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 - 나사의 회전 외 7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1
헨리 제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르누아르의 파스텔화와 제법 잘 어울리는 헨리 제임스 단편집. 

습작인 그림은 뭐라 규정할 수 없는 헨리 제임스 작품들과 제법 닮아있다.


예전엔 전집이 집에 있어서인지, 유럽의 고전문학을 참 많이 읽었었다. 
하지만 읽기 쉬운 요즘 책들을 읽다가 영문학에서는 고전 중에 고전으로 손꼽는 헨리 제임스의 책을 오래간만에 읽게 되니, 결코 쉽게 읽히지 않았다. 
단편집이라지만, 600페이지를 압박하는 두께에, 단편을 중편으로 중편을 장편으로 느끼게 하는 빽빽한 글자들과 내용들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헨리 제임스를 알아간다는 건, 일종의 도전이 되어 버렸다.


젊은 시절의 헨리 제임스는 꽤나 미청년이었는데, 저렇게 변해버렸다.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는 그.


평생 미혼으로 살아갔고, 심리학 교수로 명성을 날린 형의 그늘 안에서 당대에는 소설가로 인정받지 못하며 살았던 헨리 제임스의 생애는 그의 소설만큼이나 난해하다. 특히 병약하고 소심했다던 젊은 시절과 신경쇠약으로 평생 결혼하지 못했던 여동생 앨리스, 그를 스쳐갔던 몇 명의 여인들 모두 그의 소설 속에서 읽어볼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을 굳이 읽지 않아도 영국 드라마 중 시대극을 좋아했기 때문에, 단골로 리메이크되는 나사의 회전만큼은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많은 작품들이 영상화되었다.


워싱턴 스퀘어, 러브 템테이션, 도브


제인 캠피온 감독의 여인의 초상, 대안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메이지는 알고 있어, 영화 후반작업 중인 아스팬 문서


21세기에 20세기의 문학을 읽는다는 건 참 흥미롭다.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대다수 남자 주인공의 행동은 신사다운 듯 적어놓았으나, 우유부단하거나, 적절치 못하거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관망하고 있는 게 전부이다. 
한마디로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혹은 모태솔로의 마음속을 그린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그 시대의 미학이었던 것일까?
실제 헨리 제임스의 상황도 별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특히 네 번의 만남과 데이지 밀러, 정글 속 짐승은 다분히 개인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자유분방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데이지 밀러는 당시 시점으로 그렇게나 파격적이었나 보다.

그녀에게 매력은 느끼지만, 그런 그녀가 무례하다고 하는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는 남자 주인공.


여성은 아름다워도 무지한 존재, 매력적이면서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까다롭고 요구 조건이 많다고 비하한다. 상대방의 상황을 먼저 생각해주기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널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왜 이런 나에게 모질게 대하니라는 생각은 참 지질하다.
문장과 묘사력은 아름답지만, 실상은 지질하기 그지없는 남자들의 속마음 이야기들.
20세기 상류층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대체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제약이 느껴졌다. 
그나마 다른 대륙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에서조차. 


애매하고 불편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아주 일품인 헨리 제임스의 작품.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 제임스 책은 참 흥미롭다. 
작품마다 어떤 관점에서 읽냐에 따라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데, 이건 의식의 흐름에 따른 영화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 나사의 회전은 리메이크가 그리 많이 되나 보다. 


나사의 회전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 이노센트, 디 아더스, 인어 다크 플레이스 모두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에 각색된 작품들이다.


콜린 퍼스 나오는 bbc 드라마판 나사의 회전


2009년도 크리스마스에 각색된 작품인 bbc 드라마. 

원작과 달리 많은 부분이 각색된 작품이다.


원서 자체가 애매하게 쓰여있는 것인지, 번역이 되어도 역시 뜻이 분명치 않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대다수가 관점에 따라서 모두 다른 해석이 가능한지라 영화로 따지자면 열린 결말 수준의 떡밥이 여기저기 깔려있는데, 그걸 모두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특히 나사의 회전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과연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논란이 가장 활발하다.
일단 소설의 시작은 자신이 좋아했던 가정교사가 남겼던 기록을 40년 뒤에 공개한 내용인데, 작품을 다 읽고 나면 혼돈이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시골에 아이들과 함께 고립된 가정교사의 히스테릭인 건가.
아니면 정말 유령이 나타난 것인가.
유령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불안처럼 심어주면서 점차 무섭게 변해가는 내용인 것인가. 아니면 영악한 아이들이 그렇게 상황을 몰아가는 것인지. 
마일스와 가정교사와의 관계는? 미묘하게 느껴지는 아이들 간의 관계는? 
의문점은 작품을 읽을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초반에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후반부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후반부를 보고 나면, 대략 난감해진다.


이 부분과 몇몇 부분을 읽다 보면, 미묘한 느낌이 든다. 

마일스와 선생님 간의 관계는 과연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는지.


한국 영화 올가미에서나 볼 것 같은 선생님의 소년에 대한 집착일까, 

유령에게 홀린 소년을 구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품을 읽다 보면 거대한 혼돈의 카오스에 휩쓸리게 된다.
그래서 반복해서 읽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마치 헨리 제임스의 연약하고 섬세하지만 미청년이었던 모습과 괴팍해 보이는 모습의 늙은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듯이 말이다.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여자 주인공을 살펴보는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이성적으로 사모한다는 마음보다 관찰자의 태도가 더 큰 느낌이 든다. 또한 여성의 심리상태를 상당히 섬세하게 표현해냈는데, 점차 타들어가는 불안한 심리묘사에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이렇게 비 오기 직전의 으스스한 날에 읽으면 나도 모르게 전율이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의 심리 묘사, 유럽적인 것과 미국적인 것에 대한 갈등, 상류사회의 허상과 위선에 대한 풍자, 죽음이 늘 가까이하는 상황은 당시 그가 느꼈던 아웃사이더의 감정의 산물이다.
알 듯 모를 듯한 그의 작품 세계는 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같다.
으스스한 비 오는 날 밤 나사의 회전을 읽어보자. 
노년의 헨리 제임스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압박감과 긴장감이 조여올 것이다.
마치 가위눌린 것처럼.

헨리 제임스.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두통 유발자인 남자. 
한동안 멀리해야겠다.
그래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작가이기에, 개봉 예정인 아스팬 문서와 현대적으로 또 리메이크되는 나사의 회전의 영상화를 기대해본다.

*보너스 - 나사의 회전 2009년 BBC 드라마판. 
다운튼애비로 유명한 미셀 도커리와 댄 스티븐슨 커플이 같이 등장하고 배경도 왠지 1차 세계대전 이후로 바뀌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한 때 가정교사였던 앤의 이야기를 의사인 댄 스티븐슨이 들으면서 시작된다. 


잘 생긴 의사와 어여쁜 환자의 만남.

아직은 어리고 순진한 20대의 가정교사가 시골 저택에서 매력적인 두 아이와 함께 고립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집안의 사람들은 과거에 대해서 쉬쉬하고, 가정교사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읽게 된다. 과연 그것은 그녀의 망상일까 진실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