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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의 달
김정식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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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선생의 『금호동의 달』을 어제 알라딘에서 받아서 읽고 있다. 급한 것부터 하느라고 한꺼번에 죽 읽어내지 못하기도 하고, 책은 술술 읽히지만 내가 한 장 한 장 넘기는 속도는 빠르지 못하다.
충분히 음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 금호동에 살아본 적이 없지만, 내가 어려서 살던 곳 경북 문경 점촌 일대와, 10살 이후 살게 된 대전 갈마동 일대와 월평동, 그리고 부산, 서울, 대전 대덕구, 현재 살고 있는 동구 일대를 훑어보게 되고, 무엇보다 책을 잡았을 때 지명이 나오면 직업 본성인지 구글어스와 다음지도를 열어 놓고 그 지명을 찾아가면서, 골목을 뒤져가면서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책과 저자를 더욱 공감하게 되고 내 안의 감성이 풍성해지고, 또 잘 잊히지 않는 효과가 있다.

『금호동의 달』은 김정식 선생의 금호동에서의 어린 시절 살던 집과 친구들과 사람들과의 기억을 더듬는 이야기로 엮어진 책이다. 서술 방식은 뽀샵하지 않은 풍경사진에 울퉁불퉁 드러나는 골목길의 돌맹이와 헝클어진 나뭇가지처럼 자연스럽고, 감성은 풍성하고, 따뜻한 시선이 출렁거린다.

평소 페이스북에서 읽던 선생이 올린 글에서도 익히 느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읽다 보면 가만 가만 다가가 오래 바라보고 쓰다듬는 손길이 보이고 건네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소위 '글쟁이'들이라면 읽어내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않고 건방지게 넘겨버렸을 것들이 문장 곳곳에 제자리 하고 있어서 정형화된 글에 치이고, 질리고, 쫄리기도 하던 나로서는, 한 줄 한 줄 읽어내는 데 편하고 '안심' 된다.

내가 김정식 선생이 심리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안 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페북에 가끔 뜨는 어떤 글이 매끄럽지는 않으나 끌려서 끝까지 읽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글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심리학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을 때, 아, 그래서 글이 마음을 헤아리고 짚어주는 것 같았구나, 라고 생각 하였다.

사람마다 책을 읽어내는 시선과 포인트는 다를 것이다. 나는 주로 시적인 표현에 마음이 자주 걸리고 연필로 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고 순간 일어난 감상을 끄적여 놓기도 한다. 금호동의 달에서는 내가 잊고 있던, 찾을 수 없었던 내 안의 감성의 조각들이 안개꽃 무수한 꽃망울처럼 드러나는 것을 느낀다. 물론 그것을 다 시가 되게 할 수 있는지는 별개로 친다.

"부엌에 물을 받아 둔 항아리에는 어둠과 같이 밤을 보낸 먼지가 얕게 쌓여 도마에 남아 있는 생선 비늘처럼 미끈거렸다."(14쪽)

"오래 잊었던 친구가 갑자기 찾아와 마치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듯 수도가 날 빤히 쳐다본다"(15쪽)

"일곱 살 아이에게 잠자리는 너무 빠르지만, 여름 한 철을 사는 잠자리는 몇 주가 지나면 비실비실해진다."(20쪽)

"얼음이 녹으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같이 녹았다."(21쪽)

"여러 개의 담뱃불이 새벽 3~4시까지 반딧불처럼 깜빡였다."(23쪽)

"우리가 평상에 누워 날아다니던 잠자리를 보던 곳에서 사람들은 고르곤졸라 피자를 안주로 와인을 마신다."(24쪽)(여기가 현재 어디쯤인지를 다음지도에서 찾을 수 없었다. 금호동4가 46번지쯤인지 모르겠다)

"소철나무는 잎이 작고 많아서 빗물이 사방으로 많이 튀었다. 빗물이 공중에 흩어지면 해가 없는데도 공기 중에 반짝거렸다."(26쪽)

"반들반들하면서도 서늘한 감촉의 마룻장은 본 적도 없는 할아버지의 손바닥처럼 느껴졌다. 마루가 하는 얘기를 듣다가 지겨워지면 똑바로 돌아누워 창을 보았다. 창에는 수세미가 드리워져 자랐다. 늙은 수세미, 오래된 마룻장, 본 적 없는 할아버지."(29쪽).......

며칠 전 김정식 선생이 나의 어떤 글에 산문을 써도 되겠다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는데 거기에 대댓글로, '나는 산문을 쓰고, 선생님은 시를 쓰시는 것도 좋겠다'라고 썼다. 그것은 진심이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산문을 쓸 수 없을 테지만, 선생은 분명히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내가 읽고 싶은 시'에 속하는 시들과 같은 시들을.

『금호동의 달』은 속전속결로 읽어버릴 것이 아니라, 가만 가만 내 기억을 더듬으며, 음미하며 읽으면 좋을 책이다. 나로서는 흔치 않은, 아껴가며 읽고 싶은 책이다. 너무 각 잡히고, 너무나 높은 말씀과, 너무나 전지 되어버려 새모양을 하고 서있는 사철나무같은 책에 눌려있는 세상에서 『금호동의 달』이 수 백, 수 천 개의 달로 사람들의 마음에 걸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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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의 달
김정식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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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의 달을 읽으면 내 가슴에도 내 고향과 추억의 달이 뜬다. 피곤하고 쓸쓸한 우리들, 금호동의 달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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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
김미옥 지음 / 파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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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나 선물해도 되는 책이라고 수준이 낮다는 말인가하고 생각하면 안된다, 반대다, 모든 이들에게 다 통용되어 읽힐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내면을 따스하게 살피고 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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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
김미옥 지음 / 파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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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선물을 하기는 조심스럽다. 받는 이의 지적 수준을 고려한다고 해도, 나와 성향이 다르다면 자칫, 잠언이나 감성폭력이 될 것같기 때문이다. 김미옥의 책은 두 권(<<미오기 전>>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는 아무에게라도 다 선물해도 된다. 나는 딸과 친구에게 했다. 부모님께도 선물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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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기傳 -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김미옥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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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기 傳‘이 나와서 얼마 후 친구 생일 선물 고를 걱정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음.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 특히 읽어주고 싶은 책. 미오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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