라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니콘 카메라는 TV 광고에도 흔히 나오는, 사진작가를 비롯해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카메라다. 그런 니콘이 전범 기업이었다니. 어릴 적 좋아했던 '우주소년 아톰'과 '마징가 제트'가 실은 일본만화였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회사가 바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를 만들던 대표적인 군산복합체 미쓰비시다. 미쓰비시는 군부를 등에 없고 군수장비를 만들면서  식민지에서 노동자를 강제 징용하며 거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제 징용 당해 일본까지 가서 일한 사람들이 많다. 임금체불과 폭력적인 노동착취로 지금도 법정 소송 중에 있다. 더구나 이들은 현재에도 우익정치인을 후원하고, 극우 매체인 <산케이 신문>을 지원하며, 역사왜곡을 일삼는 극우 집단인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후원하고 있다.   

 

나 또한 저자처럼 니콘이 이 문제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제 새로운 니콘 카메라를 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 사진가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카메라는 단지 사진을 찍는 도구가 아니라 사진가의 정신을 육화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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