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자전거 여행 - 네덜란드, 벨기에, 제주, 오키나와에서 드로잉 여행 2
김혜원 지음 / 씨네21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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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개에게 쫓기기도 하고, 지옥을 맛보게 되는 터널을 지나며, 야영 혹은 캠핑의 낭만을 즐기는 '탐험형'. 그리고 먹고 자고 이동하는 게 쾌적하고 편리한 도시 속을 여행하는 '시티 라이더'형. 후자는 자전거 용어로 '샤방 라이딩'이라고 해 속도나 주행 거리 등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도시를 구석구석 관광하며 돌아다니는 여행 방식이다.  

책 <드로잉 자전거 여행>은 서울 한강과 동네를 오가던 라이더가 처음으로 해외 그것도 유럽의 자전거 타기 좋다고 소문난 도시를 여행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후반부에 제주도와 일본 오키나와도 나오지만 책 속 주요 여행지는 네덜란드와 이웃도시 벨기에의 도시들이다.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의 생업을 십분 살려, 자전거 여행의 에피소드와 도시 풍경을 예술가 특유의 섬세함을 담아 여행기를 그림 에세이로 그려냈다. 만화책 넘기듯이 부담 없이 읽히고 보이는 신선한 느낌의 보기 드문 자전거 여행기다.   

"자전거를 타면 시선이 약간 위로 올라간다. 시야가 조금 달라진 것만으로도 걸으면서 느꼈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느껴진다. 자전거는 내가 지나는 풍경을 멋지게 만들어준다. 일종의 마법 같았다."(본문 가운데)

풍차, 튤립, 히딩크, 반 고흐 외에도 자전거용 신호등까지 따로 있다 보니 유럽의 자전거 수도라는 별명을 가진 암스테르담, 현대 건축의 각축장으로 불리는 로테르담,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이 된 그림 같은 도시 안트워프, 서유럽의 숨은 보석 브뤼셀…. 차도 옆엔 반드시 자전거 도로가 붙어 있는 이 국가들과 도시들은 왕래가 자유롭고, 자전거 싣기 편한 버스나 기차로 이동할 수 있어 긴 일정이 아니어도 한결 풍성한 자전거 도시 여행을 할 수 있다. 

다른 유럽 도시들과 달리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엔 옛 건축물이 전무한 이유, 1800년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아 잔혹한 짓을 서슴지 않으며 수탈하면서 부를 축적한 벨기에의 흑역사 등 생소한, 하지만 전혀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유럽의 근현대사 이야기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특히, 유럽 자전거족들도 한국 라이더들처럼 흔히 '쫄쫄이' 바지를 입고 다닐까 궁금했었는데 의문은 책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레 풀렸다. 유럽에도 쫄쫄이를 세트로 입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지 않게 보인다. 다만 일상복을 입은 라이더가 훨씬 많이 보이는 건 일상 속 자전거 문화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흔하기 때문이었다.
      
시티 라이더답게 저자는 도시의 각종 박물관, 갤러리, 카페, 시민들이 모여 쉬고 있는 공원 등을 바퀴가 조금 작은 미니벨로 자전거를 타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성당이나 미술관, 기차역 같은 공공건물까지 저자가 사진과 일러스트를 섞어 그려낸 도시의 건축물들이 인상적이었다.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옛 건물부터 개성과 창의, 실용성이 잘 구현된 현대의 일상적인 건축물들까지. 예술성과 함께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겨 여행심을 한껏 돋궜다.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그런 건물들 일색으로, 어느 도시를 가나 비슷비슷한 풍경이 펼쳐지는 한국의 도시 여행은 별 인기가 없다. 지자체에서 공들여 만든 '걷고 싶은 거리'가 도심 곳곳에 있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들엔 저자가 유럽의 도시에서 느꼈던 '도시의 감수성' 이라는 매력이 아직 부족한 듯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여행서를 펴내는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의 말마따나 "무엇도 영원한 것 없이 쓰러져 가는 것들로 가득 한 좌충우돌의 도시"에 사는 내겐 부럽고 아쉬운 부분이다.  

"2008년 첫 자전거로 미니벨로를 구입한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홍제천을 달렸고, '길을 달리다보니 한강이 나타났고, 그저 페달만 굴렀는데 어느새 분당에 와 있었다'고 돌이켰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동네 라이더'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9박 10일의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본문 가운데)

책을 펼치면 자전거 바퀴 같은 크고 동그란 안경을 쓴 귀여운 저자를 따라서 자전거 타기 좋다고 소문난 유럽의 도시 속으로 따라가게 된다. 여행지에서 방문한 명소들을 찍은 사진도 소개돼 있지만, 본인의 캐릭터와 함께 저자가 직접 그림으로 옮겨 그린 지도 및 자전거 여행 팁 그리고 그녀가 느꼈던 여행지에 대한 감성에 대해서도 한눈에 보기 편하게 나와 있다. 

여성 혼자서 용기 있게 감행한 발랄하고 당찬 여행자의 때론 재미있고 때론 가슴 벅찬 여행 일기는 이동, 숙박, 식사 등 여행지에 대한 세세한 정보들도 놓치지 않고 담고 있다. 후일 유럽 도시를 자전거타고 구석구석 여행하고 싶은 내게도 좋은 가이드가 됐다.

만화와 사진과 에세이가 이끄는 보기 드문 여행기라 피식 피식 웃으며 책장 넘기는 재미가 좋은데 실용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 특히 저자가 발로 달려가 경험한 곳곳을 일일이 손으로 그린 암스테르담 약도는 네덜란드에 갈 때 필수 지참물이 될 듯싶다. 

직접 본인의 자전거를 수하물로 부쳐서 항공기에 싣고 가는 과정과 주의할 점을 그림과 사진으로 상세히 보여주고 있는 페이지도 사소하지만 자전거 여행을 떠나려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 초보 동네 라이더에게도 정말 애마 자전거를 데리고 멀리 여행을 떠나 가보고 싶게 만들어 주는 '유럽 자전거 여행 유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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