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모르는 엔딩 사계절 1318 문고 116
최영희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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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사실 나는 어떤 별의 최후의 생존자고 외계인들이 나를 실험하기 위해 가상의 지구를 만들어서 날 실험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배우기 힘든 언어인 영어를 이렇게도 가르쳐보고 저렇게도 가르쳐보면서 사실은 내가 외계인의 언어를 배울 수 있을지 없을지 알아본다던가 이런 운동 저런 운동 시켜보면서 내가 나중에 반란군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점쳐본다던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말이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그렇게 하기 힘든 공부든 운동이든 "내가 외계인이 바라는 대로 호락호락 해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청소년의 일상에 약간의 외계인을 끼얹은.

삼선 실내화가 뭐라고 거기에 지구의 운명이 걸려있고, 지나가는 아주머니들 대화 한마디로 대한민국 중딩은 외계인을 위협하는 최종병기로 오해받는다. 아니 뭐 별 게 다 외계인이다 싶은 이런 설정들이 넘실대는데 너무 엉뚱해서 유쾌하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설정을 빼고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중학생의 일상들이라 묘하게 현실적이면서 또 묘하게 비현실적이다. 처음에는 갑자기 여기서 외계인이요? 하는 마음도 들지만, 세 번째 단편을 읽을 때 쯤이면 어디서 외계인이, 혹은 외계인의 물건이 나와도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갈 지경이 된다.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한참이 걸리는 SF와는 달리 세계관은 단 하나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에 온갖 외계인들이 오고가고 살고 있다는 것. 외계인은 허무맹랑한데 너무 자연스러운 지리적 배경과 지구인들이 너무 낯이 익어 외계인쯤은 자연스러워지는 이상한 설정이다. 누가 읽어도 어렵게 읽한다던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드라마에도 백 번쯤 나왔고, 실제로도 그랬다더라는 얘기도 한 오십 번쯤 들었지만,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는 한 삼십 번쯤 들은 어렸을 때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소재는 너무 흔한 얘긴데, 거기에 외계인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그 외계인은 물파스 냄새에 반해서 지구에 정착했다고 한다. 별. 정말 별 시덥지 않은 다른 별나라 얘기가 여기 있다. 그런데 그런 시덥지 않은 이유로 정착한 외계인이 하는 말은 너무 고차원적이다. 다중우주론에 기반해 미래를 설계해주겠다. 이 말을 들은 호재는 미래를 주문해본다. 그러다 '아내'에 대해 고민한다. "이민아랑 결혼할 확률을 제로로 만들어주세요!" 호재는 민아와 결혼하지 않게 되는 우주를 만날 수 있을까? '너만 모르는 엔딩'에서 호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민아가 있는 우주로 몰아가리라 다짐한다. 이미 운명이 결정되어버렸다는 것을 모르는 '민아'만 모르는 엔딩일까 아니면 어떤 우주로 몰아가게 될 지 모르는 '호재'도 모르는 엔딩일까

외계인이 만들어놓은 이상한 규칙 속에서 지구를, 혹은 좋아하는 사람을, 혹은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주인공들이 귀엽고 기대되는 것은 그런 주인공들이 보통의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실 지구는 이런 이유로 잘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외계인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파란별 지구를 지키는 것은 미국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고, 외계인이 굳이 나타나서 해코지를 하지 않더라도 지구가 잘 굴러가고 있는 건 바로 우리가 지구를 잘 지키고 있어서다.

민아네 엄마가 손님에게 핫도그를 건네고 있었다. 가게 안 쪽에 민아의 사진이 걸려 있어다. 사각모를 쓰고 망토를 두른, 유치원 졸업 사진이었다. 이 세계의 민아는, 딱 저 나이 때부터 호재와 멀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홉 씨 말대로 호재는 그대로였다. 얻구한 골목에서 호재를 구하겠다고 휴대폰을 치켜들던 민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극장에서 연예인을 봤다면 콩콩 뛰던 못브도 잘 새겨 두었다. 앞으로 온갖 가능성의 분기점들이 펼쳐지겠지만 호재는 민아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호재는 사진 속 민아와 눈을 맞추었다.
지켜봐.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있는 곳으로 우주를 몰아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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