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데이비드 H. 프리드먼 지음, 안종희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제가 예상했던 주가 추세는 장기적 투자 차원에서의 관점으로는 유효한 분석으로 보입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 투자 유지 혹은 추가 매수를 권유해 나같은 많은 주식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던 어느 재벌 그룹 계열 증권사의 유명 애널리스트가 얼마 전 TV 뉴스에 나와 말한 변명 아닌 변명이다. 그같은 전문가들이 신봉하다시피하는 미국의 거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나 S&P도 금융위기 직전까지 AIG 같은 부실덩어리의 금융기업들에게 최고의 평가 점수인 AAA를 주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일반 시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상청에서부터 의사, 펀드 매니저, 변호사 등현대문명은 전문가들의 조언과 지식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한다. 그렇기에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이 잘못된 조언, 연구 발표를 하거나 의도적인 거짓말을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공공의 적'과 다름없다.  

최근에 벌어지는 약사와 의사들, 경찰과 검사들 간의 상호 주장과 대립, 4대강 개발 사업의 효과와 부작용을 둘러싸고 최고의 전문가라고 하는 학자들이 펼치는 정반대의 주장을 보노라면,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파장과 논란을 일으키는 쟁점을 둘러싸고 서로 상반되는 견해를 내놓는 소위 전문가 혹은 권위자라는 이들의 말을 도대체 믿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기만 한다.  

과학과 기업 분야의 저술가인 저자는 이 책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를 통해 다수의 여론에 의한 것이 아닌 사실과 증거에 의해 입증되는 과학 분야조차도 '과학적 논란'이라는 이름의 오류와 의도적 조작이 횡행함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책의 초입부부터 일일이 사례를 들며 전문가란 사람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맛보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이 '수상한 전문가들'을 사기꾼으로 몰기보다는 왜 전문가들이 오류에 빠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더 신뢰할 만한 전문 조언을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다루고 있다.   


오류와 모순 그리고 거짓말... 수상한 전문가들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유명 과학 저널에 게재되는 논문의 3분의 2가 엉터리다. 의사들은 6번에 1번 꼴로 오진을 한고 오진의 약 절반 가량은 '실제적인 피해'를 가져온다. 시장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확신하며 특정 금융 상품을 권유하는 재테크 전문가들은 평균 이상의 수익을 올린 적이 별로 없다 - 본문 가운데 

날씨를 잘못 예측하여 비를 쫄딱 맞게도 하는 기상청의 뉴스부터 전문가들의 엉터리 진단은 의학을 비롯해 첨단과학, 금융전문가, 여론기관 등 다양하기도 하다. 사실 이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빠지는 것은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오류'나 '모순'인 경우이고, 정말로 심각한 것은 그들의 의도적인 거짓말이다. 그것이 불특정 다수 국민들의 삶이나 국가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과학, 특히 의학 분야의 연구 논문이 제약회사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의학 이외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도 승진이나 연구비를 타기 위해 정부나 기업의 '유령 저자'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리 자료, 잘못된 자료 측정, 원하지 않는 자료 폐기, 교란 변수 제거, 통계 조작 등의 방법을 이용해 얼마든지 정부와 기업이 원하는 연구 결과를 만들어낸다.

우리나라에도 천안함 사고, 4대강 개발사업의 경제적 효과, 원전의 안전성 문제 등에서 자신의 이익과 권력에 부역하는 수상한 전문가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이 책에 나오는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들이다. 이런 거짓 전문가들의 역사는 오래된 것이어서 소설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지식인들은 권력의 노예, 미디어의 노예들이라며 "지식인들은 잘 훈련된 똥개"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왜 그들에게 번번이 속을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오즈의 마법사 효과' 탓이 크다. 우리는 부모, 선생님 등 세상에는 우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며, 그들의 말은 무엇이든 옳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탓이다. 여기에 전문가들은 문제를 단순화하거나 만병통치 처방을 강조하는 등 솔깃한 제안을 할 줄 안다 - 본문 가운데  

저자는 사람들이 전문가의 조언에서 기대하는 특징을 명쾌함, 확실성, 보편성, 낙관성, 실행가능성, 파격적인 주장 등으로 요약한다. 현실은 다양한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명쾌한 답을 확실하게 내놓으라는 강박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들도 이런 요구에 휘둘리기 쉽다. 

일반인들도 전문가들의 주장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면서 어떤 치료법이나 재테크가 좋다는 말에 쉽게 현혹된다. 원 푸드(One Food) 다이어트로 빠르게 살을 빼준다는 비만 전문가가 인기이고, 주택가격이 바닥이기 때문에 집을 살 적기라고 확신을 심어주는 부동산 전문가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항상 그들을 쫓아가게 되는가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전문가들의 거짓말에 덜 속을 수 있을까. 저자는 단순하고 확정적인 전문지식, 특히 단 한 건의 연구에 근거를 두었거나 놀랍도록 획기적인 연구 결과는 더욱 경계심을 갖고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시면 수명이 늘어난다' 거나 '수면시간이 6시간 이하인 사람은 비만이 되기 쉽다'는 식의 연구 결과는 여러 요인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인과관계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집단적 사고의 위험성 

요즘 전문가들은 혼자가 아니라 대학과 병원, 기업, 정부 기관 등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을 받는다. 집단은 편견을 증폭시키고, 소수의 관점을 무시한 채 다수의 관점을 밀어붙인다.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두고 로버트 쉴러, 누리엘 루비니 등 소수의 전문가가 주택 가격 거품에 대해 지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 시스템이 탄탄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말에 익숙해져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도 집단 사고의 한 예이다 - 본문 가운데 

저자는 집단적 사고가 사회에 끼치는 불행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으로 과학적인 마인드를 가진 프로페셔널리즘(전문가 정신)이라고 말한다. 과학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절차를 따르지 않으며, 다수의 여론에 의해 과학적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과학적 근거에 의해 입증되는가 아닌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 정부 당국이 먼저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해 일반인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게 한다면 잘못된 여론에 의한 위험성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이 왜 틀리는지 6가지 요인을 들었다. 편견과 부패, 비합리적인 사고, 청중에 대한 고려, 능력 부족, 감독의 부재, 자동적인 반응…. 전문가 실패의 전형적인 패턴들을 상세히 풀어낸다. 더불어 무시해도 좋은 전문가 조언의 특징 7가지, 신뢰도가 더 높은 전문지식의 특징 7가지 등이 알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  

책 속 부록에 나오는 오류, 모순, 혼란이 드러난 전문지식의 사례들도 재미있게 읽힌다. '휴대폰에서 해로운 전자파가 발생하는가' '옥수수에서 추출한 바이오 연료는 환경에 도움을 주는가' '운동할 때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할까' '멋진 남자가 연애하기에 좋을까?'….

우리에겐 부끄러운 사건이지만 몇 해 전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연구를 조작했던 사례도 책에 나온다. 지은이가 우려한 집단적 사고의 위험성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황우석 박사의 복제 연구가 조작되었음이 명백히 밝혀졌는데도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그를 지지하는 집단 서명운동까지 벌였던 우리. 책의 말미에 수상한 전문가들을 대하는 현대인의 가장 올바른 태도로 맹목적 추종을 피하라는 조언이 있다. 한마디로 '맹추'가 되지 말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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