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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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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가 황석영이 독일에 체류 중이던 때 구상에 들어갔다가 1993년 귀국 후 방북으로 복역 중에 구상을 마쳤으며, 1998년 석방 후 쓰여졌다. 초판이 2001 6 1일에 나왔으니, 보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그의 머리 속에 묵었던 글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스러져가는 열정에 불을 지피며, 인내의 끈을 놓지 않고 끝끝내 세상에 글을 내 놓은 그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작가 소개란을 보면, 황석영은 [객지], [한씨 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무기의 그늘]등 리얼리즘 미학의 정점에 이른 걸작들을 발표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한다.

이 중에서 그를 처음 알게 된 [장길산] 1권부터 시작된 현란하고 몽환적인 문장에 어지러워 몇 장 못 넘기고 덮어 두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최근 출간 된 [바리데기]를 읽어 보니, 그의 몽환적이면서도 신화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모습에는 그다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인천상륙작전이 있기 전, 황해도 신천군에서 실제로 있었던 학살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여러 자료와 목격담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졌다.

 

미국 이민자인 목사 류요섭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고향 황해도 신천일대에서 같이 살았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방북 전, 죽어서 밖에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는 형의 혼령을 데리고 북한에 도착한 요섭은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북한 안내원에게 평양이라고 대충 둘러대지만, 거짓말은 곧 탄로나고 고향에 데려가 친척들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안내원의 뜻 모를 친절을 요섭은 받아들인다.

과거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고향그러나, 그는 변하지 않은 진실을 박물관에서 발견하게 된다. 미제 살인귀들이 벌였다는 전대미문의 대규모적인 인간살육에 대한 생생한 자료와 증언들 앞에서 그는 식은땀을 흘리는데, 사실 미제 살인귀들이 벌였다는 참혹한 일들은 실은 자신의 형인 류요한과 그 동료들인 개신교 신자들 그리고, 과거 지주였던 자식들이 월북해 저지른 만행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북한에서 대규모 토지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지주들과 재산을 소유했던 많은 종교인들이 대거 남한으로 이주하지만, 고향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던 몇몇 개신교들은 전쟁을 피해 산 속에 숨어 있다가 미국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한다. 미국을 십자군이라 칭하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 굳게 믿은 그들은 인민군들이 빠져나간 마을로 내려가 학살을 시작한다. 그들이 죽인 것은 대대로 가진 것 없고, 마을에서 아무나 이놈저놈 하고, 대충 이찌로라고 불렸다가 일랑이라고 불려진 이였으며, 마을의 공식 머슴으로 지냈으나, 요한과 요섭과는 누구보다도 친했던 순남이었습니다. 토지개혁으로 실질적인 이득을 봤고, 때문에 복수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과 그 가족들에게 몇 배의 고통과 죽음으로 앙갚음 한 요한과 그 동료들이 추구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반공호로 사람을 몰아 넣어 불태우고, 간강하고, 나중엔 살인귀가 되어 동료의 가족에게까지 총질을 해 대던 요한에게 있어 고향은 죽어서 밖에 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남겨진 역사는 진실마저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고 있었다. 혼령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요한은 구천을 떠도는 일랑과 순남을 만나 그간 모른 척 하고 있었던 당시 일들에 대해 서로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요한은 원도 한도 모두 풀고는 그들과 함께 곧 이승을 떠난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북한에 남겨졌던 요섭의 외삼촌은 말한다.

갈 사람덜언 가구 이제 산 사람덜언 새루 살아야디, 저이 태 묻언 땅얼 깨끗허게 정화해야디 안카서?”

 

작가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 간신히 살아 남은 자들에게도 여지없이 곰보자국을 남기는 손님(마마)처럼, 우리의 현대사에서 절대 잊을 수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상처의 기억들. 그리고, 각자의 입맛에 맞게 점점 왜곡되는 진실들 앞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채 이 소설을 끝낸다.

 

읽는 내내 가슴 아프고, 먹먹했지만, 책을 덮는 순간 황석영이 왜 리얼리즘의 미학으로 추대 받는 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여명의 눈동자에 나왔던 라스트 씬이 떠오른다. 죽은 여옥을 끌어 안고 죽은 대치 앞에서 하림이 말한다.

 

[그 해 겨울, 지리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내가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나는 남았다.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이라 이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이 무정한 세월을 이겨나갈 수 있으므로….]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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