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호구들을 위한 따뜻한 조언을 담은 책

호구의 탄생 - 호구력 만렙이 쓴 신랄한 자기분석
조정아 지음 / 행복에너지 / 2023년 3월

나는 근래에 오래 지속해왔지만, 건강하지 못했던 인간관계를 하나 청산했었다. 그 인간관계에서 나는 상대를 위한답시고 호구를 자처했었다. 그러나 호구 짓을 반복할수록 상대는 나에게 감사하거나 보답하기는커녕,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내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상대에게는 내가 도움을 줄 만큼 여유롭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 아니었다. 나는 상처받고 질렸으며 분노가 쌓였고 나아가 상대를 온전히 품어주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자괴감에 빠지기까지 했다.

물론 당시로부터 시간이 좀 지났을 때는 그럴만했다고 여기게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후회가 남아 찝찝했다. 그러던 중 리뷰어스 클럽에서 <호구의 탄생> 서평단 모집 게시글을 발견했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 '호구'라는 표현을 많이 썼기에 저절로 게시글에 눈이 갔다. 책 소개글을 살펴보니 내가 읽으면 참 공감되고 위로가 되겠다 싶어 서평단을 신청했다.

<호구의 탄생>은 토끼처럼 온순한 호구의 특성을 살린 귀여운 토끼 캐릭터 일러스트와 함께 구체적인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호구인지, 그들을 호구 취급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호구가 호구에서 탈출하고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소개한다. 영어 알파벳을 딴 A씨부터 시작하는 익명의 사례들은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 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TV 프로그램들에서. 그 이야기에는 보통 망발(?)을 부리는 사람과 그 망발에 다치는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치는 피해자가 호구일 때가 많다.

친숙하고 구체적인 사례 덕분에 빠르게 책을 읽어내려갔다. 더불어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 많은 이가 사례 속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특별히 가족주의, 정 문화, 공동체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착하고 정이 많으며 남을 잘 돕는 사람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일 뿐, 요즘은 그런 인간상이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특별히 호구가 더 많을 것 같다. 그들 모두에게 이 책은 위로이자 따뜻한 조언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구성 면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먼저 드라마에서 인용한 대사가 자주 나온다는 것이다. 저자가 드라마를 공부해서 그런지 장마다 정말 딱 어울릴 만한 대사를 쏙쏙 뽑아서 붙여놓으셨다. 특히 <더 글로리>에서 나오는 문동은(송혜교 역)의 "대체 니들은 날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라는 대사는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찡하다. 호구를 노리는 이들은 정말 호구를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이용하고 괴롭힌다.

구성 면에서 특이한 점 또 한 가지는 인간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다양한 심리학 용어를 소개한다는 점이다. 꼭 호구와 관련된 용어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짧게 소개된 글을 읽다 보면 사람의 좋은 면만 보려는 호구 중 하나(?)로서 경각심이 들기도 했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자기자신을 잘 포장하고 교묘하게 진짜 모습을 숨기고 남을 이용하려드는 사람이 많았다. 또 자기를 너무 낮추다 못해 상처 입히는 호구들도 많다. 이렇게 사람을 알아가면 호구에서는 탈출하되, 내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책의 대략적인 소개가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심리학자 앨버트 앨리스의 비합리적인 신념이다. 이 신념에 빠지면 특별히 호구는 더 좌절하게 된다고 하는데, 어디선가 들었던 내용을 또 한 번 상기해주어 좋았다.

건강한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완벽주의가 심해서 실패할 것 같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드는 내게 이 구절은 큰 위로가 되었고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단계별 분노, 즉 척도법을 통해 분노하라는 조언은 매우 실용적이라고 느꼈다. 0과 100으로 나눈 분노는 분노하는 당사자에게도 상대에게도 나쁘다는 말에 백번 공감됐다. 더불어 나도 화낼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함을 배웠다. 정말 그렇다. 아무리 나라도 화를 낼 만할 때는 화를 낼 수 있고 그걸로 자책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분노에 대한 이야기다. 책 전반적으로 너무 참기만 해서 탈이 난 호구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지 참지 않고 분노를 건강하게 표출하라는 조언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저자는 화를 품고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한다. 나도 분노를 잘 조절하고 지혜롭게 표현하고 분노하는 행위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언젠가는 호구 딱지를 뗄 수 있을 테니까.

<호구의 탄생>은 아래와 같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칭 또는 타칭 호구인 사람

타인 때문에 손해 보는 사람

참는 게 능사라고 믿는 사람

자기가 호구이거나 혹은 호구인지 의심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어보면 호구 여부를 감별(?)할 수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착해빠진 탓에 손해를 봤고 그것을 당연시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호구의 탄생>을 읽고 호구가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을 알았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호구가 아니라 마음이 건강해서 거절도 분노 표현도 잘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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