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개정판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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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너구리가 기지개 켜듯 여유 있게 살아보자



세상의 모든 동기부여자기계발 책자와 삶의 긍정적 의미를 전달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자 or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구로 시작해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법칙을 설명한다.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마음대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영화 <보이후드>처럼 상황과 환경,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함께 하다 보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맨 처음부터 대충 주의는 아니었지만, 인생이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뼈아프게 느꼈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다가 제대로 시도해 보지 못하거나, 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치거나, 큰 기회를 앞두고 크고 작은 개인사가 한꺼번에 다가와서 숨 가쁘게 흘러가더라.

그 이후부터는 완벽이라는 나사 하나를 빼고, 차라리 계획 없이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로 변경한 요즘이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너무 열심히 살아간다.

멍 때리는 시간이 줄어든 요즘, 멍 때리기가 그리워진다. 가끔 카페 가면 예쁜 카페 디저트를 찍고, 수다 수다하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고양이과 인간에게 딴짓할 새 없이 크 바쁜 시기는 힘겹다.




 


 

소녀 같은 사노 요코 작가님, 

2016년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의 개정판인 이번 책.



 


 

작가님의 팬이 되어버린 책들



그러다가 우연히 읽게 되었던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의 첫 문구는 굉장히 강하게 다가왔고, 공감 갔다.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이라니, 대충대충 그린 낙서 같은 표지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사는 게 뭐라고 - 마음산책



이후 다음 책이었던 <죽는 게 뭐라고>,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이라니,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살아있다> 이 문장이 굉장히 강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모두들 열심히 사는 무한 경쟁 시대, 특정 나이 이후로 나는 묘하게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소외감을 느꼈다. 비단 나만의 소외가 아니었다. 함께 살고 계시는 부모님도, 자연스럽게 함께 소외되어갔다.

또래분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릴 수가 없었고, 나도 그러했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5월 8일 부모님과 함께 오래간만에 외식을 하면서 배경음악으로 깔렸던 여행 스케치의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야"의 가사를 생각하면서 읽었던 책이었다. 뭔가를 놓는 심정으로 읽게 된 책이었다면 이해가 갈까? 더군다나 이 책은 2016년판의 개정판이라는데, 서평 기간이 무려 한 달이었다. 의도했던 건 아니었지만, 제목처럼 열심히 읽지 않게 되었고, 간간이 편안하게 읽었던 책이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여행스케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 자체에서 오는 느낌이 있다. 단호함과 유연함이 축약된 문장이랄까? 선언하지도, 강요하지 않는 문장에서 오는 삶의 자유로움과 깊이가 느껴진다.

그래서인가, 사노 요코의 수필들을 읽으면, 솔직함에서 오는 사이다 감정과 문장 너머에 담겨있는 삶의 깊이로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생생한 감정과 재치 있는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녀가 아동문학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였다는 점들이 나타난다. 아동문학을 하기 위해서 약간의 재치가 필요하다고 했던 로알드 달의 말처럼, 사노 요코의 문장에서는 숨겨진 그녀만의 재미가 숨어있다.





 


사노 요코의 책 속 제목들조차 재미가 한가득이다.

<소녀소설은 인류에게 무엇을 했나>를 읽으면서, 한때 잠시 그런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친구들이 재밌다고 해서 읽었던 다락방 시리즈, 이후 그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에 잠시 푹 빠져서 읽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읽어선 안되는 소설 같지만, 당시엔 큰 유행이었다. 소녀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작가는 자신에게 미친 영향과 무심코 생긴 콤플렉스를 이어서 이야기한다. 연애란 완벽한 선남선녀가 만나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작가가 그럴 기회가 생겼을 때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호기심 유발을 하면서, 자신의 치부나 콤플렉스조차도 유머로 승화시키기에 사노 요코의 문장들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확고한 탐미주의자의 시선이 담긴 그녀의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같은 탐미주의자로 공감 간다.

엄마와 동시대를 살아간 것 같은 그녀의 문장에서, 엄마의 시크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에 비해 많이 극단적이지만, 동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이 깔려있다. 특히 결혼하고도 아빠 앞에서 방귀를 뀐다거나, 화장실 볼일은 조심스럽게 보셨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래 문장이 참 잘 와닿는다. 배우와 연애에 대한 환상, 사실 한번 해보면 와장창 무너지기 마련인데 말이다.



예를 들어 그레타 가르보나 비비안 리는 쉬나 응가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영화라는 별세계가 이 세상과 따로 있었다.

나는 연애란 것이 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키스란, 이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미인이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남자하고만 거행하는 특별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에게 연애는 키스에서 멈추는 것이었고, 키스가 연애의 최종 목적이었다.

옛날 영화는 그 이상의 것을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영화는 해피엔딩이거나 비극적 결말, 이 두 가지 결말밖에 없었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사노 요코의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봤던 건 그녀의 영화를 보는 시선이었다. 미의 기준에 절대 맞지 않는 남자 더스틴 호프만, 따지자면 단역 배우 여야 하는 그가 영화의 세상의 중심인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그런 세상을 허락할 수 있는 모습을 느꼈다고 말하는 작가. 선남선녀 말고 다른 사람들도 존재하고 분명 그들만의 로맨스도 존재한다. 요즘은 오히려 성소수자들의 연애를 현실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더 각광받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몇 달 전에 재미나게 본 <라쇼몽>과 정말 좋아하는 영화<E.T.>에 대한 그녀의 감상들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특히 <라쇼몽>하면, 생선 비린내와 에티오피아에서 나온 애가 떠오른다니, 영화는 정말 첫인상이 중요한가 보다. <E.T.>는 역시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셨다. 확실히 어릴 때 보던 감상과 성인이 되어서 달라지는 영화에 대한 느낌이 있다.




 




리얼리즘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정에 대해서 적어내린 감상기를 읽다 보면, 함께 마음이 깊어진 기분이다. 영화를 볼 때, 현실에 가까울수록 감정 이입하기가 쉬워서, 영화 본 뒤 힘들어질 때도 있지만, 좀 쉬고 다시 보면 또 다르게 다가온다.


해피 엔딩과 비극, 그리고 그 어느 쪽도 아닌 것. 

그 어느 쪽도 아닌 것은 대개 영화의 시작과 끝이 별 차이가 없다.

그런 걸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걸까? 왠지 내 이야기 같아서 힘없이 영화관을 나오는데, 

인생의 맛이 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적은 건 아닐까 싶지만, 책을 읽고 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배우 윤여정.


‘윤며든다’라는 유행어를 퍼트리게 하고 자신을 롤 모델로 삼지 말고, 자신답게 살아가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선생님의 명언을 남겨본다.



롤 모델이 왜 필요해. 

나는 나같이 살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지혜가 생기고 실수가 잦아들지만, 

여전히 처음 살아보는 오늘이니 완벽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


윤여정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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