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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평점 :
오랜만이었다. 글을 읽으며 그렇게 웃어 제꼈던 것은.
사실 이 책은 알라딘에서 하는 반값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만나볼 수 없는 책이었다.
‘다빈치 코드’ 이후 외국 서적을 멀리 하게 된 나에게 일본작가의 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일의 반값도서라고 창만 띄워 놓고는 기실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알라딘측의 말에 좀 화가 난 상태였다. 하지만, 책값으로 솔찬히 돈이 나가는 나로서는 재밌다는 댓글이 무지하게 많이 이 소설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고집까지 생긴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그 유명한, 읽어보진 않았지만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날린 것으로 익히 알고 있는 ‘공중그네’의 저자였다. 뭐 나머지는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패쓰.
하지만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최완규 작가가 말하는 우리 나라엔 없는 진정한 대중소설이 바로 이런 책이 아닌가 하는… ^^
남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요상한 아버지를 둔 아들 지로. 상급생에게 각종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괴로워 죽겠는데, 어느 날, 집에 식객으로 들어온 아키라라는 아버지 후배가 하는 일에 도움을 주다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충격에 휩싸인다. 출판도 되지 않는 소설 나부랭이나 쓰고, 코 파는 걸 주 전문으로 하며 집에서 무위도식하는 그런 아버지가 과거 20년 전, 이름 꽤나 날렸던 공산당원이었다니! 그 동안 지로가 봐 왔던 아버지는 도저히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국민연금 가입을 압박하러 온 공무원의 혼을 쏙 빼 놓는 말빨, 졸업여행비가 터무니 없이 비싸다며 바로 교장실로 직행해 버리는 자극적?인 행동, 타고난 덩치를 이용, 마음에 안 드는 이는 제 맘대로 집어 던지는 과격함까지.. 지로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고역이었다.
하지만, 그건 약과였다. 그의 아버지는 오끼나와 출신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전설 속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리오모테의 자손이며, 할아버지 때부터 그 쪽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영웅 집안이었던 것이다. 지로는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남쪽’의 섬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신이 그토록 창피해 하던 아버지의 진정한 실체와 만나게 되면서 행복해 지기 시작한다.
책장을 덮으며 ‘참~~일본인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지로의 아버지 우헤하라는 앞에서 말했듯이 한 유명한 영웅의 자손이다. 전설 속에도 등장하고, 실제로 할아버지가 인두세를 거부하며 투쟁했던 집안의 내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본인 자신도 미군부대로 잠입, 미 전투기에 불을 당기는 무모한 짓까지 서슴지 않았었다. 그 모든 것이 전설의 내용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행동이었다. 게다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다른 행동단체와 협력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독자적으로 일을 이끌어 나간다. 게다가 오키나와 출신으로 만들어서 우헤하라가 영웅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면 오키나와는 어떤 곳인가? 오키나와는 예전부터 일본 본섬과 다른 류쿠왕국이란 이름을 가진 독립적인 국가였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일본 본섬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이후 국토의 30%이상을 미군에게 넘겨준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이런 곳에 우헤하라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도 모자랐던 것인가? 섬을 개발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우헤하라의 행동에도 섬 주민들은 심적으로만 동요할 뿐 절대 나서지 않는다. 다수가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 튀기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여기서 보게 된다. 혁명은 개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라며 우헤하라는 영웅이 직접 영웅적인 행동을 보이는 대도 사람들은 그저 동요만할 뿐이다. 가슴으로 느끼면, 행동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던 나 같은 사람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너무도 영웅적이기에 영웅적인 결말을 원했는지도… 하지만, 우헤하라네 집안 사람 누구도 그것을 서운해하거나 이상히 생각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우헤하라 스스로가 자신은 영웅도 아니며, 자신 스스로 마음이 동했기에 움직였을 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집단에 속하길 간절히 원하면서도 개인적인 행동에 지극히 간섭?하기 싫어하는 일본인들이었던 것이다. 모든 상황들을 개선할 방법을 단지 교육이라는 미래에 버려두고 작가는 우헤하라를 그가 그토록 원하던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꿈의 섬 ‘파이파티로마’로 떠나 보낸다. 국가의 간섭도 영웅도 필요 없는 단지 선한 마음만으로도 평화롭게 살아 갈 수 있는 섬으로 보내버렸지만, 정말 결말조차도 참 ‘일본인다웠다’
그러나, 베르나르 배르베르의 ‘뇌’의 참패와 ‘다빈치 코드’의 실망 이후, 내게 다시금 대중소설에 도전할 수 있게 해 준 이 책에 감사한다.
쓰고 보니, 내가 좀 극단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거 아니면, 저거? 답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일본인이니 일본인 다울 수 밖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