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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방문했던 세계일보 홈페이지, 그 곳에서 난 작가를 처음 만났다. 세계문학상 당선자란 타이틀을 내 건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내심 '부럽다' 그랬고, 사람들이 남긴 부정적인 덧글 - '세계란 말이 붙은 문학상이 자극적인 소재와 사회의 부조리가 만연한 글을 계속적으로 당선시켜서 세계란 말 자체의 위엄을 떨어뜨리고 있고, 이런 소재들이 독자들의 '가독성'을 이끌어 낼 수 있음으로 '이윤추구'라는 목적을 이루어내고 있다.' 뭐 대충이런 내용이었던 듯 - 을 보면서는 '그래. 세계문학상이란 간판을 걸 정도면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질 수 있는 소재의 작품이어야 하지'그랬다.
하지만 소설 속 내용은 내 예상을 뒤엎었다. 제목은 '슬롯'인데, 작가는 '슬롯'을 얘기하지 않는다. 소설 속 '슬롯'은 단지 주인공이 자신을 얘기하는데 사용되는 공간, 즉 현재 사회에서 통용되는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진정한 자신을 마주보게 되는 시간적, 공간적 장소를 제공하며 동시에 자신의 얘기를 전하기 전의 망설임으로 인해 나타나는 무의미한 손장난이 가능한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주인공인 그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실제의 자신을 모두, 정말 까발리고 싶어했던 것인가? 우리가 흔히 도박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진 않는다. 그 자신 역시 높이 평가될 만한 존재는 아니며, 누가 높이 평가해 준다해도 스스로 손사레를 칠만큼 형편없는 놈임을 인정하고 있다.
'사회의 악(惡)' 난 주인공이 일부러 의도하지도 행하지도 않았지만 그를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한번도 무언가에 열정적이지 못했고, 빨리 체념했으며, 자신의 삶이 치열하지 못함을 알면서도 그런 삶에 동조하지 않는... 거기다 사람들을 관찰하지 않는 태도까지... 사회를 살아나가면서 정말 절실하고 순수하게 필요한 것들만 쏙 빼놓은 그의 삶 자체가 '악'이다.
또한 그는 자신과 소통을 하는 실질적인 인물들 - 수진, 윤미, 명혜, 명혜 모, 기훈선배 - 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얘기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독자들에게만 전달되어질 자신의 모습을 '나는 ~ 그랬었다'라는 형식으로 밝히며 독자들로 하여금 '당신들에게만은 모든 걸 얘기하고 있다'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독자들을 우롱하는 짓임을 알아야한다. 주인공인 '나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잦은 의문을 제시하는 독자들은 꼭 한명씩 있다. 그래서 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주의깊게 봤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은 뭡니까?'
주인공은 한번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 적이 없다. 주인공과 소통하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입을 통해서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든 그것만큼은 절대로 밝히지 않는다. 철저히 감추어 놓고 있으면서, 자신도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이란... 황당하는 말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다.
이 소설 첫 부분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은 여자와 도박에 관련된 얘기이다. 근데 내가 읽은 '슬롯'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자와 도박 얘기가 아니었다. 내가 언젠가 한 번쯤은 도발해 보고 싶은... 나와, 세상과 사회의 단절... 그리고 나의 내면과의, 조금은 두려운 대면의 시간....
그러한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